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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르고트 May 15. 2019

제주를 기억하는 방식

열일곱 곳의 제주 책방 이야기

 제주에서 차로 514Km를 달렸다. 제주 본섬 해안선을 두 바퀴 정도 돈 셈이다. 그 거리를 거의 서점을 다니는 데 썼다. 문을 닫아 들어가지 못한 곳까지 치면 열일곱 곳의 책방이었다. 모두 서점이라 뭉뚱그리면 지나치게 많이 간 셈이지만, 나에게 그곳들은 각각 한 번밖에 가보지 못한 장소로 남았다.


 때로는 도심 한가운데, 때로는 지도를 보아도 감이 오지 않는 돌담 마을 귀퉁이에 그곳들은 있었다. 어떤 곳은 배경에 숨어 있었다. 어떤 곳은 배경에서 도드라져 나왔다. 열일곱 군데의 책방을 전부 걸어서 다닐 수 있었다면, 그곳들이 사람이 단숨에 겪을 만한 하나의 길로 이어져 있었다면, 나는 이 고장에 완전히 사로잡혔을지 모른다. 세상에 그토록 완벽한 지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나는 안도해야 할지 애달파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점을 다니는 마음은 삼 할이 절박함이었고, 삼 할이 궁금함이었으며, 나머지 사 할은 그저 여행하는 마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 여정을 시작한 이유도 잊어버렸다. 방향을 바꾸었을 뿐인데 저 멀리 눈높이까지 차오른 바다를 보았다. 도로에 내놓은 손으로 쓴 광고지, 어떤 건물은 버려진 듯했고 어떤 건물엔 그래도 누군가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본 것은 나무였다. 내가 어떤 장소를 나무로 기억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다. 장 그르니에의 말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동시에 자신을 모르는 사람의 공허를 나무는 채워주고 있었다. 어떤 도시는 소행성 B612를 삼킨 바오밥나무처럼 수십 아름의 나무로 기억되었고, 어떤 도시는 불탄 듯 선명한 단풍으로 기억되었다. 이파리가 얇고 우듬지가 뾰족한 겨울 같은 나무들도 나는 도로 위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다. 제주에선 종종 야자수가 보였다. 그들은 어쩐지 길을 잘못 든 여행자 같았다. 대형 트럭에 실린 썩어서 뽑힌 야자수들은 환상을 유지하려는 부단한 발길질처럼 보였다.


 5월의 날카로운 햇볕에서 벗어나 그늘로 들어가면 새퉁스럽게 섬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바람도 그늘만 찾아다녔다. 땀이 식고 정수리 열이 가시면 그림자를 밟으며 걸음을 옮겼다. 빛이 잘린 길은 언제나 책방으로 이어졌다. 그 안에 들어가 책에 둘러싸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그늘 안에서 제주의 옛집을 도닥여 만든 서점을 보는 게 더 좋을 때도 많았다. 책은, 책장은, 책방은 거기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그건 책을 읽는 일과는 다른 종류의 위로다.





 미래책방은 이름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과거의 흔적으로 발견하는 곳이었다. 이곳에선 어느 한 사람은 들춰 볼 옛날 모델의 설명서와 필름으로 찍은 사진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고양이. 볕 드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나는 어쩐지 쑥스러웠다.


 라이킷 또한 이름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을 흰색 다정한 벽이 다독이고 있었다. 그래요, 좋아요. 여기서 찾은 어떤 책을 이후로 어떤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야 할까, 동문 시장의 혼란스러움도 이 책방 앞까진 밀려오지 않았는데. 마치 파도가 자비를 베풀듯.


 나이롱은 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알루미늄 문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문을 열며 오랜 욕망이 하나 채워졌고, 마침 마른 목에 커피를 부을 수 있어 더 좋았다. 헌책 서가에서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여름, 거짓말』을 찾았다. 역시 이 책을 사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이곳도 돌아가야 할까, 서점 바로 앞엔 24시간 빨래방도 있었다. 빨래를 돌리고 책을 읽는 기분은 어떨까. 아, 이미 해 봤나.


 만춘서점은 가긴 했으나 문 여는 시각을 잘못 알고 가는 바람에 들어가진 못했다. 하지만 아내는 이 서점을 좋아했다. 하얀 선물 상자 같은 이곳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했다. 해 질 녘의 마술일 수도 있었고, 바로 옆 리조트에 심긴 야자수의 배려일 수도 있었다. 제주를 다시 간다면 이곳에도 꼭. 여력과 운이 된다면 숙소는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북살롱 이마고는 제주에서 갔던 서점 중 가장 오래 앉아 있고 싶은 곳이었다. 서점 안쪽 가운데에 앉아 좌우로 크게 열린 창을 통해 전혀 다른 세상을 번갈아 보았다. 어느 쪽이든 나무가 보였다. 나무의 몸통이 어떤 육감적인 모델 사진보다 매혹적으로 바람에 흔들렸다. 바람이 이쪽과 저쪽을 이었다. 옆집에선 잠시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것도 삶의 증명 같아서 가만히 들었다. 『아빠는 오리지널 힙스터』의 표지를 만지며 나는 어떤 아빠일까 생각했다.


