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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Jan 05. 2024

탁구가 삶에 들어오다.

새롭게 시작한 취미가 있다.

결혼하니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서로의 취향이 달라서 같이 즐길만한 것들의 교집합이 적었다. 영화관에서 로맨틱 코미디와 액션 스릴러, 산책과 등산 (남편은 운동이 될 만큼 정상까지 찍고 오는 게 당연), 여행과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뒹굴하기 등 조각조각 분열되었다. 난 수영과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는데 남편은 수영을 못하고 자전거는 두 대인데 같이 타러 나가기 쉽지 않다.

이쯤 되니, 취미로 연대감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진부한 질문으로 분류되는 “취미가 뭐예요?”라는 사실 사람과 사람을 묶어주는 진기한 능력을 찾는 과정의 출발점이다.

이해관계나 목적 없이, 어떤 대상이나 행위를 순수하게 좋아하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면 나도 모르는 열정과 애정이 샘솟고 유대감이 생긴다. 대학 때 전공학과 친구들보다, 같은 취미를 나누었던 관현악 오케스트라 친구들과 졸업 후 20여 년이 흘러도, 언제든 다시 만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그 이유일 듯.

남편은 결혼 전, 탁구장에서 일주일에 3~4 번은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내며 운동했었다. 나에게 탁구란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때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박하게 경기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응원할 때 외에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탁구를 시작하면 남편과 새로운 교집합이 생길 것 같았다. 마침 살고 있는 아파트의 탁구 동아리 광고를 주민 단체 대화방에서 본 적이 있었다.

총무님께 전화를 걸었다.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하는데, 구경하러 오세요.”

친절한 설명에 남편과 함께 11월 초 휴일 체육관에 구경 갔다.

단체 티셔츠를 입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 탁구공을 똑딱똑딱 주고받으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탁구 쳐 본 적 있어요?”

“어릴 적 몇 번 친 것 같아요.”

기억이 흐릿한 초등학교 시절 추억을 소환했다. 나는 초보로 분류돼 탁구 코치님께 레슨을 받아야 한단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끈기 있게 지속하는 것이 관건. 모든 운동이 그렇듯 장비 발이 기본. 남편이 인터넷에서 골라준 탁구채를 준비해서 탁구장에 갔다.

코치님이 가르쳐 준 대로 탁구채 쥐는 것부터, 왼쪽 눈썹까지 스윙하는 걸 수십 번 연습하는 중.

“같이 탁구 랠리 해보실래요?”

동호회 낯선 분이 묻는다. 온몸을 공중 부양해야 공 맞히기가 가능한데, 무슨 랠리?

초보의 어색함으로 멈칫했지만, 탁구 치자고 하면 응하는 것이 예의, 문화인 것 같아 탁구채를 들고 엉거주춤 포즈를 취했다.

예전에 모 스포츠 댄스 동아리에서 모르는 이성과 자이브, 탱고, 등을 추는 걸 보고 기겁해서 발길을 끊은 적이 있다. 조용한 외향형인 나는 낯선 이와 스포츠댄스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그에 비해 탁구는 네트를 가운데 두고 공을 주고받는 건전한(?) 운동이지만, 처음 보는 분과 공을 똑딱 주고받는 게 좀 어색했다.

공도 맞지 않아 상대편은 내 공 줍느라 탁구장을 휘젓고 다녔다. 연신 작고 하얀 공 찾느라 탁구는 뒷전이 됐다. 탁구 동호회에 합류한 지 2주 정도 지나고 12월 첫 주말 어영부영 송년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같은 아파트 주민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고, 된장찌개 퍼주고 상추, 쌈장 챙겨주니 이웃사촌이란 말이 살갑게 다가왔다.

이제 결혼 4년째. 남편과 처음 모임에 부부로 함께 등장했는데, 둘이 지낼 때와 그룹 안에서 부부로 자리매김하니 서로에 대해 다시 보게 되고 색달랐다.

“탁구 몇 년 쉬셨어요?”

“예, 코로나 이후 3년 정도 쉬었습니다.”

“폼은 좋은데 실력이 영 떨어졌나 봐요? 허허”

“네, 형편없습니다. 하하 잘 좀 가르쳐 주십시오!”

남편은 이웃들의 격의 없이 하는 농담에도 물 흘러가듯 잘 맞추었다. 부부가 함께 탁구 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많은 선배 부부가 응원해 주었다.

탁구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먼저 가자고 했지만, 혼자 가서 코치님께 교습받고, 모르는 이웃들과 섞여서 똑딱똑딱 공 맞히기를 하고 있다.

공을 주고받는 시간이 끊기지 않고 계속되면, 나와 공 그리고 상대 선수로 세상이 극히 단순화된다. 의외의 장소에서 몰입의 즐거움에 빠진다.

전문 탁구장이 아닌 만큼 시작과 마무리할 때 탁구대를 펴고 정리하는 것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한다. 주민들로 구성된 탁구 동호회 임원분들은 단체대화방에 즐탁(즐겁게 탁구 합시다) 합시다! 메시지와 사진, 따듯한 글들을 남긴다.

탁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벽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을 익명의 공간에서  배려하고, 초보자의 ‘날아라! 탁구공’도 금세 찾고 인내해주는 온기가 채워졌다.

이웃의 재발견, 몰입의 즐거움이 피어나는 탁구 동호회, 내 삶에 와줘서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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