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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Jul 31. 2020

코로나를 뚫고 한국 다녀온 일기 1

띄엄띄엄 끄적이는 일기이고 아무 생각 없이 쓰는 데다 진솔한 반성이나 성찰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글들이지만, 오 년 십 년 뒤에 읽으면 재미있을 것 같으니 나의 모자란 기억력을 채워주는 용도라고 생각하며 다시 글을 쓴다.


올 2월에 민선과 함께 한국을 갔었다. 베를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을 때의 한국 확진자 수와, 인천에 내렸을 때의 확진자 수가 몇 배 넘게 차이 날 만큼 상황이 갑자기 심각해져 있었다. 숙소에 머물면서 우리는 하루 종일 네이버 뉴스를 봤다. 신규 확진자는 계속 늘어갔다. 그 당시엔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럽에는 번지지 않았었었고, 우리는 혹시라도 독일이 한국에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일정을 바꿔 4일 만에 다시 독일로 돌아갔다. 나는 1년에 한 번씩 강남 성모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했고, 그것 때문에 한국에 들어온 것이었는데 그 진료 예약도 2월에서 7월로 미뤘다. 그때 당시에는 7월이면 바이러스가 다 잡혀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벌써 7월이 되었다. 민선이는 함부르크에 남고, 나는 병원을 위해 다시 한국에 왔다. 2주 격리 뒤에 1주일이 조금 넘게 더 머물다 가는 짧고 하드코어한 일정이다.


미국은 하루에 7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일본은 어제 하루에만 1000명이 넘었단다. 한국과 독일이 그래도 이 위기를 잘 해쳐나가고 있어서 다행이다. 인천공항에 내려서 성동구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고 부모님의 집에 오기까지의 경험은 국뽕이란 게 무엇인지를 나에게 새삼스럽게 알려줬다.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친절했다. 내가 적은 번호로 전화를 걸어 내 핸드폰 번호인지를 확인하고, 자가격리 진단 앱을 다운로드하였는지 확인하고, 내가 격리되어 있을 주소를 확인한다. 따로 마련된 교통편으로 보건소까지 이동한다. 스타렉스 택시다. 기사 아저씨는 친절하고 실내에는 손 소독제가 마련되어 있으며 천장에는 내 전용 에어컨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물론 이 스타렉스 택시는 비싸다. 공항에서 보건소를 들려서 집까지 가는데 정액제로 8만 5천 원이다. 이 택시가 아니라면 특별히 마련된 리무진을 타고 갈 수도 있는데, 두어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고, 그 이후에는 도보로 보건소까지 갔다 와야 했다.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8시간 대기를 포함해서 거의 24시간을 꼬박 밖에서 있었던 나는 플렉스를 하기로 하고 패기롭게 스타렉스를 타겠다고 한다. 앉아있던 기사님이 나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나는 알러지성 비염이 있고, 아빠가 오랫동안 여러 방법으로 그 비염을 고치려고 노력하셨다. 물론 언제나 나는 아빠가 원하는 만큼의 정성으로 치료 과정에 동참하지 않았고, 그런 탓에 나는 비염을 치료하지 못하고 아직도 종종 괴로워한다.(고 아빠는 생각하신다)  뜬금없이 비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콧 속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 던전을 이루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한의사 선생님이 갈색의 끈적한 진액을 면봉에 묻힌 다음에 내 콧속을 무자비하게 휘저을 때, 나는 면봉이 완전히 콧 속으로 사라지는 마술 같은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하기 전에 하얀 우주복을 입은 분이 나에게 10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얇고 구부러지는 플라스틱 검체 채취봉을 보여주며, 놀라지 마시라고, 이게 끝까지 들어가는데 조금 불편할 수도 있다고 말할 때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그게 다 들어간다고요? 하고 같이 놀라는 척했다. 채취봉이 내 코를 휘저을 때에는 제발 재채기만은 하지 말자는 생각 하나만을 하면서 버텼다. 눈을 딱 감고 코에서 올라오는 강력한 자극을 버티고 버티고 버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미 채취는 끝나있었다. 저기, 끝나셨어요, 하고 말씀하셔서 조금 민망했다. 그렇지만  꿋꿋하게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까지 하고 나와서 재채기를 했다.


