방안에 섬유유연제 향기가 가득찼다
닷새 째 되는 날, 첫 도시였던 방콕을 떠났다. 보통 사박 오일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갈 짐을 꾸렸을 텐데 침대칸이 마련된 기차를 탄다니 기분이 묘했다. 열다섯 시간 기차를 타고 가면 그 끝에 나도 모르는 고향이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타국에서 제2의 고향을 찾는다는 낭만이 헛되이 몽글거렸다. 여행 첫날 공항버스에 앉아 이른 봄을 감상했던 기억은 벌써 흐릿했다. 긴 여행을 떠나자고 의기투합하던 지난 겨울은, 지금 우리는 여름에 있으니까 정말 두 계절 전의 옛일처럼 까마득했다. 어쨌든 떠나야 했고, 이미 그 꿈은 한시적으로나마 실현 중이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던가? 고작 닷새 동안 어떤 변화를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바빠지는 걸까?
후알람퐁 역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역시 기차역이었던 파리의 오르쉐 미술관이 떠올랐다. 아치형 천장을 뒤집어쓴 홀이 그랬고, 한쪽 벽면을 차지한 넓은 반원형 창과 그 위에 쳐진 촘촘한 격자가 그랬다. 유리와 창살은 어두운 하늘을 투사하고 있었다. 눅눅한 조명이나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만으로 실내가 어둑어둑하다는 인상을 받진 않은 셈이다. 창에 매달린 둥그런 시계판은 누렇게 변해 있었다. 지금껏 시침과 분침이 회전해 온 수많은 날들의 시적인 증거로 보였다. 아쉽게도 그림 한 점 없었지만, 큼지막하게 걸린 왕가의 초상을 대체재로 삼기로 했다. 태국 여러 도시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시간표를 미술관의 전시 안내도라고 믿어보기로 했다.
역 안에는 미약하게나마 냉방 기운이 돌고 있었다. 긴 여정을 대비한 간식거리나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마트, 역 안의 사람 중 유독 하얗게 보이는 커넬 샌더스의 KFC, 차 한 잔으로 시간을 죽이거나 떠날 사람과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카페도 있었다. 다만 일부러 의자를 여행자에게 내어주고 하얀 (그러나 시계와 마찬가지로 우중충하게 변한) 타일 바닥에 누워있는 몇몇 이들의 지친 표정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웠다. 나무뿌리를 발로 차듯 자꾸 걸려 넘어지는 기분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양다리 사이에 끼우고 인내심을 발휘 중인 우리 같은 여행자들은 뭐랄까, 행운아로 보였다. 우리가 타고 갈 기차의 행색을 보아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치앙마이로 가는 여정을 기다리는 기차에 냉방 침대칸은 단 한 칸뿐이었다. 물론 에어컨 대신 선풍기가 달린 침대칸도 하나 있었다. 하지만 활짝 열린 채 폐차장으로 들어갈 날까지 닫히지 않을 창문이 달린 좌석식 차량은 그보다 훨씬 많았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그것들도 이제는 바닥에 주저앉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사연이 있어 북쪽으로 가야 하고 바로 그 사연 때문에 그 덥고 불편한 좌석에 앉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적지 않은 금액이 찍힌 내 티켓을 만지작거렸다. 차마 그런 상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두세 칸 떨어져 있는 일반석엔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
저녁으로 먹을 햄버거를 사고 대기실 빈자리에 D와 나란히 앉았다. 내일 정오 즈음에 내릴 곳에 관해 알아볼까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나는 아직도 방콕 어느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기분이었다. 여행을 가서 단 한 번도 “이곳에 언제 다시 오겠어?”라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돌아다닌 적은 없었다. 장소와도 인연이 닿는다고 믿으며, 결국 어떤 부름에 의해 그곳을 다시 찾을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었다. 방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마저 생긴 곳인데 이대로 작별일 리는 만무했다. 그런데도 조급한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이미 꿈의 장면처럼 부스러지는 단계로 넘어간 며칠 간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조급함은 열병처럼 찾아왔지만, 나는 내내 한가로운 시간을 원했다. 봄이 오는 속도처럼 느긋한 여유가 그리웠다. 방콕에서 숙소를 한 번 옮기던 날이었다. 우리가 잡은 호텔은 두 채의 빌라에 다국적 스태프와 자그마한 수영장까지 갖춘, 그러면서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묵을 수 있는 곳이었다. 해먹 모양의 의자가 놓인 이국적인 로비에는 방이 나오길 기다리거나 무료로 제공하는 툭툭이 서비스를 기다리는 사람, 컴퓨터에서 이티켓이나 호텔 바우처를 출력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거대한 텔레비전에선 영화 「위대한 개츠비」가 소리 없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아래 놓인 책장에는 각국의 여행자들이 남겨놓고 간 듯한 책이 잔뜩 꽂혀있었다. 장기간 여행하는 사람들은 가져간 책을 다 읽으면 숙소나 카페, 술집 등에 그걸 놔두고 - 또는 버리고 - 온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러진 못할 것 같았다. 나의 미련과 집착은 그런 식이었다. 비단 책만이 아니라 사람에 그랬고 관계에 그랬고 일에 또 그러했다. 그리고 난 노력을 통해 그런 짐을 덜어낼 수 있다는 자기계발서의 주장을 절대로 믿지 않았다.
