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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Mar 03. 2024

친절한 나라에 가다

양평 여행기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요?

서른여덟, 덩치가 산만 한 남자 후배가 물었다.

있다. 나의 옆 사람.

올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친정어머니가 ‘회전근개파열’로 어깨 수술을 받았다. 엄마의 어깨는 아버지 사업의 동반자로 많은 일들을 해냈다. 70년을 버틴 어깨 힘줄이 닳디 닳아 끊어진 것.

명절 전 장거리 운전과 그 여파를 기억한 온몸 구석구석에 명절 스트레스가 퍼졌다.

다행히 어머니 수술은 잘 되었고, 빠른 속도로 퇴원 후, 재활로 새 근육과 힘줄을 기르는 중.

마음이 쪼그라들고 긴장되는 일들이 연이어 있는 2월을 맞이하기에 앞서,

나에게 친절하기로 하고 즐거운 일 하나를 선물했다. 옆 사람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즉흥적으로 여행 떠나기! 나의 옆 사람, 반려견 축복이와 함께!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러 가지가 바뀐다. 어제와 다른 체력, 삶에 대한 피로도, 여러 경험과 사람을 겪은 후 생기는 편견 내지는 고집이 더해지면, 여행 취향도 바뀐다.

20대 때는 두려움만큼 큰 열정과 용기 덕에 두 달 유럽 배낭여행을 기획했다. 유레일 패스로 유럽 전역을 횡단하며 여행했다. 30대에 다녀온 미국 서부여행도, 일본 오키나와와 북해도 여행도 패기를 장착하니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컸다.

이제는 자연의 품에 폭 안겨 쉴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욕쟁이 할머니가 아닌, 친절한 사장님이 서빙해 주는 음식점에서 밥 한술 뜨고 싶다.      

인터넷 검색하는데, 어쩌다 보니 눈에 바로 뜨인 애견 펜션이 있었다.

“저녁 늦게 죄송한데, 내일 방 있을까요?”

금요일 저녁 주인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너머 또랑또랑 밝게 들린다.

“있어요. OO에요.”

세웠던 예산을 웃돈다.

“죄송해요. 저희 예산이 그보다 적어서요….”

10분 정도 후 아주머니가 문자로

“주중 가격 OO로 해드릴게요. 내일 오실래요?”

이게 말로만 듣던 ‘땡처리’인가? 주인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기 죄송한데, OO 가격으로 가능할까요?”

“그래요! 지금 입금해 주시면 예약해 드릴게요!”

조금 더 할인을 요청했는데, 경쾌하게 받아주는 주인장의 목소리에 기분 좋게 예약을 마쳤다.

생각보다 넓은 방과 그 안 스파를 보니, 만족도가 높아졌다.


 동반한 축복이는 널따란 강아지 운동장에서 뛰뛰하면서 즐거운 에너지를 마구 전염시킨다.

주인장은 라면 끓여 먹을 생수도 정수기에서 받아 주었다. 1박을 즐겁게 보냈다.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던 길고양이들의 합석에 잠깐 놀라긴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엄지 척 모양이 인상적인 식당에 들어섰다.

주인아저씨는 캐리어에 담긴  축복이를 기꺼이 맞아주고,

“반찬 모자라요?”

뛰어난 공감 능력을 보여주며, 고춧가루에 조린 감자조림, 멸치조림을 챙겨주었다.

아저씨의 친절에 마음이 조금씩 펴졌다. 익숙하면서도 기분 좋은 이질감이 공기 속에 흐르고 있었다.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양강섬을 향해 떠났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와 공놀이하고 있고, 벤치에 앉아 편하게 강물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남편과 함께 양평미술관을 둘러보았다. 자연을 주제로 붓놀림이 멋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낯선 시선을 따라 세상을 여행했다.

축복이도 여행에서 제외되지 않고, 편안한 강물을 배경 삼아, 봄 냄새 섞인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공원을 산책했다.

나에게 친절했던 나라, 양평에서 또 다른 시간을 보내길 기대한다. 불친절했던 삶을 잊고, 생기 있는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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