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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Dec 22. 2020

종이의 집에서 예술의 집으로

Daryl Roth Theatre


유니언 스퀘어 전경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Union_Square,_Manhattan)

 뉴욕의 대표적인 공공 공원 중 하나인 유니언 스퀘어. 브로드웨이 스트릿과 4번가가 맞닿는 곳에 위치한 이 곳은 18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뉴욕의 상업, 오락, 노동 및 정치행사 등의 요지 역할을 해왔다. 뉴욕 시민들이 유기농으로 키우거나 직접 만든 식료품들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Green Market이 열리는 곳이며 노동시위나 퍼레이드, 정치집회, 축하행사 등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유니언 스퀘어 주변으로는 주거시설뿐만 아니라 호텔, 상점, 은행, 사무실, 제조시설, 영화관, 공연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으며, 공원 내에 출입구가 있는 유니언 스퀘어 지하철 역은 맨해튼의 북쪽과 남쪽, 더불어 브루클린까지 연결하는 4,5,6라인, NQRW라인, L라인이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해 관광객만 북적이는 것이 아니라 뉴욕 시민들에게도 중요한 장소다.

Daryl Roth Theatre ⓒDavid Sundberg/Esto (출처 : https://www.architectmagazine.com)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초고층 빌딩이 많은 도시인 뉴욕이지만 유니언 스퀘어를 둘러싼 건물들은 비교적 낮은 층의 건물들이 많다. 이 중에서도 광장의 동쪽, 가장 작고 아담한, 이상하게도 뉴욕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이상하게 눈에 띄는 그리스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있다. 바로 Daryl Roth Theatre이다. 4개의 원형 기둥이 굳건히 지붕을 떠 받치고 있는 이 건물은 주변의 다른 건물과 비교해 보았을 때 3~4층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낮다. 와중에 건물 정면으로는 창문은 없고 작은 출입구만 있어 겉에서 보면 도대체 무슨 건물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Theatre라는 그 흔한 문구도, 공연 포스터도 없다. 다만 은행임을 알려줬던 정면의 간판에 새롭게 새겨진 공연명만이 이곳이 극장임을 알리고 있다.


Union Square Saving Bank의 전경과 내부 (출처: https://collections.mcny.org)

대릴 로스 극장은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이전에 종이의 집, 바로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래 은행이었던 건물을 공연장으로 썼다는 것이 맞겠다. 극장 건물의 역사를 살펴보자. 이 독특한 외관의 건물은 본래 Union Square Saving Bank로 사용되던 것으로 1907년에 완공되었다. 190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100년이 가까운 기간 동안 활발하게 은행으로 사용되던 건물은 1992년 은행이 파산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나오게 되었고 다음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세상 일들이 모두 단순하지 않듯이 이 건물도 은행으로서 역할이 끝난 후 바로 일사천리로 극장 건물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대릴 로스 극장으로 변신 전 원래는 미국 내 저명한 콘서트장이자 레스토랑 체인인 House of Blues의 설립자 Isaac Tigrett이 은행 건물을 콘서트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물을 사들였었다. 그러나 뉴욕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은행 건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기를 원하던 보호주의자들이 은행 건물을 훼손시키는 것을 반대했고 그로 인해 하우스 오브 블루스로 운영되는 계획은 계속 미뤄지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엎친데 덮친 격으로 Bar로 사용되기 위해 필수적인 주류 허가증 신청이 반려되면서 음악 공연장으로서의 사용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결국 1996년 다시 브로드웨이의 저명한 프로듀서인 데릴 로스가 다시 건물을 오프 브로드웨이의 극장으로 만들 계획으로 인수하게 되며 건물은 극장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좌 : Jordan Roth, 우 : Daryl Roth (출처 : https://www.townandcountrymag.com/leisure)

해외에서는 인물의 이름에서 극장이든 건물이든 이름을 짓는 게 비교적 흔한 일이긴 하지만, 현재 살아있는 사람의 이름, 본인의 이름을 따 극장을 명명할 정도라면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뉴욕 공연계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데릴 로스는 100여 개가 넘는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 쇼를 제작한 유명 프로듀서로 토니 어워드에서도 여러 번 수상한 이력이 있는 프로듀서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제작한 작품들은 브로드웨이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상연되고 있는데 그녀가 제작한 작품 중 한국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뮤지컬 <Kinky boots>라 할 수 있겠다. 사실 더 나아가 데릴 로스가 공연계에 끼치는 영향은 그녀가 운영하는 프로덕션을 넘어 그녀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면 얼마나 지대한 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데릴 로스는 부동산 투자자이자 억만장자인 Steven Roth와 결혼하여 슬하에 자녀 둘을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브로드웨이에서 5개의 대표적인 뮤지컬 극장을 가지고 있는 Jujamsyn Theaters (St. James Theatre, Al Hirschfeld Theatre, August wilson Theatre, Eugene O'Neill Theatre, Walter Kerr Theatre)의 대표이자 프로듀서인 Jordan Roth다. 더 말할 것 없이 이쯤 되면 이들 가족은 브로드웨이 그 자체라고 해도 되겠다.

