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싫어했던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머리를 뽀글뽀글 파마하는 것과, 목욕탕에서 때 미는 것.
유감스럽게 둘 다 정기적으로 행해지는 의식이었다. 엄마는 일요일에 목욕탕에 가서, 파란 이태리타월 (왜 이름에 이태리가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로 나를 벅벅 밀었다. 이 경우는 나은 편. 팔뚝이 우람한 세신 아주머니 (때 미는 분)께 맡겨지는 날엔 '으악으악' 비명이 난무했다. 아주머니는 인정사정도 없이, 온탕속 맛있게 불린 몸에서, 면발을 쭉쭉 뽑아내곤 했다. 목욕을 마치고 스스로에게 선물해 줄 맛있는 떡볶이를 생각하면서 참곤 했다.
어릴 적 별명은 ‘배추머리’였고, 파마를 주기적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내 의사를 관철할수 있는 ‘울고불고’ 작전이 있긴 했다. 엄마가 어릴 때 항상 웃는상이었다고 기억하는 걸 보면 그 작전은 자주 쓰지 않았나 보다.
돈키호테같이 이상주의자인 나는 어릴 적에도 칭찬받는 일을 잘 찾고 반복했던 것 같다. 웃는 상이라고 좋아하던 어른들을 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표정 짓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다. 기분이 별로면 담임선생님 앞에서도 오만상을 찌푸렸다. 방실거리는 내가 오히려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독일어 표현 중에 ‘Es gibt kein Muss.’(에스 깁트 카인 무스) 가 있다. 어떤 것도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없다는 뜻. 유학시절 같은 한인교회를 다닌 교포여자친구가 기숙사방에 놀러 왔다.
맥주 한잔 따라 놓고, 별 말이 없었다.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보따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말이 없는 시간이 길어진다.
“꼭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야.”
어떤 상황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강박에 얽매일 때가 있다. 카톡을 보내면 답톡이 와야 하고,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좋은 한 달 보내라 해야 할 것 같고, 단톡방에 아무도 답을 하지 않으면 무어라도 답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성친구와 사귀면 이래야 하고, 결혼생활은 저래야 하고, 친구 생일, 가족생일에는 카드에 꼭 몇 마디 적어줘야 직성이 풀린다. 내가 정해놓은 이런저런 규칙들을 어기면 불안해지고, 상황에 맞는 정답을 적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모든 상황을 통제하는 게 가능한 것일까. 너무 바빠서 톡을 봐도 답장을 못할 수도, 마음상태가 말을 할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이성친구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고, 결혼 후 기념일을 잊어도 큰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신혼에 좀 큰 일일수도.)
내가 정한 규칙들에 스트레스에 가장 예민하다는 장이 고통받고 있었다. 내겐 오랜 친구같은 과민성대장증세가 있다. 뇌에서 받는 많은 자극들, 당위적이지 않는 상황에 감당을 못하고 먹은 것을 바로 빼는 일이 허다했다.
독일 베를린 기숙사에 살 때 앞집에 신학을 공부하던 목사님 가족이 있었다. 딸을 독일 유치원에 보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딸이 활달한 성격임에도, 독일 여자아이들이 워낙 드세고(?) 발랄해서 도저히 기를 펼 수 없다는 말이었다. 독일 여자친구들과 학교에서 생활하는 난 그 말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았다. 어릴 적부터 ‘여성적’이라는 성역할을 배운 적이 없으니, 독일여자친구들은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태어나면서부터 갖은 성격을 그대로 지닌 듯 보였다. 독일 드라마를 보면 이런 날것의 성격과 표정이 잘 드러난다. 리얼리티 다큐멘터리 같이 꾸미지 않은 모습에 처음엔 거부감이 있었다.
순종적인 나는 싫어도 싫단 말을 못 하면서 때를 밀리고 파마를 했던 것 같다.
