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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창 응봉 최중원 Jul 07. 2020

함부르크에서의 두번째 학기를 마치며

유학생 일기

함부르크는 좋은 도시이다. 내가 사는 밤벡 쥐드도 좋은 동네다. 1200유로의 월세가 부담이지만 집 역시 좋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사실 그렇게 좋지 않다. 옆학교에 다니는 하은의 말을 들어보면 그래도 내가 다니는 곳이 조금 더 나은 것 같지만. 애초에 한국에서 디자인학부를 다닐 때에도 학교가 좋다는 느낌은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학생의 맘에 들어하는 대학교라니, 그 누구의 입을 통해서도 들어본 적이 없기도 하다. 


HAW 에서의 대학원 두 번째 학기가 끝나간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실크스크린 수업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학기였다. 다음 학기때는 캠퍼스에 나가서 강의를 듣을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사실 온라인이어도 크게 상관없다. 수업을 들으면서 딴짓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점을 이번학기에서 난 크게 누렸다. 


같이 3D Typo 수업을 진행한 마셀과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수업 마무리와 강의비 입금을 위한 행정적 절차에 대해서 의논했다. 우리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왜 후반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마셀은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모자랐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독일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접어버렸다. 아무튼 마셀은 고맙다. 한국에서 선물을 꼭 사와야 겠다. 녹차로. 


드라마투기를 다룬 이론 수업에서는, 여러 종류의 스테레오 타입들에 대해서 논했다. 오딧세이와 일리아스에서부터 젠더, 인종, 성별에 따른 스테레오 타입, 헐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바이블로 추앙받는다는 Save the Cat 이라는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키치 이론에 대해서 배웠다. 텍스트는 디자인 이론을 다루는 것들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하지만 여전히 읽는데 오래걸렸으며 할 말을 찾는 것은 힘들었다.


작은 영상을 만드는 수업에서는 쉬엄쉬엄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2분 정도 되는 짦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아니 만들고 있다. 많이 해왔던 거고, 어느정도의 퀄러티로 만드는 것은 자신있다. 다만 안시 그랑프리 이렇게는 되지 못하겠다. 


삼일간 학교에서 열리는 실크스크린 수업도 들었다. 네덜란드에서 온 선생님은 괴짜였지만 나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남자라서. 실크스크린은 재밌었고, 그림 두개를 대략 10장씩 찍었다. 


제일 많은 시간을 나는 유니티 수업에 투자했다. 민선과 함께 게임을 기획했다. 그림은 거의 대부분 민선이, 구현은 내가 맡았다. 여러 아이디어들 중에, 짧게 이번학기동안 만들 수 있는 볼륨을 가진 안을 선택했다. 시행 착오 끝에 직접 C#으로 코딩하는 대신 유니티의 비주얼 스크립팅 어셋인 볼트를 구매했고, 덕분에 많이 진행할 수 있었다.  무엇인가 작동되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언제나 신난다. 7월 14일까지 게임 시간으로 하루를 플레이할 수 있는 버티컬 슬라이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상현에게 곡도 부탁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쓰는 중이다. 도착지까지는 27분 남았고 비행기는 곧 하강을 시작한다고 한다. 창문 밖은 너무 밝아서 아직도 열지 못하는 중이다. 함부르크에는 민선이 혼자 남아있다. 이런 저런 사정때문에 나 혼자 오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서로 먹은 것을 사진으로 공유하기로 했다. 함부르크에서 출발해서 암스테르담을 거치며 지금까지, 나는 벌써 다섯 번의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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