낡은 주택가 한가운데 생뚱맞게 위치한 호텔은 밖에서 보기보다 부지가 넓었다. 빌라 주변은 휴양지 분위기로 공들여 꾸며놓았고, 빌라와 빌라 사이에 난 길에 앉아 있으면 참호에 들어온 느낌도 들었다.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웃음 터트리는 소리만 간간히 들려오지 사위는 대체로 조용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며 어슬렁거리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물장구 소리에 맞춰 흔들리는 야자수 잎의 넓은 그림자를 보고 있으면 마음도 딱 그만큼 넓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키를 받아 방으로 올라갔을 때, 황당한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리셉션에서 우리에게 더블 베드를 배정한 것이다. 그냥 별 의미 없이 방을 배정한 거겠지만, 우리는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방을 바꾸기로 했다.
“저흰 더블 베드를 쓰지 않아요. 제발(?) 트윈 베드를 줄 수 있어요?” 우리는 로비에 전화를 걸었다. 리셉션의 여성은 약간 웃음기 밴 말투로 대답했다. “알겠어요, 트윈룸이 있는지 알아보죠.”
애초에 트윈룸으로 예약했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었으나 매끈하게 표현할 자신이 없어서 관뒀다. 삼사 분이 흘렀다. 사실 나와 D는 여행이나 출장 중에 같은 침대를 써본 적이 있다. 그것도 꽤 자주 그랬다. 하지만 일부러 호들갑을 떠는 것도 별다른 일정이 없는 오후에 어울리는 소일거리였다. 그녀가 동료에게 이 남자들 참 유난스럽다고 흉을 볼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우리 또한 여행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조그만 인상 하나 남길 수 있다면 나쁠 것도 없었다. 곧 트윈룸이 있다며 리셉션으로 내려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방 키를 교환하면서 그녀가 웃음을 참는 기색을 내비쳤던 건 착각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빨래를 해야 할 타이밍이 왔다. 빨랫감을 모아 동전 세탁기가 비치된 세탁실로 향했다. 하나 쯤은 있을 법한 세제 자판기가 보이지 않았다. 아까 우리를 보며 웃었던 직원에게 물어보니 숙소 건너편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사야한단다. 작은 점포에 들어서자 겨우 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여자아이 하나가 스마트폰으로 TV 프로그램을 보며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부모님 안 계시니?”라고 물어봤겠지만, 똘망똘망하게 생긴 얼굴을 보자 이 아이와 거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는 나를 한 번 슥 올려다보더니 일말의 호기심도 보이지 않고 다시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좋아, 너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을게. 나는 진열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가 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전부 태국어였기 때문이다! 향기가 그려진(?) 플라스틱 통 하나가 눈에 띄었다. 흔들어보고 뒤집어보고 헛되이 냄새도 맡아보고 그랬는데 가루가 들어있다는 증거만 확실할 뿐이었다. 결국 아이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영어 할 줄 아니?”
“응, 할 줄 알아.” 고것 참 당돌한 말투다.
“세제detergent는 어디 있니?”
“세, 뭐?”
너도 그 단어는 모르는구나. 사실 세제란 단어는 나도 몰라서 찾아본 단어였다. 고마워, 구글. 꼬마와 똑같이 몰랐다는 사실에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빨래할 때 넣는 거 말이야.”
“아, 그건 여깄어.”
아이가 가리킨 곳은 지금껏 찾아볼 생각도 못했던 카운터 아래 진열대였다. 과연 옷이 펄럭이는 그림이 그려진 게 딱 봐도 세제였다.
“그럼 이건 뭐야?” 나는 방금까지 흔들고 있었던 플라스틱 통을 내밀어 보였다.
“그건 몸에 바르는 거야.” 그러면서 아이는 팔에 뭔가를 바르는 시늉을 했다. 그 모습이 몹시 귀여워 필요도 없는 바디 파우더까지 살 뻔했다.
일회분씩 포장된 세제 하나와 섬유 유연제 하나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자 아이는 야무지게 바코드를 찍기 시작했다. 아이는 나처럼 바로 건너편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내 어린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 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서 한참 구경하곤 했었는데, 그들은 대체로 몰몬교 전도서를 들고 다니는 선교사들이었다. 아이는 나보다 훨씬 넓은 세계에서 살고 있었다. 한동안 이 동네를 떠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행자들이 그들의 세계를 이곳으로 가져올 테니까 말이다. 가게를 나서며 친밀한 마음을 담아 또 보자는 인사를 건넸다. 이미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린 작은 친구는 한 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세탁기는 한 시간을 돌려야 했다. 그동안 D는 잠을 자고 나는 책을 읽었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을 하는데 간절히 바라던 일을 하는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앙증맞고 똘똘한 아이를 만난 것도 좋았고, 다른 여행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여유를 부리진 못하고 벌써 짓쳐 나가 술을 푸고 있었으리라는 것도 좋았다. 건조기를 돌리는 데 15분이 더 필요했다. 다소 덥긴 했지만 이번엔 부러 수영장 앞에 앉았다. 다시 한 번 아이들이 물장구 치는 소리를 듣고, 야자수 그림자가 바닥을 쓰다듬는 손길을 지켜보았다. 이 오후에 구간 반복을 걸어놓고 가슴에 새겨질 때까지 되풀이하고 싶었다. 뜨겁게 마른 빨래를 들고 방으로 돌아오자 섬유유연제 향기가 방안에 가득찼다. 언젠가 동남아시아 어느 도시로 도망쳐 작은 방을 잡은 뒤 막 빨래를 마친 옷가지를 늘어놓고 싶다는 짧은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 상상 그대로였다. 그때 가정했던 도시도 아마 방콕이었을 것이다.
내가 여행을 시작한 후 누린 지극한 한가로움에 관한 기억은 바로 이것이다. 그냥 이것 뿐인데 그게 참 좋아서 지금도 천이 마를 때 쉬는 고운 날숨을 맡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