나는 부모님 집에서 자가격리를 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 자취를 하기 위해 나가기 전까지 같이 살았던 응봉동의 집이다. 원래는 엄마 친구분이 남한강변에 얻은 별장에 내가 있기로 했었는데, 엄마 아빠가 누나네 집에서 지내겠다며 응봉동으로 오라고 그랬다. 어차피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5살 먹은 이안과 이제 1살인 이도를 엄마 아빠가 매일 누나네 집에 출퇴근하면서 봐주고 있는데, 잠까지 그 집에서 자면 누나네는 더 편해서 좋을 것이라고 그랬다. 100퍼센트 믿기진 않고, 석연찮은 구석이 있지만 원래 가족끼리는 적당히 속으면서 사는 게 아니겠나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하자고 답했다.


엄마 아빠는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시고 비워주셨다. 냉장고에는 여섯 가지 종류의 김치가 타파통에 담겨있었다. 익은 김치, 생김치, 총각무김치, 부추김치, 파김치, 다른 하나가 뭐였는지는 지금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살림이라는 건강한 로컬 푸드를 파는 브랜드의 라면들과 냉면들도 있었다. 입이 심심할 때 먹으라며 두세 종류의 뻥튀기의 위치도 알려주셨다. 


내가 출발하기 전에 엄마가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를 알려주면 장을 봐다 놓겠다고 하셨었는데, 나는 봉골레를 해 먹게 모시조개만 사주시면 될 것 같다고 그랬다. 한국에 왔더니 엄마가 말하길, 모시조개는 구하지 못해서 대신 전복과 동죽, 살을 바른 바지락과 살아있는 채로 바닷물과 함께 봉으로 포장된 바지락을 대신 사다 놓았다고 했다. 과연 냉장고의 한 칸은 조개들로 가득했다. 전복의 유통기한은 내가 한국에 도착한 당일이었고, 다른 조개들의 유통기한도 하루나 이틀 뒤까지였다.  전복 버터구이를 먹고, 동죽으로는 조개탕을 하고, 살을 바른 바지락으로는 바지락 죽을 하고, 안 발린 바지락으로는 봉골레 파스타를 했다. 한국에서의 첫 이틀에 내가 먹은 메뉴들이다.


이 주간의 자가격리를 나는 잘 버텼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집을 비워주신 엄마 아빠와 떡볶이와 치킨을 조달해준 하란이모.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마카롱을 조달해준 누나와 역시 여러 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다 준 사촌동생들. 너무 심심하다면 플스를 빌려주겠다고 했던 석우와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다줄 테니 알려달라던 중기. 스타를 같이 해준 상현 등등. 함부르크에서 민선이 보내주는 홀로 먹는 밥상 사진을 보면서 나도 귀찮음을 이겨내고 김치 한 종류라도 더 꺼내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주 동안 집에 있으면서 나는 너무 게으르게 살아버렸다. 원래 목표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졸업작품의 주제를 잡고 Abstract를 쓰는 것이었다. 그것을 완성해서 독일에 돌아가자마자 교수님과 면담을 잡고 그대로 진행해서 겨울학기에 따단! 하고 졸업을 해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막연한 아이디어들만 열심히 발산했을 뿐, Abstract는 커녕 큰 주제를 잡는데도 실패했다. 개인적으로 재밌어하는 것들은 많고, 개인작업으로 한다고 치면 지금 바로 시작해도 될 것 같은 아이디어들도 있다. 하지만 졸업작품으로 한다고 생각하면 모두가 한두 부분씩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게 문제다. 애당초 디자인 석사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석사를 따는 거지? 새삼스럽게 민선이 다시 존경스러워진다.


남 탓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번 자가격리 기간 동안의 생산성이 처참했던 이유엔 분명히 남들의 책임도 있다. 먼저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잠을 방해했던 모기들. 하룻밤에 평균 세 마리는 치직이로 잡았던 것 같다. 덕분에 수면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자가격리에 들어갔을 때 유닛으로 컴백했던 레드벨벳의 아이린과 슬기에게도 책임을 묻고 싶다. DC인사이드의 레벨업 프로젝트 마이너 갤러리와 더쿠의 레드벨벳 카테고리를 구경하고, 유튜브의 수많은 관련 영상들을 탐닉하면서 나는 이제 진정한 레드벨벳의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니 왜 이렇게 멋있고 난리입니까 누님들... 내가 진짜 가요 프로그램 문자 투표까지 참여할 줄은 몰랐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블랙핑크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Monster"가 단 한 번의 1위 이후에 줄줄이 "How you like that"에 밀렸다는 사실이 나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뜬금 덕밍아웃... 자가격리 이후의 일기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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