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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atre Romance Jan 25. 2024

월간독서_1월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작년 크리스마스, ‘2024년에는 책을 읽자!’라는 외침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엄지만 움직이며 도파민에 빠졌었던 지난날들에 대한 반성이 역시나 연말즈음이 돼서야 죄책감과 함께 진하게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빠와 매달 한 권의 책을 서로 선물해 주고 그에 대한 짧은 글을 쓰기로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말이 나온 김에 오빠와 함께 바로 동네에 있는 작은 큐레이팅 서점에 찾아갔고, 그렇게 나는 이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1월의 책’으로 선물 받았다.


나는 문학을 잘 모르기도 하고 그의 소설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음울함과 우울함 때문에 그의 책들이 딱히 내 취향이 아니었던 터라 책을 받아 든 나의 첫 소감은 “아, 나 무라카미 하루키 싫은데..‘ 였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책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의 오랜 달리기 인생, 즉 러너로서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꾸준히 달려왔던 지난날에 대한 회고와 삶의 태도를 담은 책이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그가 그간 만들어왔던 그 만의 작품세계나 소설과는 별개로, 그가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또 마라토너로써 보여주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존경해 마지않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소설가이자 자타공인 마라토너다. 그가 여타 다른 직장인처럼, 업무시간과 같이 하루에 집필하는 시간을 정해 두고 글을 쓴다는 사실은 그가 소설가로서 승승장구하며 함께 유명해졌다. (주변에 글을 쓰는 친구들이 종종 무라카미 하루키식으로 글쓰기를 해내겠노라 외치는 것도 봤을 정도다.) 엄격하게 시간을 정해두고 집중해서 소설을 써 내려가는 그의 집필 방식과 태도는 자연스럽게 달리는 것에도 이어졌고, 또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이 책은 그렇게 그가 글을 쓰고, 또 달리면서 종종 떠올렸던 삶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들을 앞으로 툭툭 내달리는 발걸음처럼 툭툭 거칠게 써 내려간 책이다.


그가 글쓰기와 달리기를 통해 습득하고 동반해 온 삶에 대한 몇 가지 통찰력들을 나눠보자면 역시나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내용은 집중력과 끈기, 꾸준함이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것에 물론 재능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재능 다음으로 글쓰기에서 중요한 자질은 집중력과 지속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책이 출간된 2007년, 그때 당시에도 이미 사반세기동안 매일매일 착실하게 달려 일주일간 60km 달리기를 달성하고, 매년 1회 이상 마라톤 경기에 참여해 왔다고 하니 엄청난 끈기와 지구력, 집중력을 가졌다고 말할 만하다. 으레 짐작하기로 ‘성공’했다고 일컫어지는 인물들, 무언가를 이뤄 낸 사람들은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이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작은 목표들에 집중하고 지구력 있게 그 일들을 해나간다. 한 번에 풀 마라톤을 뛰겠다!라는 허무맹랑한 목표보다는 하루 10km를 다 못 뛰더라도 일주일에 60km는 뛰겠다는 현실적인 목표가 꾸준함을 견인해 나가기에 더 적합한 것이다. 거창한 것을 목표로 내세우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을 집중하여 끈기 있고 꾸준하게 지속하는 것이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 포인트’가 아닐까. 하루키는 집중력과 지속력, 지구력은 다행히 재능의 경우와 달라 훈련에 의해 후천적으로 획득할 수도 있고 그 자질들을 향상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 실천해 볼 만하다.


꾸준함과 더불어 덧붙이고 싶은 부분은 ‘자신과의 약속’이다. 책에는 1983년, 하루키가 마라톤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한 남성 잡지에서 아테네를 여행하고 여행기를 써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되는데 그 김에 마라톤의 발생지인 아테네에서 공식적인 마라톤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달라는 마라톤을 진행하기로 한다. 함께 달리는 그 어떤 동료도, 결승선의 테이프도, 성원해 주는 관중도 없이 말이다. 그는 아테네의 지독하게 더운 여름이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결국 42km를 달려내며 마라톤을 완주하고 이것은 그의 인생 첫 마라톤이 된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마라톤 완주를 끝까지 해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과 한 약속 때문이다. 아무런 보상도, 격려도 없는 나 혼자만의 경기였지만 내가 스스로 그것을 해내 보기로 결심했으니 끝까지 달린 것이다. 타인과의 약속도 쉽게 깨버리는 현대 사회에서 단순히 내가 하기로 나 자신과 약속하고 결정했으니까!라는 이유로 마라톤을 뛰어버리는 그의 의지력과 정직성은 귀감이 될 만하다.


또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하루키가 말하는 ‘공평함’이다. 하루키는 세상은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내 그 마음을 역설적으로 바라보는 재주가 있다. 예를 들어 본인은 살이 찌기 쉬운 체질인 반면에 아내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 한다. 이를 보며 속으로, ’인생 참 불공평하다-‘ 하다가도, 도리어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났다는 것은 살이 찌지 않기 위해 매일같이 운동하고 식사를 절제해야 하는데 그러한 노력들의 결과로 몸은 건강해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매 문장에 특유의 위트가 묻어있어 책을 읽으며 실소가 나오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허무맹랑한 말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인생사에서 무엇이 공평한가, 혹은 누가 성공적인 것인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니까.


그는 책을 통해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정답지를 내놓는 것도, 달리기를 해야 한다는 선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툭툭 던져놓은 문장들에 매료된 독자들은 지난날에 대한 반성과 함께 아마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가 달리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 또한 지난날에 대한 엄청난 회의감과 죄책감으로 마음이 착잡해져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달려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 말이다. 물론 현실은 여전히 침대 위지만(?),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고 짤막한 글을 써 보겠다는 다짐에 용기를 주는 다정한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방구석 러너들의 마음속에 새겨둬도 좋을 만한 구절을 소개하고 글을 마친다.

같은 10년이라 해도, 멍하게 사는 10년보다는 확실한 목적을 지니고 생동감 있게 사는 10년 쪽이, 당연한 일이지만 훨씬 바람직하고, 달리는 것은 확실히 그러한 목적을 도와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그것은 또 사는 것의(그리고 나에게 있어서는 글 쓰는 것의) 메타포이기도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의견에는 아마도 많은 러너가 찬성해 줄 것으로 믿는다.  - P.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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