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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Mar 16. 2020

공간들에 대하여 : 커피 커넥션

서울, 베를린, 함부르크 공간들의 기억

지금 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들은 분명 불만이 많을 것이다. 서울대입구에는 시원찮은 쇼핑몰 하나에 큰 프랜차이즈 카페들, 그 뒤에 아기자기하게 모여서 반은 서울대 학생들을 위해, 반은 관악산을 오르는 등산객을 위해 쉴(그리고 기타 등등의 행위들을 위한) 곳을 제공하는 모텔들만 많을 뿐, 특색 있거나 인스타그래머블하거나 힙한 곳이 없다고. 낙성대의 윗동네에는 도대체 수업이 한 번이라도 열린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 영어캠프와, 물의 낙하를 통해서 중력을 관찰하는 장치에 물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아무도 없다는 괴담이 떠도는 과학 캠프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 아랫동네에는 작고 별 볼일 없는 동네 카페며 밥집들만 있다고. 신림은 어떠한가. 서울대를 다니는 학생 중 단언컨대 아무도 신림의 클럽에 가지 않을 것이다. 대화방이며 키스방은 왜 그리 또 많은지. 버스 타고 지나가면서 정류장 이름으로만 들어봤을 법한 전설의 녹두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체 왜 우리 학교 근처에는 합정이나 망원, 경리단길이나 우사단로같은 세련된 데이트 코스가 없단 말인가. 샤로수길이라는 듣기 민망한 별칭을 갖게 된 서울대입구와 낙성대 사이의 시장길이 그나마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고, 떠오른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젠틀리피케이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만큼 많이 뜨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하여 후배들은 여전히 수업이 끝나고 셔틀이며 5512 5513 5515 버스를 타고 어딘가의 지하철 역으로 나온 뒤에 2호선으로 몸을 싣고 동으로 서로 향하는 것이다. 


05학번으로서 나는 나 자신을 화석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마법 같은 문장을 안다. 내가 1학년이었을 때에는 말이야, 서울대입구역 사거리에 서 있는 쇼핑몰, 에그옐로우가 없었다? 이미 난 몇 번 12나 14학번쯤의 후배들에게 이 말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난 아직도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더 이상 새로운 학번의 후배들을 만날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지금의 서울대입구와 낙성대는,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 비하면 정말 많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을 위한 놀 거리가 많아졌다. 세련된 카페도, 스테이크와 와인을 파는 식당도, 심지어는 스타벅스도 많아졌다.  


하지만 멀리 베를린에서 낙성대를 생각하고 있자니 나는 마치 버블 경제 시절의 황금기에 유행했던 시티팝이 이제 와서 한국에서 유행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전해 듣고,  모든 것이 아련한 낙관으로 가득 차있었던 그때의 호시절을 추억하면서, 차가운 다다미방에 앉아 매실절임에 미소국을 반찬으로 하얀 쌀밥을 먹는 일본의 어느 할아버지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 할아버지에게는 타케우치 마리야가 있었고, 나에게는 카페 커피커넥션이 있었다. 시대를 앞서간 힙함으로 충만했던 그 카페를 기억해보고자 이 글을 쓴다.  


나는 그 카페를,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힙의 아이콘이었던 BS 덕분에 알게 되었다. (BS는 한때 퀀텀 점프에 비견될 정도의 엄청난 도약을 감행하여 시대를 앞서갔으나, 그가 고양이 봉제인형 사업을 하느라 멈춰있는 사이 이제는 시대가 그를 따라잡아버린 듯하다) 그때는 아직 내가 낙성대에 살기 전이었다. SW과 함께 낙성대의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던 BS의 집에 무엇 때문인가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바로 옆 옆 건물인가의 일층에 좋은 카페가 있다고 그가 말했다. 낙성대에 있을 것 같은 카페가 아니야. 하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과연 그러했다. 모든 것이 낙성대 힙이 아니었다. 폴리곤 형태의 유리 조형물이 문을 감싸고 튀어나와있었다. 벽은 사선으로 나뉘어 투 톤의 파스텔 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좁은 테이블마다 디자인에 신경 써서 디자인된 램프가 올려져 있었다. 한쪽 벽에는 언제나 프로젝터로 무엇인가 영상이 틀어져 있었는데, 무려 비메오에서 선별한, 일반적인 „아름다움“과 미학적인 „아름다움“ 사이의 경계를 오가는 작가적인 성향의 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들이 연달아 상영되며 플레이 리스트를 만든 사람의 취향을 뽐내고 있었다.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르겠지만 일하는 사람들 역시 범상치 않았다. 하얀 캐주얼한 라인의 셔츠에 면바지. 머리 스타일도 언제나 단정했다. 파는 메뉴 역시 범상치 않았다. 다른 것보다도 아일리쉬 커피가 있었다. 2011년의 낙성대에 말이다. 


그 뒤로 나는 낙성대의 준아카데미로 이사를 왔고, 그렇게 나와 그 카페는 같은 동네 이웃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카페는 언제나 좁은 테이블에 앉아 작고 맛있는 음료를 홀짝 마시며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곳이 아닌, 맥북과 어댑터와 마우스를 들고 와서 아메리카노를 리필해 마시면서 작업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자주 이 카페에 가지 않았다. 대신 탐탐이나 카페베네 같은, 분위기는 별로지만 오래 앉아서 작업을 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에 더 자주 그리고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드문 드문, 아 오늘은 왠지 힙한 카페에 가고 싶은 날이다! 하는 생각이 드는 날이면 나의 단짝인 노트북을 집에 홀로 내버려 둔 채, 가벼운 차림으로 사뿐히 언덕을 내려오고 이면도로를 건너 그 카페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종종 같은 과 사람들을 마주쳤다. BS도 한 번 만났고 후배들도 여럿 만났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카카오로 이직한, 여러모로 광고인의 이상을 현현해내고 있는 어느 선배가 여러 후배들과 만나 일 관련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디자인과 졸업 > 광고대행사 근무 > 카카오로 이직"이라는 한국에서 힙 감수성이 이보다 더 높을 수 없어 보이는 커리어를 쌓으신 분 역시 이 곳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나는 조금 뿌듯해졌다. 적어도 망원 어디서 카페 좀 다녀봤다는 친구가 낙성대에 놀러 왔을 때 기죽지 않고 데려올 수 있는 카페가 한 곳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위안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망하게도 갑자기, 그 카페는 용문의 어디로 옮겨가 버렸다. 인스타그램의 계정에서는 용문에 새로 문을 연다는 카페의 공사며 인테리어의 사진이 올라왔다. 넓었고, 여전히 힙했다. 하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카페일 뿐이었다. 핀터레스트에서 찾아볼 수 있는 힙한 카페 인테리어 사진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 조금 슬펐다. 그리곤 사진 업로드가 조금씩 뜸해지는 듯싶더니, 내가 마지막 업데이트를 본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카페는 문을 닫은 것 같았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카페 커피 커넥션을 알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대입구역 어느 골목에 숨어있었던, 반지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가봤던 모든 카페 중에서 제일 깨끗하고 단정히 정돈되어 있었던 카페 웨일스도 알지 못할 것이다. 좋은 공간들은 오래가지 못하고, 스타벅스며 투썸플레이스며 할리스커피는 언제나 새로 문을 연다. 노트북을 펴놓고 눈치 안 보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나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그 카페들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어도 정이 붙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낙성대의 어느 카페에서  어쩌다가 20학번 후배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여기 옆 골목에 예전에 정말 시대를 앞서갔던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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