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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Aug 07. 2020

코로나를 뚫고 한국 다녀온 일기 2


혼자 한국에서 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녔다. 정말 많은 것들을 먹었다. 내가 다시 독일에 돌아온 지도 며칠 되었다. 졸업 준비와 이런저런 작업들에 하루 종일 파묻혀 살고 나니, 왠지 한국에서 누굴 만나고 무엇을 먹었는지를 조금 자세히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일단 시작해보는 편이다. 


2주간의 자가격리는 정오에 끝났다. 그 전에 나는 이미 씻고 나와 옷을 갈아입고, 짐까지 챙겨서 현관 문 앞에 서있었다. 격리가 끝날때는 다시 검사를 한다던지, 누가 와서 이제 격리 끝입니다 하는 절차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12시가 땡 하고 되면, 바로 그 순간부터 자유인 것이다. 그리고 12시 1분에 나는 밖으로 나왔다. 자유다.



첫째날 점심

BK, 막국수

BK를 나는 성수동 유면가에서 12시 반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BK는 15분 정도나 늦게왔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의 외출에 아주 관대해져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 유면가에서 우리는 막국수를 시키고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디지털 마케팅 일을 하는 BK는 최근에 스튜디오 좋과도 일을 해봤다고 했다. 그곳의 감독인 JW는 내 후배다.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친구다. 최근에는 돈도 범상하게 잘 번다고 했다. 


유면가 맞은편의 Tee Room이라는 차를 파는 힙한 카페에서 밀크티같은 것을 마시면서 조금 더 이야기 했다. BK도 결혼 준비중이라고 한다. 나는 이미 결혼한지 3년이 넘었지만, 아는 사람들이 결혼하는 것을 보는게 아직도 신기하고 대견하고 그런다. 


첫째날 저녁

HS, KH, GW, IA, ID, 김치찌개와 조기구이

HS는 엄마, KH는 아빠, GW는 누나다. IA과 ID는 조카다. 이번 글의 컨셉이니 일괄적으로 이렇게 지칭하도록 한다.  GW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IA는 다섯살, ID는 한살이다. 즉 같이 먹는 식사는 도저히 평온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HS는 김치찌개를 끓이고 조기도 구워주셨다. 내가 싫어하는 거의 유일한 생선이 조기다. 아직도 모르실 거다. 내가 좀 더 티를 냈어야 하는걸까? 한참 전에 타이밍을 놓쳤다. 그냥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하면서 많이 먹지 않는게 최선의 선택지이다.


둘째날 야식

HR, W, 푸라닭

HR는 이모, W는 사촌동생이다. 이모는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동에 산다. 사촌동생인 W과 R는 내 격리기간동안 몇번씩이나 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와줬다. 막내인 J는 지금 말년병장이란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인사하러 들렸더니, HR가 금방 W가 온다고, 같이 치맥을 하자고 그랬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치킨집이 인기있다고 그랬다. 


치킨집 이름은 푸라닭. 로고도 프라다랑 비슷하게 생겼다. 모든게 까맣다. 까만 치킨 박스가 까만 더스트백에 싸여서 온다. 심지어 치킨도 까맣다. 장사가 엄청 잘 된다고 한다. 일단 맛은 있었다.


W는 내가 최근에 레드벨벳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더니 경악했다. 재즈에 진심이라 재즈바에 가서 라이브 공연을 보는 것을 인생의 즐거움으로 삼는 W이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레드벨벳과 SM에 과민반응을 한다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Exo의 팬이어서 함께 SM 타운 콘서트도 갔다더란다. Exo가 으르렁으로 활동할 때 입었던 교복도 함께 샀다는 거 같았다.  나는 더이상 W에게 레드벨벳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둘째날 점심 

SW, SY, HM, BS, 딤섬

앞의 셋은 스튜디오 케플러 사람들이다. SW, SY는 대학 동기, HM는 사촌동생이다. 잠실에 작업실이 있는데, 나는 한국에 갈 때면 꼭 한번은 놀러가곤 한다. BS는 만화가 겸 애니메이션 감독 겸 사업가 겸 식빵뚱냥의 아버지인데 역시 대학 동기이며, 작업실이 케플러와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만나보니 BS는 먼저 점심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리와 함께 가서 조금 집어먹기만 하겠다고 했다. BS는 먹을것에 진심이다. 정말로 미식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BS가 가자는 대로 서두삼 딤섬집에 갔고, 메뉴 선택권을 BS에게 일임했다. BS는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니면서 진심으로 메뉴를 골라주었다. 매운바지락볶음, 에메랄드 딤섬, 군만두, 삼치만두, 소룡포 정도를 시켜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케플러의 사람들은 TV애니메이션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자를 받아야 한다. 며칠 전에 초기 단계의 코칭을 받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는데 떨어졌다고 했다. 함께 PPT를 보고, 내가 생각하기에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말했다. 애니메이션의 로고를 내가 만들어주기로 했다.

 

근처의 미용실에서 펌을 했다. 이상하게도 펌은 거의 들지 않았다.