Fuerza Bruta 공연의 한 장면 (출처 : https://www.broadwaybox.com/shows/fuerza-bruta-new/)

다시 극장으로 돌아가 공간을 살펴보자. 데릴 로스 극장은 총 3개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1998년에 개관한 Daryl Roth 극장과 2002년에 개관한 DR2 극장, 그리고 카바레 공연으로 사용 가능한 D-Lounger다. 세 공간 중 메인으로 쓰이는 곳은 데릴 로스 극장이다. 이 곳은 개관할 당시 뉴욕타임스가 '색다른 공간 중 하나'라고 묘사했는데 그만큼 전통적인 형식의 극장과는 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릴 로스 극장은 하나의 큰 박스 형태로 높은 천장을 보유하고 있다. 고정형 좌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의 필요에 따라 좌석 배치는 다양하게 가능하고 300명 정도가 수용 가능하다. 물론 좌석을 다 제거하면 스탠딩 공연으로도 활용 가능하며 약 500여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공연에 맞게 다채롭게 변신이 가능한 극장답게 극장 문을 전 세계를 강타한 퍼포먼스 쇼인 <De la Guada>로 열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서커스와 퍼포먼스가 결합된 포스트모던 쇼로 폭발하는 에너지와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장면들로 유명한 작품인데, 무대가 여러 형태로 변형되고 배우들이 벽과 허공을 날아다니며 거대한 수조가 천장에서 내려오는 등 관객들은 한시도 쉴 틈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함께 춤을 추며 공연을 즐겨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을 상연하기에 아주 적합한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De la Guada>를 시작으로 데릴 로스 극장은 이 작품의 후속 작품인 <Fuerza Bruta>의 전용극장으로 총 합 약 20여 년 동안 이 작품의 전용극장으로 사용되며 50만명 이상의 관객이 이 극장을 다녀갔다.


좌 : D-Lounge, 우 : DR2 (출처 : http://www.darylroththeatre.com)

DR2극장은 작은 소극장으로 99석의 고정형 좌석을 갖춘 곳으로 주로 어린이 공연이나 가족을 위한 공연을 상연하는 공간이고, D-Lounge은 카바레나 코미디, 재즈 공연이나 파티, 리딩 공연 등을 위해 대관하고 있는 작은 라운지다. 75명 정도가 수용 가능하고 전형적인 극보다는 다양한 이벤트로 사용되는 장소인 만큼 식음료를 먹을 수 있는 공간이고 Bar도 갖추고 있다.


 극장이 갖춘 세 공간은 Daryl Roth Production에 의해 프리젠팅 씨어터로 운영되고 있다. 즉, 극장 내부에 공연을 제작할 인력과 상주단체 등을 두고 공연을 제작하는 프로듀싱 씨어터와는 다르게 내부에 프로듀싱을 위한 조직 없이 초청, 대관, 기획 공연으로 극장의 프로그램을 채우는,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전형적인 프리젠팅 극장이라는 말이다. 프리젠팅 극장의 장점은 발 빠르게 세계 공연 트렌드를 파악하고 국내외에서 유수한 작품들을 선별해 선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용적으로도 이미 제작이 완료되어 있고, 작품성이나 흥행성이 검증된 작품들을 주로 선보인다는 가정하에 경제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업이 운영하는 극장으로 극장이 비어있는 시간들을 활용해 대관사업까지 진행할 수 있으니 기업이 상업적으로 운영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Donmar Warehouse의 신작 <Blindness> (출처 : https://www.playbill.com/)

현재 브로드웨이는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3월부터 모두 문을 닫은 상태며 2021년 6월까지 셧다운이 연장되었다. 오프 브로드웨이에 있는 데릴 로스 극장 또한 예외는 아니기에 현재까지 극장은 비어있는 상태다. 하지만 최근 런던 Donmar Warehouse에서 제작한 작품 <Blindness>로 브로드웨이에서 최초로 다시 문을 여는 극장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 <Blindness>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각색해 만들어진 작품(우리나라에서는 '눈먼 자들의 도시'로 번역된 유명 소설)으로 배우 없이 관객들만 설치된 무대에 앉아 헤드폰을 쓰고 몰입형 사운드로 디자인된 내레이션을 경험하는 체험극이다. 파격적인 작품을 선보여왔던 데릴 로스 극장과 잘 어울리는 행보라고 볼 수 있겠다.

푸에르자 부르타 공연과 활발했던 브로드웨이 ⓒSungyeon Park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전염병으로 전 세계 극장계는 물론 예술계, 더 나아가 모든 경제 활동 체계가 멈춰있다. 모두가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례 없는, 겪어보지 못한 위기를 겪고 있고 사람들의 마음 또한 얼음처럼 얼어붙어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낭만을 사랑한다.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서로 간의 간격을 지켜야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들로 인해 혐오와 분노를 낳고 있는 상황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아름다운 것을 갈망한다. 브로드웨이는 경제 대공황 중에도 극장 40%는 문을 닫지 않았고, 2001년 9.11 테러 때도 'Show must go on'의 의지 표명으로 이틀간만 문을 닫고 삼일째부터는 문을 열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랬듯 공연은 계속되어야만 하고, 'Show must go on'이 데릴 로스 극장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시 브로드웨이에 봄이 찾아오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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