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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리너 Dec 11. 2023

2023년 최고의 날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고

정말 오랜만에 앉은자리에서 반절을 읽어버렸다.

한 문장을 읽으면 다음 문장을 읽지 않고 못 배긴다. 동영상이나 쇼츠가 아닌 활자가 내 집중력을 쥐고 흔드는 경험은 오랜만이다. “책 읽기에 집중이 어렵다"라는 고민은 쏙 들어가 버렸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다는 외국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스티븐 킹의 책을 읽고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베르나르의 책 보다 책장이 빠르게 넘겨졌다.)


초반부에 작가의 어린 시절 처녀작 탄생기 그 이후 어떻게 글쓰기로 독자를 유혹할 수 있는지 풀어쓴다. 부사와 수동태가 난무한 그렇고 그런 작가의 문체부터, 부족한 독서량으로 인한 상투적인 은유나 이미지를 쓰는 것이 왜 독자의 시간을 뺏는 것인지. 타고난 이야기꾼이 들었다 놨다 난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빼앗겼다.

올해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내 글을 읽고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7월 18일 안산여성문학회에서 알게 된 문우분 추천으로 브런치 스토리에 가입했다.

미련이 남은 헤어진 연인처럼 원고를 손에서 떠나보내지 못한 채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9월 15일 금요일 오후, 주말을 앞둔 에디터의 기분이 날아갈 것 같길 바라며 브런치 스토리 작가 신청. 9월 18일 오전 10시 58분 브런치 작가 합격 메일을 받았다. 공식적인 채널에서 내 글, 글 속에 담긴 의도, 내 꿈이 인정받은 것 같아, 에디터가 아니라 내가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1217명이 브런치에서 글을 읽었고, 일요일 교회에서 얼굴만 알고 지낸 지인이 귓가에 대고 “글 잘 읽고 있어요!” 소곤소곤 말해주는 일도 있었다.


파트타임으로 독일어 강의를 하며 아내는 꿈을 먹고사는 중. 각종 공과금과 축의금을 내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주기 위해 돈을 벌고 있는 남편과 고된 하루를 마감하며, 1인용 샤부샤부를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11월 21일 저녁 7시 42분 모 사이트에서 원고 채택 알림 문자가 왔다. 내 글로 처음 원고료를 받는 순간. 액수보다 원고료를 받는다는 것에 감격했다. 공감 외에 또 다른 인정의 표시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8시가 마감이라고 주의를 주는 식당 이모님들 앞에서 “와 대박!”을 크게 외쳤다.  

남편을 마음으로 부둥켜안았다. 마침 옆에 앉아있어서 가장 먼저 등단 소식(?)을 접했다.  

"샤부샤부는 내가 낼게!"

식당 이모님들은 마감 직전에 식사를 마친 우리들에게 기분 좋게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인사했다. 연애할 때 아니더라도, 인정받을 때 세상은 온통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으며 적확한 직유법은 낯선 사람들 틈에서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일이라는 것을. 많이 듣긴 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좋은 소설의 기본 원칙은 독자에게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는 거라는 것.

스티븐 킹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한 가지 이유, 방금까지 아무 생각 없었는데 한순간에 이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떠올랐다는 것이란다.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는 통찰력의 순간이 일기 때문이라는 것. 통찰력의 순간이 나에게도 있었는지 올해 동화 습작 6편, 블로그와 인스타에 39개 포스팅, 브런치에 11개의 글을 쓸 수 있었다. 블로그와 인스타는 책 리뷰의 본래의 목적에 충실했고,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각기 다른 채널마다 성격에 맞게 쓰려고 했다.

글쓰기 시작하면서 브런치 작가들, 블로거들과 소통하는 일이 일상에 더해졌다.

내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에 공감한다는 일이 가슴 벅차다. 박차를 가해 2024년 신춘문예 동화에 응모했다. 등단도 중요하지만, 동화 동아리에서 만난 글벗들, 지도 교수님 나를 빛나게 하는 보석 같은 존재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고, 많은 사람들과 글로 소통하며 그 감동을 언제든 다시 꺼내 볼 수 있었던 올해, 나만의 어워드를 필명 ’ 베를리너’에게 주고 싶다. 스티븐 킹이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던 외로운 시기 격려해 준 아내 태비가 있었던 것처럼, 단 한 사람 나를 믿어주는 독자가 있다면 힘이 날 것 같다.   

작가 베를리너!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기를.  [참조 욥기 8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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