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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Oct 20. 2020

뉴욕 공연계를 이끄는 작은 힘

New York Theatre Workshop

하나의 메가 히트작 공연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긴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까. 어떤 공연은 강렬한 영감을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제작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공연은 긴 창작 과정이라는 것이 필요하다. 수많은 리서치와 워크숍, 끊임없는 회의와 아이디어를 구축하는 과정들. 시도와 실패를 통해 배우는 시간들. 관객과 창작진들 모두 만족할 만한 하나의 공연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지지부진한 과정들의 연속과 다사다난한 시간들이 겹겹이 쌓였다는 것의 다른 말과 같다. 뉴욕 브로드웨이에는 공연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들으면 알 법한 유명한 작품이 수도 없이 모여있는 곳이다. 하지만 수도 없이 많이 모여있다고 해서 이 작품들이 도깨비방망이로 뚝딱 두드려 하루아침에 탄생했다는 것은 아니다. 이 작품들이 탄생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실험과 시도가 필요했을까. 또 이 작품들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뉴욕 공연계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Braodway가 있다면, 소위 '비주류'라고 불리는 'Off Boradway'도 있다. 오프 브로드웨이는 지나치게 오락성을 강조하는 브로드웨이의 상업적인 연극에 반하여 문학적으로나 사회적, 기술적인 면에서도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소극장 연극 운동이다. 한때는 브로드웨이로 가기 위한 등용문처럼 여겨지며 비판을 피할 수 없었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탄생해 브로드웨이로 진출, 그리고 전 세계로까지 뻗어 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 되었고, 더불어 이러한 비판에서 초소극장운동인 오프-오프 브로드웨이까지 생기며 이러한 비판도 자연스레 잦아들게 되었다. 뉴욕에서 고도로 상업화된 공연부터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까지 경험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오프 브로드웨이와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역할이 크다.


출처 : https://www.nytimes.com (ⓒGabriela Bhaskar for The New York Times)

오늘 소개할 극장은 오프 브로드웨이의 터줏대감, 뉴욕 씨어터 워크숍 (New York Theatre Workshop, NYTW)이다.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한 이 극장은 신진 작가, 혹은 새로운 작품을 소개하고 발굴해 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영리 단체로 1979년에 설립되었다. 오프 브로드웨이 터줏대감답게, 이들이 중점적으로 두는 가치는 역시 '도전'과 '실험'이다. 도전적인 아이디어와 새로운 연극 형식에 열려있고, 답을 제공하는 예술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을 우선시한다. 또한 연극을 통해 세계에 대한 시각을 넓히고 또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을 중심 가치로 둔다. 뉴욕 씨어터 워크숍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다양성'이다. 모든 다양성에 열린 자세와 편협함,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자세를 지향한다. 뉴욕 씨어터 워크숍이 추구하는 이런 가치들은 차별 없이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창작을 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했고, 이런 기회들이 쌓여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 뿐만 아니라,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해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작품들을 탄생하게 했다.

초창기 뮤지컬 <Rent> (출처 : https://www.playbill.com ⓒ Joan Marcus/Carol Rosegg)

이곳에서 탄생한 작품들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뮤지컬 <Rent> 일 것이다. 1993년, Jonathan Larson이 푸치니의 오페라 <La Boheme>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이 작품은 뉴욕 씨어터 워크숍에서 처음 선보여졌다. 이후 렌트는 브로드웨이는 물론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뮤지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화까지 되었다. 뮤지컬 <Once> 또한 2011년, 뉴욕 씨어터 워크숍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첫 공연 이후 꾸준히 수정 보완 작업을 거쳐 브로드웨이로 진출, 그 해에 토니상을 휩쓸고 런던, 더블린, 멜버른뿐만 아니라 한국 서울에서까지 공연을 하며 뉴욕 씨어터 워크숍의 저력을 보여줬다. 2015년에는 영국의 전설적인 가수 데이빗 보위가 세상을 뜨기 전 작곡한 뮤지컬 <Lazarus>를 올리며 전회 매진의 기록을 세운 적도 있다. 최근 공연으로는, 2019년 토니상에서 Best Musical상을 비롯해 8개의 상을 휩쓸며 브로드웨이를 강타한 뮤지컬 <Hadestown>또한 뉴욕 씨어터 워크숍에서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이쯤 되면, 뉴욕 씨어터 워크숍이 뉴욕 브로드웨이는 물론 전 세계의 공연 시장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https://youtu.be/IYwoWE1UbYA

뮤지컬 <Hades Town> 셋업 현장


 극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브로드웨이에까지 미치는 엄청난 영향에 비하면, 뉴욕 씨어터 워크숍의 극장 규모는 굉장히 작은 편이다. 200석 남짓의 극장과 65명 정도 수용 가능한 극장 겸 리허설룸과 스튜디오가 전부다. 이렇게 작은 규모의 극장에서 전 세계까지 뻗어 나가는 공연들이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그렇다면 이러한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뉴욕 씨어터 워크숍만의 힘은 무엇일까. 뉴욕 씨어터 워크숍의 시즌 공연으로 들어가 보자. 이 극장에서는 한 시즌에 단 네다섯 작품밖에 올리지 않는다. 많은 극장에서 적게는 10개에서부터 30개 이상까지 많은 작품을 한 시즌에 선보이는 것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숫자다. 그만큼 뉴욕 씨어터 워크숍은 작품 하나하나에 긴 시간과 공을 들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뉴욕 씨어터 워크숍은 기본적으로 비영리로 운영되기 때문에 공연이 올라가지 않는 시기에는 극장을 임대에 임대 수입으로 단체를 운영한다. 부족한 재원은 기부를 통해 얻거나 관객들의 멤버십 제도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대부분의 수입은 당연히 공연을 제작하고 작품을 개발하는 개인의 아티스트들을 지원하는 곳에 쓰인다. 아티스트들은 뉴욕 씨어터 워크숍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독특한 시각을 가진 아티스트들과 그들의 작품을 지원하고 선보이는 것에 가장 큰 공을 들인다.

