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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Nov 15. 2023

시심(詩心) 입은 겨울 가로수는 따뜻하다.

가로수의 겨울나기

겨울이 되면 풍성한 푸른 옷을 입었던 나무들이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수필가 김훈은 이야기했다. 가을바람은 사람의 마음을 이 세상과 마주 서게 한다고, 메마른 가을의 억새숲을 스치는 바람의 소리는 자진하는 억새의 풍화를 완성한다고, 그 바람은 시간의 본질이라고 했다. (*)

가을이 되면 세상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지만 서늘한 겨울바람에 부서질 것 같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면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는 것은, 나의 연해진 감성 탓일까?

극한상황에서 타 나는 추악한 인간의 본성이나 보고 싶지 않은 이면이 드러나는 영화를 보면 마음이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다.

풍성한 푸른 드레스를 입고, 밝게 빛나는 여름 태양빛을 배경 삼아 바람소리에 산들산들 춤을 추는 나무들을 보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감상 한 것처럼 마음이 즐겁다

안산에는 안산여성문학회(이하 안여문)라는 문학동호회가 있다.

문학을 사랑하는 여성들이 모여 백일장을 개최하고 시낭송회, 세 줄 시 대회, 소외계층에 손 편지 쓰기, 문학의 밤등 행사를 열어, 문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에게  언어로 뜨거운 위로를 건네는 비영리단체이다.


안여문 단톡방에 “가로수 겨울옷 시옷 입히기 시민 시화전” 공지가 뜨고, 입지 않는 니트옷을 수집한다고 한다. 교회 바자회용으로 모아둔, 늘어난 목폴라티 2개를 곱게 접어 놓았다.

11월 겨울이 발을 내딛고, 사람들이 옷장 속 겨울옷들을 황급히 꺼내던 어느 날, 맘씨, 솜씨가 좋은 여성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시옷을 갈아입은 나무들이 패션쇼를 열었다.


시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문학이라고 들었다. 정제된 언어로 우리 삶을 시인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지하철 역사에  걸린 시한수를 읽으며, 한숨 쉬듯 마음속 깊은 생채기를 쓰다듬는다.

시인이 된 시민들이 나무에 옷을 입히니 나무도 사람도 온기를 느낀다. 버려질 옷들이 나무 옷으로 재탄생하니 자원이 선순환되고, 친환경 적이다.

가로수 나무 옷 입히기는 나무가 동해를 입는 것을 방지하고, 해충들이 비교적 따뜻한 옷으로 파고드는 성질을 이용해 봄이 되면 옷을 태워 해충 번식을 막는다.

나무나 동상 기둥 같은 공공시설물에 털실로 뜬 옷을 입히는 “그라피티 니팅” 은 미국에서 2005년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

시옷을 입은 가로수가 부서질 것 같은 누군가의 마음을 꼭 붙잡아주길 바란다.

이 옷을 입은 나무들 역시,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 새순 돋는  봄을 향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를.




출처:

*김훈 [가을 바람소리]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243126622720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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