 라바북스의 이름에서 사고뭉치 만화 캐릭터를 먼저 떠올린 건 나의 감수성이 그만큼 박하다는 이야기일 터였다. 잔잔한 옆 나라 노래가 흐르고 있었고, 이미 몇 군데를 거쳐 왔음에도 책방지기에게 말을 거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는 정신이 없어서, 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없는 정신을 가만히 붙잡아 세워준 것이 이 책방의 차분한 분위기였다. 제주에 관한 책을 써 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그러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서귀포시청 바로 옆에 있던 북타임은 내가 기억하는 동네 서점(규모가 있는)의 모습과 가장 많이 닮아 있었다. 온갖 책들로 빽빽한 서가, 주인은 아저씨, 과학 서적이 눈에 잘 띄고(서점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잔뜩 쌓여 있었다) 어떤 면에서든 아동 친화적인. 물론 기억 속 동네 서점보다 세련됐다. 책으로 탑을 쌓은 서점이 좋은지 큐레이션을 딱 맞춰 해둔 서점이 좋은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필요한 책이나 내게 필요한 책, 또는 내게 필요하지 않지만 나를 기다리던 책이 있다면 어쨌든 그곳은 좋은 서점이다. 2층으로 옮긴 후 오는 사람이 줄어 무료하다는 아저씨의 말동무를 더 오래 하지 못하여 아쉽다.


 인터뷰 옆에 잠시 차를 세울 때, 언덕 아래로 바다가 흐르고 있었다.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를 떠올린다는 말을 책에 너무 많이 써놓았지만, 공교롭게도 책 속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바다와 조금은 닮아 있었다. 고점과 저점 사이에 놓인 것들은 모조리 달랐다 해도. 제주의 생태, 문화를 알리는 서점답게 층계참에는 제주 유산지구 마을에 관한 책들이 놓여 있었다. 김녕리, 덕천리, 월정리. 내가 한 번은 지나쳤을 그 마을 이름을 곱씹으며 주인과 인사를 했다. 그러면서도 내심 서점 한쪽에 털썩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창 너머로 들리지 않을 파도 소리를 듣고 싶었다.


 북스토어 아베끄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아담한 집 위로 한 풀 한 풀 그림자가 떨어지고, 이제 보이는 모든 것은 실루엣의 영역으로 밀려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점 안의 작은 창으로는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듯, 구멍으로 빠져나오는 물줄기가 서가를 잔뜩 적셨다. 그 황금빛에 눈이 부셨다. 책을 향한 막연한 믿음 같은 게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을 따라갈 만한 책은 몇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바람을 향해 달릴 때, 거짓말처럼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건 그냥 바위가 아니라 산이었다. 산방산. 산 안에 방이 하나 있다고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평원 위에 툭 떨어진 기묘한 광경. 그 산을 배경으로 어떤바람은 노란 벽을 딛고 서 있었다. 서가 안쪽 작은 방에 둘러앉을 만한 테이블이 놓여있고, 넝쿨에 둘러싸인 창 하나가 그 방을 밝히고 있었다. 창이 없는 서점을 이제는 상상할 수가 없다.


 이듬해봄은 책방으로 가는 길과 책방, 둘 중 무엇이 더 아름다운지 승부를 가릴 수 없는 곳이었다. 돌담에 길을 잃을 듯 취해 걷다가 “이듬해봄.. 우리다시 만나요...”라고 쓰인 선간판을 마주쳤다. 아, 문이 닫힌 것인가, 하지만 나의 감수성이 바닥을 드러낸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자마자 “우리 다시 만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도 세상엔 존재하는 것이다. 선간판 위에 자그마하게 놓인 초록색 “OPEN”을 뒤늦게 확인하고 마음을 놓았다. 책방 앞에는 먼저 온 손님을 태웠던 휠체어 한 대가 놓여 있었다. 들어가기 전부터 어떤 서점인지 알 수 있었다. 이듬해 봄에 다시 만나려 한다.


