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미학

노인과 바다[어니스트 헤밍웨이, 더페이지 옮김/ 열린 문학]를 읽고

by 베를리너

[행운이란 예측할 수 없고,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오는 거니까 미리 알 수는 없어. 하지만 나는 어떤 형태의 행운이라도 어느 정도는 갖고 싶다. 그리고 얼마를 요구하든 지불할 거야. 하늘에 훤한 불빛이 보이면 좋겠는데. 내가 바라는 게 너무 많구나. 하여튼 무엇보다 지금 당장 제일 바라는 건 밝은 불빛을 보는 거야.]


꿈속에서 난 격렬히 테러리스트에게 저항하고 있었다.

내가 한 잠꼬대를 듣고 꿈에서 깨어났고, 뺏기지 않으려는 나의 간절함은 깨고 나서도 한참 이어졌다.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펼쳤다.

84일 동안 단 한 마리의 물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은 먼바다에 나간다.

탈진하고 사투를 벌이며 남긴 그의 말은 너무 유명하다.

인간은 파멸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



노인의 육체는 유리처럼 부서졌지만, 그는 청새치에게 오랜 친구인 양 말을 걸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의지를 보인다.

그는 거대한 청새치를 잡는다. 승리의 기쁨도 잠시, 상어의 습격을 받은, 그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그의 전유물 청새치는 살이 다 뜯긴다.

상처와 혈흔으로 얼룩진 할아버지를 본 소년 마놀린의 마음은 미어진다. 산호초 길을 따라 걸으며 울음을 터트린다. 할아버지의 부상과 통증은 그가 꾸는 꿈이 고통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모든 걸 잃은 듯 초라하게 도착한 집에서 잠이 들고,

꿈에서 사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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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파멸당했지만 패배하지 않았기에.

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을지 모른다.

파멸이 이토록 고결하고 빛나는 것일 수 있다니.

그는 지지 않았고, 나 역시 그렇다.


제 마음에 머물렀던 문장은 댓글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