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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Feb 03. 2024

'글쓰기'에 진심

어릴 적 꿈은 ‘아나운서’였다.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보면 놀랄 수도 있다. 지금의 나는 사회생활을 통해 간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숨이 죽었다고 해야 하나 ^^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번쩍 들고,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추는 등. 주목받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내 생각을 말로, 글로 표현하는 것이 즐거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배정된, 중학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였다. 신설된 학교였기 때문이다. 나는 새 교실안, 새 의자와 책상 등 새것이 가득 찬 건물에서 ‘1회 입학생의 특권’을 맘껏 누렸다. 신설 학교에 배정되어 의욕이 펄펄 넘치는 젊은 선생님들과, 열네 살 사춘기의 문을 열었다.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전교생 앞에서 교가를 지휘하기도 했다. 신체적, 심리적 변화와 함께 시작된 사춘기 여학생은 ‘무표정 지휘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여느 대한민국 수험생의 생활과 비슷했던 고등학교 시절. 수능과 내신이라 불리는 바위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대학입학’의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기억에 남는 것은 지역 내 유일한 남녀공학 고등학교라는 것. 남학생 여학생 건물이 나뉘어 있었다. 등교할 때 남학생이 있던 건물을 지나가야 했는데, 관심을 두는 여학생에게 ‘하얀색 분필’을 던지는 (?) 의식이 있었다. 반대의 경우는 ‘빨간색’. 매일 아침 어깨에 떨어지는 무수한 하얀색 분필을 털어내지는 않았지만, 이제 막 이성에 눈을 뜬 열여덟 청춘의 핑크빛 썸씽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나를 찾는 독서 모임’에서 만났던 수줍음 많던 남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유 청소년기를 초등학교~고등학교 시절로 정했을 때, 내가 가진 내면의 것들을 ‘발표(말하기)’ ‘글짓기’로 대방출하는 일들이 즐겁고,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1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글쓰기는 보고서, 고객 또는 직원에게 쓰는 메일, 홈페이지 공지글, SNS 홍보 글, 주요 회의의 ‘축사’ 등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그리고 이제 40대 중반이 되어, 오는 3월부터 사이버대학 ‘문예창작과’에 편입을 앞두고 있다.
문예창작과 지원을 하면서 지원서와 ‘적성검사’를 작성하게 되었다. 적성검사에 출제된 다수의 수학 문제를 풀면서 ‘숫자’와 ‘도형’이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임을 깨닫게 되었다. 경쟁률은 모르지만, 그래서 합격했는지도 모른다. ㅎㅎ

글을 다시 쓰게 된 건, 작년부터였다. 문학동아리를 다니면서 ‘동화’를 쓰며 ‘동화작가’의 꿈을 키웠다. 대학 때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다.
문학동아리 교수님이 글 쓰는 재미를 조금씩 일깨워주었다. 같이 공부하는 문우님들의 격려도 앞으로 나갈 힘을 주었다.

운전하기 시작한 지 이제 만 4년 차가 된다.
“옆을 봐야지! 뒤를 봐야지!”
“핸들 꺾어!”
"깜빡이!"
처음에 옆자리 앉아 지도하는 친정아버지의 호통에 간이 쪼그라들기도 했다. 누가 '빵!' 경적을 울리면, 사색이 된 초보운전자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제 서울 시내 어디든 주차 문제만 해결되면, 차를 가지고 갈 정도가 되었다. 물론 늘 운행 전 안전운전을 기도하며 시동을 건다. 운전에 능숙해지는 날 보면서 ‘반복의 신비’를 발견하게 된다.

올해 문예창작과에서 쓰고 싶은 동화, 시, 시나리오, 소설 등을 자유롭게 쓰고 도전하고 싶다.
글을 쓰는 길에서  만난 소중한  문우분들의 ‘❤️’ 꾸욱과 응원의  한마디가, 나의 작은 날갯짓에 마중물이 되어준다.
따뜻한 마중물로 내 안에 이야기들이 활자로 태어나길 바란다.

반복의 신비가 기다려온 ‘등단’으로 오묘한 자태를 드러내길 바란다. 그래서 등단했습니다. 출간했습니다.라는 글을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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