 무명서점은 제주에서 가장 먼저 알게 된 서점이었다. 이곳에 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나는 이미 서점은 물론 고산리를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서점의 내부는 사진으로 보며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네모반듯한 구조일 줄 알았는데 그보단 동선이 몇 갈래로 나뉜 작은 갤러리 같았다. 장서가 많음에도 혼잡하지 않았다. 나는 무명서점이 이곳에서 만들어진 독자를 기억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책을 들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수줍게 얼굴을 가리거나 아니면 환히 웃고 있다. 나는 아직 작은 서점들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지 못한다. 어떤 책을 어떻게 들이고 어떻게 팔고 있는지. 하지만 무명서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내가 모르는 물리 법칙이 앎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일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보배책방은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한 책방지기의 서점이다. 뒤로는 수박밭, 앞으로는 여름이면 온통 연꽃으로 덮이는 연못이 있다. 서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엔 초등학교도 있어서 하교를 하던 아이들이 우당탕 들어오는 날도 종종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편집자라 불릴 깜냥은 아니지만, 어쨌든 엄청난 대선배인 분이라 긴장을 좀 했는데 아주 편하게 대해 주셨다. 이곳의 벽 서가도 인상적이었다. 기차놀이처럼 서로 이어진 책들이 약 마흔 권 정도, 그 한가운데 있는 책에 절로 손이 갔다.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 나는 출판사 ‘마음산책’의 책을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서점이 마음산책의 책들을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디어 마이 블루는 무명서점의 추천을 받고 찾아간 곳이다. 역시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한 책방지기의 서점으로 보배책방은 제주에 가기 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지만, 이곳은 막 들은 사실이기에 한 번 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가 끝나자 파란 컨테이너 두 채가 보였다. 그래서 디어 마이 블루군, 서점이자 꽃집이라는 설명에 서점의 변화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해졌다. 서가는 여행하다가 보기 좋은 책을 위주로 꾸렸다고 한다. 여행을 하며 보기 좋은 책. 그것은 어떤 다른 여행을 기록한 책일까,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일까, 차라리 생각을 지우게 하는 책일까.


 소심한책방엔 손님이 정말 많았다. 2014년 5월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그만큼 널리 알려진 덕일까. 찾아오는 이방인들에게 종달리의 평온을 지켜 주십사 부탁하는 모습도 기꺼웠다. 저도 그 냄새를 맡았는지 책방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신이 난 아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아내는 이곳 또한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동네 사랑방 냄새나는, 그런데 타지 사람도 절로 발걸음 돌리게 되는 공간의 매력이 느껴졌다. 이곳은 책도 제작하고 최근에 독립출판 클래스도 열었다. 이름과 달리 행보는 책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모양새다. 


 언제라도는 비행기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들러 아쉬운 곳이다. 이듬해봄처럼 옥색 지붕을 얹은 옛집 서점, 갤러리도 함께 운영한다. 서점으로 가는 길에 어버이날 꽃을 단 해녀들을 보았다. 마을엔 해녀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고양이를 많이 볼 수 있는 서점으로도 알려진 모양인데, 경황이 없어서 그랬는지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난 아직 고양이보단 사람이 좋다. 언제라도 다시 와도 된다는 이름 같아서 다음엔 차근차근 둘러보고 싶다.


 마지막 서점이었던 혜원책방은 마침 부재중이었던 책방지기 대신 바다를 만나고 온 곳이었다. 마지막날까지 서점 다니고 커피 마시고 밥 먹느라 바빴기 때문에 (코코몽 테마파크에 가기는 했다) 바다를 발끝에서 내려다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곳은 바다가 바로 옆에 있었다. 책을 한 권 놓아두고 잠시 바다를 걸었다. 그로부터 공항에 가고, 짐을 먼저 부치고, 렌터카를 반납하고, 보안 검색대를 거쳐 비행기에 타기까지 피 말리는 두 시간을 보냈지만 우리는 여기서 바다를 만났다. 서울로 돌아오고 며칠 후 책을 잘 받았다는 책방지기의 메시지를 받았다. 강렬한 해초 냄새와 함께 발밑에 엎드리던 물결이 기억 속에 여전했다.





 제주의 책방을 바쁘게 다닌 건 내가 쓴 책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동기를 납득할 수도 있고, 부끄러워질 수도 있다. 그저 순진한 마음으로 제주의 책방을 힘닿는 데까지 가 보자는 결심이었다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처럼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오랜만에 연락해서 다짜고짜 뭔가를 부탁하는 심정이랄까. 이 여정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렸을 적엔 제주에 참 자주 왔었다. 한 해에 두세 번은 와서 보름 넘게 머물고는 했다. 사람들이 제주로 끝없이 몸을 내던지는 이유를 알 만큼 많은 것이 저만의 방식으로, 때로는 유행을 따라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녔고 손을 뻗어 햇볕에 마른 그 거칠거칠한 얼굴을 만지곤 했던 검은 돌담은 그대로였다. 기억보다 낮아지기는 했으나 그건 내가 너무 많은 세월을 다른 곳에서 보낸 탓이었다. 이젠 아무도 도깨비 도로엔 가지 않는 것 같았다. 폭포와 동굴로 제주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았다. 나도 그런지 모른다. 나는 이제 제주를 책으로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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