출처 : https://www.nytw.org/artist-workshop/mondays-3/

 뉴욕 씨어터 워크숍의 저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원 프로그램들을 살펴보자. 첫 번째로 소개할 프로그램은 'Monday @ 3 Series'이다. 이는 작품의 초기 개발을 위한 단계로 매주 월요일 오후 3시마다 새로운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리딩하는 프로그램이다. 신진 극작가들의 작품을 리딩하고 작은 포럼을 개최해 각 파트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모여 비평과 건설적인 피드백을 통해 작품을 개발한다. 이는 대중에게 노출되는 프로그램은 아니라서 일반 관객들은 관람할 수 없지만, 그 덕에 작가들에게는 마음껏 실험해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된다.

 다음은 'Companies-in-Residence' 프로그램이다. 이는 뉴욕 씨어터 워크숍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한 아티스트를 지원하는 형식이 아니라 극단 자체를 지원하는 형식이다. 극장의 사무실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소모품이나 리허설 공간 등을 제공해 영세한 극단에게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인 비용을 경감시키는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뉴욕 씨어터 워크숍의 직원들의 멘토링 프로그램까지 제공한다. SITI company나 Red Bull theatre, Theatre Mitu, Techtoni Theatre Project 등이 레지던시를 거쳐갔다.

2020년의 2050 Felloship 지원 아티스트들 (출처 : https://www.nytw.org/artist-workshop/2050-fellowships/)

 '2050 Fellowship'은 이곳만의 독특한 아티스트 지원 프로그램이다. 2050년이 되면 미국 내에 단일 인종이나 다수가 되는 인종이 없을 것이라는 조사를 기념하여 2050 Fellowship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극장이 지향하는 바를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떠한 차별이나 편견 없이 젊고 도전적인 신예 아티스트들을 선정하여 전적으로 그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한 시즌에 최대 6명까지 선정하고 이들은 매월 펠로우십 동료를 만나 공예나 미학, 예술적 발전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며 저명한 현대 연극 아티스트들의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펠로우십에 선정된 아티스트들은 공연 제작이나 리서치를 위한 준비, 여행, 연구 등을 할 수 있도록 소정의 급여와 발전 기금까지 지원받는다. 펠로우십은 연출가나 극작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각 파트의 디자이너나 행정 예술가들 또한 지원받을 수 있다.

'Usual Suspects'는 뉴욕 씨어터 워크숍이 운영하는 커뮤니티라 할 수 있다. 뉴욕 씨어터 워크숍을 거쳐간 500여 명 이상의 배우, 극작가, 디자이너, 드라마터그, 연출가 등으로 구성된 커뮤니티로 아티스트들이 서로 소통하고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줌으로써 아티스트끼리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이 프로그램은 더 나아가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을 뉴욕 뿐만 아니라 국제 축제나 해외의 타 극장에까지 진출시켜 세계시장에까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뉴욕 씨어터 워크숍은 단연 미래의 관객들, 그리고 미래의 아티스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운영하고 있다. 'Learning Workshop'은 다양한 연극 교육 프로그램으로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다양한 학문적 주제에 걸쳐 연극 수업을 함으로써 학생들의 읽고 쓰는 능력, 비판적 사고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매년 학교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도전적인 연극을 소개하고 토론을 장려함으로써 학생들의 문화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있으며 직접 극장의 작품 제작 과정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참여시킴으로써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워크숍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무료로 극장에서 선보이는 공연을 관람할 수 있으며 멘토링 또한 받을 수 있다.

https://youtu.be/yI5mqJn8RsA

Mind the Gap 프로그램 (출처 : https://www.nytw.org/education/mind-the-gap/)

'Mind the Gap'은 독특한 형식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세대 간의 격차를 줄이고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고자 하는 연극 프로그램으로 60세 이상의 노인과 14~19세 사이의 청소년이 서로를 인터뷰하고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단편 연극을 쓰거나 새롭게 구상하는 프로그램이다. 워크숍은 크게 인터뷰 후 글을 쓰는 워크숍이나 하나의 퍼포먼스를 만드는 두 가지 세션으로 나뉘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특별한 연극적 경험은 필요하지 않아 누구든 시도해 보고 싶은 욕구만 있다면 참여 가능하다.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 외에도 'Master Class'라는 이름 아래 일반 대중이나 아티스트들을 위한 클래스도 열리고 있어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고, 공연별로 공연 후 관람객들과 함께 토론하는 프로그램인 'Afterwords'나 'ShopTalk'도 운영하고 있어 관객들이 공연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하고 연극 미학이나 공연과 관련된 역사 및 정치적 맥락을 탐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뉴욕 씨어터 워크숍은 마치 땅 속에 숨겨져 있는 씨앗에게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부어주는 극장 같다. 땅 속의 숨겨진 씨앗이 어떤 식물의 씨앗인지, 탐스런 열매를 내놓을지 아닐지, 혹은 울창한 숲이 될지, 아름다운 꽃을 피울지 아무것도 모른 채 말이다. 비록 어떤 것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성장하는 그 과정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소중히 씨앗을 가꾸는 곳이다.

어떤 씨앗은 아름다운 꽃이 될 수도, 추한 식물이 될 수도 있다. 혹은 탐스런 열매를 맺어 실리적이 될 수도 있고, 아무런 효용적 가치가 없는 식물이 돼버릴 수도 있다. 결과를 보기까지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내가 지금 가꾸는 것이 무엇이 될지 말이다. 관객들은 오늘도 그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이스트 빌리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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