지금도 참는 일 하나는 잘하는데, 분노를 제 때 해소하지 않고 쌓아놓으면, 자신에게 향하고, 신문지상에 종종 등장하는 마음의 암 우울증 까지 간다는 것.
능암 탄산 온천에 홀딱 벗고 앉아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찾은 온천탕은 지하 600m에서 나오는 희귀한 천연탄산온천을 사용한다고 했다. 25.1 도라 처음에는 시원하게 느껴지는데, 어느 순간 몸에 탄산 기포가 생겨서 신기하다.
원탕 – 온탕을 번갈아 가면서 몸을 담가본다.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전해오는 뜨끈함을 느껴본다. 몸 구석구석 퍼지는 뜨거운 기운에 집중하니, 생각은 사라지고 머릿속이 비워진다. 목욕탕에 오는 것은 몇 년만인 것 같은데,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다. 오히려 잊었던 즐거움을 되찾은 것 같다. 목욕탕 의자와 대야를 비누거품으로 박박 닦고, 탕 목욕도 하고, 고층 아파트에서 느끼지 못한 수압 좋은 세찬 물줄기에 몸을 맡겨본다.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탕에 앉아있다.
두 명의 여자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 자녀가 결혼적령기가 되었는지, 둘이나 어떻게 결혼시켜야 할지 걱정이라는 말. 상대편이 이야기한다.
“그래도 키울 때 즐거웠잖아.”
“난... 그다지.”
좁은 탕 안에 앉아 있으니, 둘의 내밀한 대화가 낱낱이 들려온다. 탕 안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가는 걸까.
“난 1명 결혼시키는 게 이렇게 힘든데, 셋씩 키우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자녀가 아직 없는 나는, 아이를 가진 엄마의 대화에 귀가 쫑긋 선다. 벌거벗은 상태에서도 자녀의 결혼 문제는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걸까?
한쪽에는 민머리 여자분이 계신다. 눈이 두 번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떤 사연으로 민머리 이실까? 절에서 오신 걸까?
“때 민다고 하지 않았수?”
빨간색 비키니(?) 의상을 입고 계신 세신 아주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화들짝 놀래
“아니요!”
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싫은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다행이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충분한 지금이 좋다.
탄산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나오니, 로션을 바르지 않아도 얼굴이 반짝거린다. 젖은 머리를 말리려 드라이어를 잡았는데, 아까 두 여자분들이 노모와 함께 온 자매인 것을 알았다.
노모에게 크림을 발라드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목욕탕을 나선다.
머리를 박박 깎은 여자분은 예상외로 평상복을 입고 핸드폰을 찾는다. 낯선 몸들이지만 암묵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세팅되어 다행이다.
다음날 집에 가는 길 N710 카페에 들렀다. 햇살 비치는 창가에 앉아 사진을 찍는데 대각선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우리 축복이를 흘깃 본다. 개들은 집 밖에서 키워야 한다며 가끔 발로 펑펑 차주어야 말을 듣는단다. 요즘 개들을 이뻐만 한다며 말을 안 듣는다고.
웃으며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는 데 정색하며 받아칠 수도 없고. 오랫동안 찾아오지 않는 아기 대신 막둥이 역할을 하고 있는 축복이 라는걸. 난임의 아픔 치유해 주는 개라는 걸, 아저씨에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서둘러 카페를 나온 나는 축복이 에게 미안했다.
충주여행을 통해 스스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벗어나 볼 수 있었다.
목욕탕을 가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각자의 삶 속에서 목욕탕이 다른 모양으로 쉼이 되어 주는 걸 느꼈다.
어린 시절 나를 괴롭히던 것들을 들여다보고, 이제 싫다고 이야기하며, 어린 나에게 용서를 구했다.
지금 내 삶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꼭 그래야 한다는 규칙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아저씨가 강아지를 펑 차야 말 듣는다는 이야기도, 타인의 자유라는 것을. 내가 강아지를 키우는 자유가 있듯, 타인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한자 늘릴 수 있는 온천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