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mpi, Tuoni, Uragano 번개, 천둥, 폭풍우
<오텔로> 제1막 Atto Primo
오페라 <오텔로>의 첫 장면은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뚫고 오텔로 장군을 태운 지휘 선단이 키프로스 섬으로 입항하는 극적인 씬(Scena)으로 시작된다. 악보의 첫머리에는 '람피, 투오니, 우라가노'(번개, 천둥, 폭풍우)라고 적혀 있는데, 오케스트라의 휘몰아치는 광포한 총주와 합창단의 긴박감 넘치는 외침이 뒤엉키며 베르디 오페라 역사상 가장 숨 막히는 도입부를 연출하고 있다.
여기에 대본가 아리고 보이토가 써 내려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이탈리아어가 - 마치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에 아로새겨진 섬세한 자수 문양처럼 - 베르디의 극적인 음악과 광휘롭게 조응하며 음악적 황홀경을 연출한다.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오텔로의 기함을 보고 키프로스 사람들이 애원과 절규의 합창을 부르는 대목이다.
신이여, 폭풍의 광채여! Dio, fulgor della bufera!
신이여, 모래언덕의 미소여! Dio, sorriso della duna!
그들은 이어서 노래한다.
"살바 라르카 에 라 반디에라 델라 베네타 포르투나! Salva l'arca e la bandiera della veneta fortuna!"
(신이여 행운의 베네치아 함대와 깃발을 지켜주소서!)
이 대목은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패시지다. 보이토는 오페라 속에서 산문적인 대화체와 난해하고 현학적인 어휘의 사용을 주저하지 않지만, 동시에 이탈리아어가 지닌 황홀한 리듬적 울림의 추구도 마다하지 않았다. 로시니나 도니제티 시대의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가 지나친 운문적 축약으로 음악 그 자체의 청각적인 감흥을 추구했다면, 보이토는 호흡이 긴 산문체 속에도 각운의 정묘한 리듬감을 부여하여 마치 고결한 귀공자가 아름다운 산문시를 읽어 내려가는듯한 놀라운 느낌을 준다. 사실 <오텔로>는 대본을 읽어나가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놓는 그런 작품이다.
뉴욕과 뮌헨, 베네치아, 볼로냐, 프라하, 서울, 도쿄 등 <오텔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공연을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경험한 가장 충격적이고 완벽한 도입부는 역시나 2019년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에서 펼쳐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였다. 주빈 메타의 지휘봉이 한번 허공에 원을 그리자 베를린필 특유의 그 무시무시하고 뜨거운, 열광적이고 통렬한 사운드가 극장을 단숨에 관통했다. 묵직하고 강건한 톤은 지휘자 메타의 전매특허 스타일이고, 강렬하게 포효하는 소리들 속에서도 개별 악기들이 낱낱이 다 포착되는 건 베를린필만의 '마법'이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한덩어리가 되어 거대한 음향을 쏟아내는 가운데, 극적으로 상륙에 성공한 오텔로가 기쁨의 포효를 터트리며 오페라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기뻐하라! "에술타테!"
오텔로 :
기뻐하라!
무슬림의 자부심은 바다에 수장되었다.
우리와 하늘의 영광이다.
우리 함대와 폭풍우가 무슬림을 패배시켰다!
(Esultate! L’orgoglio musulmano sepolto è in mar.
Nostra e del ciel è gloria.
Dopo l’armi lo vinse l’uragano.)
https://www.youtube.com/watch?v=SDmLxPJZVi4
사령관 오텔로의 무사 귀환에 섬 주민과 장교들, 수병들이 뒤엉켜 환희의 축제를 시작한다("환희의 불꽃이여! Fuoco di gioia"). 셰익스피어 원작의 베네치아 장면이 생략되어 있기에 이전에 일어난 갈등은 인물들의 대화로 축약되어 간접적으로 제시된다. 무어인 출신의 장군 오텔로는 베네치아 원로원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와 얼마 전 결혼한 사이. 그러나 베네치아의 귀공자 로드리고는 이를 인정하지 못해 그를 저주하고 있고, 오텔로 부대의 장교인 이아고 또한 라이벌인 미켈레 카시오 대위에게 승진에서 밀리자 오텔로에게 증오심을 불태운다. 사실 이아고는 오텔로에 대한 인종적인 멸시 혹은 그저 아무 이유 없는 순수한 악의에 의해 오텔로를 경멸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아고는 본격적으로 '오텔로의 세계'를 파멸시키려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우선 술에 약한 카시오를 도발하여 사고를 일으키는 게 1차 노림수다. 여기서 이아고가 술잔을 치켜들고 섬 주민들과 어울려 부르는 노래는 '오페라 역사상 가장 흉악한 권주가'로 유명하다. 2001년 라 스칼라에서 레오 누치가 전설적인 가창을 들려줬다. 마치 잭 니컬슨을 오페라 무대에서 만난듯한 느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VaQs1RaqOEg
카시오는 점점 더 술에 취하고, 전 총독 몬타노가 탑에 올라가 경계를 보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몸을 가누지 못한다. 이에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웃자, 흥분한 카시오가 싸움을 벌이려 한다. 몬타노가 말리는데, 카시오가 그에게 대들어 칼로 몬타노를 찌른다. 이아고는 말리는 척하면서 종을 울려 사건을 섬 전체에 알린다. 화가 난 오텔로가 카시오의 직위를 박탈한다.
그때 데스데모나도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이 깨어 등장한다. 한밤중에 홀로 남은 두 사람은 신실한 어조로 사랑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겪은 과거의 고통, 사랑이 피어나던 과정과 기쁨으로 충만했던 순간들을 회상한다. 1막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사랑의 2중창('Gia nella notte densa')이다.
오텔로 :
내 이야기는 그대의 아름다운 얼굴을 눈물로 젹셨고
그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오게 했네.
그러면 영광과 천국과 별들이 축복을 위해 내 어둠 위로 내려앉았지.
데스데모나 :
나는 당신의 검은 머리카락들 사이에서
지혜의 영원한 아름다움이 빛나는 것을 보았어요.
사랑의 찬란한 희열 속에 오텔로는 마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대사를 외친다.
오텔로 :
죽음이여, 오라!
죽음의 순간이여, 이 포옹의 희열 속으로 나를 데려가라!
(Venga la morte! e mi colga nell’estasi
di questo amplesso il momento supremo!)
https://www.youtube.com/watch?v=oK192wmW0kk
'죽음에의 동경'(타나토스)은 곧 생사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월적인 영원한 사랑에의 갈망이기도 하다. 이렇게 제1막은 마무리된다.
[1막 주요음악]
· 오텔로의 등장 "기뻐하라 Esultate"
· 이아고의 축배의 노래 "부어라, 마셔라, 목을 적셔라! Innafia l'ugola! Trinca, tracanna!"
· 데스데모나와 오텔로의 사랑의 2중창 "밤의 정적 속으로 소란은 사라지고 Gia nella notte dens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