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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Nov 19. 2020

당신이 아는 그 ‘연극’이 탄생한 곳

Theatre of Dyonisos

오늘날 연극 공연의(무대예술) 장르는 매우 다양하다. 일반적인 희곡을 기반으로 하는 연극부터 음악이 가미된 음악극, 뮤지컬, 오페라 등도 있으며 몸을 주로 쓰는 비언어극, 무용극도 있다. 청소년 관객이나 어린이 관객을 위한 공연도 있고 서커스를 가미한 형식의 쇼 공연도 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극 형태를 벗어나거나 관객들에게 다양한 역할을 주는 장소특정적 연극, 인터랙티브 씨어터, 이머시브 씨어터 등이 탄생하기도 했다. 당신이 지금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연극', 그리고 '공연'이라는 장르는 살아 움직이며 변화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연극의 최초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탄생한 것일까?


일반적인 연극사에서 공연예술의 최초, 기원은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한 것으로 간주한다. 서양에서 연극을 의미하는 Theatre라는 단어도 '지켜보는 장소'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인 'Theatron'과 '행동하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Dran'을 그 어원으로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에 서양에서 탄생한 연극은 '어떤 일정한 장소에서 어떤 것을 모방하여 보여주고 그러한 행위를 지켜보는 것'을 의미한다. Theatre의 어원이 그리스어에서 온 것임을 안다면 오늘날 연극으로 발전한 이 장르가 처음 탄생한 장소도 고대 그리스임을 추측할 수 있다. 오늘 살펴볼 극장은 바로 오늘날의 'Theatre'의 기원이자 Theatre가 탄생한 장소. 바로 Theatre of Dionysus이다.

아크로폴리스 언덕에서 내려다본 디오니소스 극장 ⓒSungyeon Park

 세계 최초의 극장으로 회자되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무려 기원전 6세기 중후반에 처음 오케스트라(무대 부분)가 건설되었고 이후 기원전 4세기에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을 갖춘 극장으로 발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장이 있는 위치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중심으로 알려진 아크로폴리스(Arcropolis). 서양건축사에서 지배적인 건축 양식으로 군림한 아테나 여신을 기리는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부터 여신상이 건물을 떠 받들고 있는 형식으로 유명한 에렉테이온 신전이 있는 곳이다. 아테네의 중심, 언덕 위로 솟아있는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시내 어디에서도 보이는데 디오니소스 극장은 아크로폴리스로 바로 오르는 남쪽 경사면 초입에서 바로 발견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경외감에 휩싸이며 경탄이 쏟아져 나온다. 2500년이라는 긴 시간을 견뎌내고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 모양새와 그 엄청난 규모 때문이다. 지금은 많이 훼손되어 그 시절의 객석의 온전한 형태는 볼 수 없지만 당시 객석의 규모는 1만 7천여 명까지 앉을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때 당시의 디오니소스 극장은 비단 공연을 위한 장소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축제나 종교의식, 정치적 이벤트를 위한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극장의 규모는 클 수밖에 없었고, 또 Theatre의 기원을 종교의식의 수행으로부터 발전했다는 사실을 보았을 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Dithyramb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ithyramb)