둘째날 저녁

HM, KW, 버섯전골    

저녁에는 HM과 그의 아내 KW와 함께 성수동 버섯집에서 버섯전골을 먹었다. 케플러의 그 HM 맞다. 사촌동생이다. 점심과 저녁을 연달아 HM과 함께 먹었다.


KW는 최근에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도 검사 결과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수술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쉽게도 KW는 술을 마시지 못했다. 나와 HM 둘이서 소주를 마셨다. 가게는 좁지만 깔끔했고 버섯전골도 과하지 않게 맛있었다.


어제 BK과 갔던 Tee Room에 들려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땀을 좀 식혔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건대 근처의 HM과 KW의 집으로 향했다. 그 전에 건대 이마트에 들려서 맥주와 파맛 첵스를 샀다. 내 파맛첵스는 독일에 들고갈 것이기에, HM의 파맛첵스를 함께 먹어봤다.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지만, 굳이 돈 주고 사먹을 맛도 아니었다.


HM과 KW의 집에서 또 뭔가를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고 TV를 틀어 함께 유튜브를 보았다. 나는 또 레드벨벳 아이린과 슬기의 몬스터와 놀이 뮤직비디오를 보여줬다. 하지만 별 감흥이 없어보인다. 역시 나는 영업직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셋째날 점심

JK, 안심까스

중학교때부터 친구인 JK를 만났다. 회사가 동국대 근처에 있어서 점심시간에 내가 근처로 갔다. 함께 돈까스를 먹었다. JK는 회사에 일이 너무 없다고 그랬다. 팀에서 셋이 함께 하는데, 아무리 봐도 셋이 할 일의 양이 아니라고 그랬다. 그래서 회사에서 보통 오후 두 세시면 일이 끝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코딩을 배우고 있고, 나중에는 게임을 만드는게 목표라고 그랬다. 


나는 저번 학기에 유니티 수업을 들었고, 민선과 함께 게임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유니티와 볼트와, 내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게임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JK의 아내인 HR씨는 잘 지내신다고 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인데,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일이 많이 줄긴 줄었다고 그랬다. 밥을 먹고는 함께 태극당으로 가서 커피를 마셨다. 태극당 오너의 2세가 디자인을 공부했나 그랬다는데, 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서 본사도 리모델링 하고 디자인에도 신경을 쓴다는 모양이었다. 안쪽 카페의 인테리어는 빈 어디쯤의 역사가 있는 호텔 카페 같았고, 후드티에 태극당을 한자로 새긴 굿즈 같은 것도 팔고 있었다. 


셋째날 저녁

KH, 꽃게탕

다시 한번, KH는 아빠다. HS(엄마)가 말하길, KH가 나와 둘이서 밥을 먹고 싶어한다고 했다. 무엇인가 할 말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KH는 저녁에 동국대 입구에 있는 꽃게탕집에서 보자고 그랬다. 나는 JK를 보내고 태극당에서 작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려 다섯시간 정도를 커피 한잔을 시키고 앉아있었다. 눈치가 좀 보였다. 


꽃게탕집은 텅 비어있었다. 나와 KH빼고 다른 손님은 한 팀이었다. 직장 상사와 부하인 듯 했다. 상사는 대충 이런 말들을 하고 있었다. "그 부장 그거, 회장님한테는 매주 토요일에도 출근한다고 그랬는데, 내가 다 안다구. 금요일 저녁에 근처에서 늦게까지 진탕 논 다음에 토요일 아침에 잠깐 들려서 짐 챙겨가는 거야. 내가 지금까지는 봐줬지만 앞으로는 안그래. 나 이제 본때를 보여줄거야. 알겠어?"


KH는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 "앞으로 세계의 중심은 한국이 될 거야. 미국도 망해가고, 유럽도 선조들 잘 만난 덕에 낮잠 자고 일찍 퇴근하면서도 관광산업으로 돈을 잘 벌었는데, 봐라. 이제 유럽도 점점 내려앉을거야. 한국은 IT강국이고, KPOP도 대단하고, 봐라. 분명 그렇게 된다고. 그러니까 네가 독일에서 졸업하고 거기서 살고 싶다면야 그것은 네 자유지만, 주어질 기회를 생각한다면 한국으로 오는게 나아."


꽃게탕은 맛있었다. 하지만 발라먹는 것은 여느때처럼 너무 성가신 일이었다.



넷째날 점심

TG, 감자탕 

"소문난 성수동 감자탕" 집을 찍어준다는 것이 TG에게 광흥창의 "소문난 감자탕" 집을 찍어줬다. 그래서 TG는 광흥창까지 갔다 성수동으로 돌아와야 했다. 미안해서 밥을 내가 샀다. 감자탕은 양이 엄청 많고 깨가 없고, 다른 곳들보다는 덜 자극적이었다. 다닥다닥 붙은 테이블에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갔다.


