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다음 장면을 응원할게

판데모니움 [유상아 지음/소원라이트나우]을 읽고

by 베를리너

‘빛나는 너의 다음 장면을 먼 곳에서 응원할게.’

억울하게 죽음을 맞은 선정이는 마지막까지 친구 은호를 기억했다. 은호는 고3 학생이자, 촉망받는 화이트 해커다.

처음 ‘판데모니움’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 등 내가 애정하는 판타지물일까 하며 헛물을 켰다. ‘판데모니움’ 은 범죄, 착취 구조가 얽힌 현실과 연결된 디지털 공간이다.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이 열리는 세계.

평소 관심이 많던 자립 청년 지훈이가 등장할 때까지, 이 소설은 말랑말랑하고 판타지가 가득한 무지개 같은 소설일 줄 알았는데.

한 장 한 장 넘기며, 이야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집중력에 좋다는 마약 ‘빨간 약’.

성적을 올리기 위해 손을 댔지만,

그 약은 불법 대출로,

성 착취로,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지는 폭력으로 이어졌다.

요새 심란해서 뉴스를 오히려 안 보고 있었는데, 9시 뉴스에 나올법한 현실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 나를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픽션이지만, 현실적인 배경 그리고 입시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이들의 몸부림이 마약중독이라는 구부러진 길로 향하고 있다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야기는 설득력 있게 흘러갔다.

참담하고 씁쓸했다.

막말 갑질하는 학부모 때문에 우울증에 빠져,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교사 엄마를 둔 은호가 정의의 수호자로 부활한다.

그조차도 MZ조직폭력배에게 물고문 등 쓰라린 폭력으로 해코지를 당하지만, 전직 방송국 스포츠 프로그램 카메라맨을 둔 아버지 덕분에 기자에게 도움을 받는다. 기록과 영상이 증거가 되어, 억울한 현실을 뒤집는 단서가 된다.


‘박제’ 당하고 협박에 시달린 선정이. 자신을 보호해야 할 어른마저 외면한 현실 앞에서 무너진다. 은호는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딛고, 화이트 해커의 역량을 영리하게 발휘해 그의 누명을 벗겨준다.

세상 살기 힘들다, 사회생활 힘들다, 한탄하듯 말을 했지만, 능력, 실적, 효율 중심의 각박한 세상사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빠르게 검은손을 뻗치고 있었다.

동화와 청소년 소설가를 꿈꾸는 내가 유상아 작가의 ‘판데모니움’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다.

눈에 보이듯 찰진 묘사와, 독자의 심리를 주무르는 유려한 글솜씨에 반해, 한자리에서 마지막장을 넘기고 말았다.

은호를 응원한 또 다른 어른, 김효정쌤처럼 누군가가 나를 응원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걸어가야겠다.

세상은 거창한 영웅이 아닌, 이름 없는 이웃들의 선택과 희생에 의해, 천천히 바뀌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