 공연을 위한 '극장'으로서 그 시절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이곳이 바로 디오니소스 축제가 행해진 곳이라는 점이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는 큰 의미에서 연극의 형식을 갖추고 있어 연극의 기원으로 보는 디티람브(Dithyramb - 디오니소스를 기리기 위해 가면을 쓰고 합창을 하거나 춤을 췄던 행사)가 행해졌고, 연극 경연대회인 디오니시아(Dyonysia)와 레나이나(Lenaia)가 개최되었다. 이들은 술과 다산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이벤트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드라마가 탄생한 곳이라 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연극 경연대회 중 디오니시아는 매년 3월, 봄에 열리는 비극 경연대회였고 레나이나는 매년 겨울에 행해지는 희극 경연대회로 알려져 있으며 매년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신관들의 주관하에 관중을 모아 행하는 국가적 행사였다. 이 행사들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 디오니시아, 비극 경연 대회다. 3편의 비극과 1편의 사티로스 극(짧고 희화적인 익살극)을 상연하고 경연을 통해 우승작을 뽑는 형태였는데 이 경연대회에 참여했던 극작가들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희극에 비해 많이 남아있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스 3부작이나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엘렉트라,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메디아, 트로이의 여인들 등이 이 축제에서 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작품이 남아 끊임없이 읽히고 재해석되고 공연되고 있다. 또한 주목할 만한 점은 이곳에서 '배우'의 존재가 탄생했다는 점이다. 최초의 배우이자 극작가로 불리는 테스피스(Thespis)가 이곳에서 처음 독백과 대화를 도입하고 가면을 사용했고, 이후 아이스킬로스가 배우의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려 배우들 사이에 대화가 가능하게 하고, 그다음 소포클래스가 1명의 배우를 더 늘이며 코러스를 등장시킴으로써 복잡한 플롯과 갈등을 갖춘 드라마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연극이 기원들이 발생한 곳에서 탄생한 형식과 장르, 텍스트들이 2500여 년이나 지난 현대까지 살아서 매일같이 읽히고 매일같이 무대 위에 다른 모양새로 선보여진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출처 : www3.northern.edu

본격적으로 디오니소스 극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극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관객들이 앉는 객석 공간(Theatron), 배우들이 연기하는 공간인 오케스트라(Okestra), 무대 뒤 구조물이라 할 수 있는 스케네(Skene)다. 객석부터 살펴보자면 현재는 석조 객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극장은 사실 처음에는 목조 객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이후 로마시대에 극장의 구조물이 개, 증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최초의 원형이 어땠는지는 확실치 않다. 객석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대 1만 7천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경사면 위에 세워 시야각을 확보했다. 또한 객석은 극장 무대로부터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 형태로 이루어져 있어 반원형 극장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가 현대적 음향 시설 없이도 먼 곳까지 소리를 전달할 수 있게 했다. 고대 그리스 극장은 대부분이 디오니소스 극장과 비슷한 모양새를 띄고 있으며 이후 수많은 극장 건축 형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객석의 맨 앞줄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의자 받침이 있는데 주로 그 시대의 VIP들, 즉 왕이나 사제들, 정부 관료들이 앉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객석. 사람들은 직접 객석에 앉아볼 수 있다. ⓒ Sungyeon Park  

 배우들의 연기 공간인 오케스트라는 비교적 그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디오니소스 극장은 오케스트라 형태 또한 반 원형으로 되어있고 무대 옆쪽으로 파라도스(Parados)라는 등퇴장을 위한 통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극장은 야외극장이기 때문에 자연광이 있는 낮에만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스케네는 현재는 구조물의 대부분이 유실되어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보존되어 있는 다른 고대 그리스 극장들을 통해 석조로 된 높은 구조물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고 주로 배우들이 의상을 갈아입거나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스케네의 흔적 ⓒ Sungyeon Park


현재 디오니소스 극장은 따로 공연을 위한 시설로 실제 사용되고 있지는 않아 공연은 볼 수 없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객석까지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어 누구나 석조 객석에 앉아볼 수 있다. 아름다운 지중해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객석에 앉아 극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금세라도 이오니아식 키톤을 입은 배우들이 나와 비극 한 구절을 연기할 것 만 같다. 상상 속으로만 무대 위 인물들과 이야기들을 떠올려봐야 하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충만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더불어  25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존재했던 이 극장 위에서 얼마나 많은 드라마들이 오르고 사라지며 기록되었는지를 짐작해보고 있노라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짐을 느낌과 동시에 여전히 이곳에서 탄생한 드라마들이 전 세계에서 수도 없이 읽히고 변형되고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에 경의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의 탄생과 기원은 신비롭다. 그 탄생과 기원이 문화적 번영 속에서 찬란한 잉태 과정을 겪으며 오랜 시간 존재하고 현재까지도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면 더욱더 그렇다. 나는 이곳에서 탄생한 살아있는 드라마들이 앞으로 또 어떻게 사람들을 황홀하게 도취시키고 또 동시에 어떻게 파멸시키며 무한한 희열의 세계로 이끌어 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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