TG는 철학과 석사다. 독일에서 박사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후설의 현상학을 연구하고 있었다. 나와는 독일문화원의 독일어 수업에서 알게 되었다. 아마 올해 말쯤에는 독일로 건너온다고 그랬다. 며칠 전에 테스트 다프 시험을 보고, 이제는 결과를 기다리며 박사 지원을 할 독일의 대학교들을 찾아보고 있다고 그랬다. 예전에 나는 철학 박사로 몇년쯤을 생각하고 있냐고 물어봤었는데, TG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마 7년은 걸릴걸요? 라고 답했다. 철학은 역시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TG는 레드벨벳의 팬이다. 종종 나랑 같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트와이스의 나연이 자신의 최애돌이라고 했다. 약간 배신감이 들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걸어다니다 만난 엄청 힙한 카페에 들어갔다. 허름한 옛 3층 건물을 통채로 카페로 리노베이션 한 곳이었다. 루프탑도 있었지만 오전에 내리다 갠 비때문에 앉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서 다시 2층으로 내려와서 자리잡았다.  독일에서의 삶, 슬기와 아이린, 최근에 발표된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 GPT-3 등등 정말 두서없이 모든 화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넷째날 저녁

JM, JS, SH, 평양냉면

나와 민선과 함께 "낙팸" 멤버로 오래 친하게, 정말 많이 술을 마셨던 사람들이다. 아쉽게도 민선은 독일에 남았지만 중간에 영상통화로 참여했다. 우리는 먼저 충무로의 필동면옥에 갔다. 나와 민선이 제일 좋아하는 평양냉면 집인데, 여전히 슴슴하니 맛이 있었다. JM는 왠지 낌새가 평양냉면 그거 왜 먹는지 모르겠네 같은 느낌이었지만, 조용히 맛있다고 하며 잘 먹었다. 원래 잘 맞춰주는 친구다. 


그리고 우리는 걸어서 을지로까지 왔다. 어딘가 술을 더 마실 가게를 찾다가 그냥 길가에서 내어놓은 호프집의 테이블에 앉았다. 노가리와 한치를 안주로 생맥을 마셨다. 


JM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왜 구독하지 않고 좋아요 누르지 않냐고 사람들을 나무랐다. SH은 아는 언니와 함께 비트코인을 공부해서, 어려운 비트코인 세계를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거라 그랬다. 역시 대세는 유튜브이다. 그렇게 된지도 몇년은 지났다. SH은 이미 진작에 자신의 포지티브 보조개를 컨셉으로 유튜브를 시작했어야 했다. 지금의 남자친구는 아직 SH의 입 양 가 끝에 조그만하게 솟아있는 포지티브 보조개를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조금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나와 민선도 유튜브 채널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다. 과연 우리는 유튜버가 될 수 있을까?


JS은 SBS를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 인디게임을 만들고 있다. 게임을 만들겠다고 한지 벌써 이년이 흘렀다. 들은 게임 아이디어만 스무개는 되고, 작동되는 프로토타입을 본 것도 다섯개는 된다. 이번의 아이디어는 꽤 마음에 들었는지 꽤 오래 붙들고 작업하고 있었다. 하지만 JS의 중요한 고민은 다른 것이었다. 연애하고 싶은데 갈수록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진다고 그랬다. 얼른 결혼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몇몇 여자들의 이름을 호명해 봤지만 JS는 하나같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JS는 생각이 많고 눈이 높다. 나는 JS에게 완벽한 연애상대니 완벽한 결혼상대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넷째날 밤

SH+ SH남친 + SH남친의 회사동료, 위스키

모임이 파하고 JM와 JS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나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폰은 배터리가 다 되어서 꺼지고, 금요일 열두시쯤에 지금 서울에서 제일 힙한 을지로에서, 카카오택시 없이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SH이 자신의 폰으로 나를 위한 택시를 잡아두고 있었는데, 거리가 애매하게 가까워서 아무도 콜을 받지 않았다.


건너편에는 SH의 남친과 그의 회사 동료가 SH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이대로는 택시를 못잡을 것 같았고, 나 때문에 그들이 SH을 기다리는게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좀 이상한 멤버 구성이지만 나, SH, SH의 남친과 SH의 남친의 회사동료 이렇게 넷이서 한잔을 더하기로 했다.


을지로의 만선호프 바로 위에 위스키 와인바가 있었다. 위스키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괜찮았었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SH은 남자친구가 자신의 귀를 파주겠다고 덤비다가 피를 왕창 보는 바람에 술을 마시지 못했고, 무알콜 칵테일을 시켰다. 나는 조니워커 블랙 라벨을 두 잔 마셨다. 


처음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재미있게 놀았다. SH남친과 그의 회사동료는 둘다 중국에서 지내본 경험이 있었고, 저마다 자신이 중국에서 겪은 일들을 재밌게 말해줬다. 중국에서는 밖에서 사람들이 섹스를 많이 한다고, 심지어 밤에 대학교 캠퍼스를 돌아다니면 종종 풀숲 너머로 열중하고 있는 커플들을 볼수 있다고 그랬다. 중국은 여러모로 내 생각의 범위를 쉽게 넘어선다. 


함께 바를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도 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집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다.




생각보다 글은 길어지고 쓰는 것도 힘들다. 해는 졌지만 여전히 방 안은 후덥지근하고, 아우구스티너 맥주는 맛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멈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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