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부르크의 최중원 Aug 08. 2020

코로나를 뚫고 한국 다녀온 일기 3

다섯째날 점심

HS, KH, GW, CH, IA,ID, 두 종류의 피자와 세 종류의 파스타, 스테이크 샐러드와 해물떡볶이


다시, HS와 KW는 엄마아빠, GW와 CH는 누나와 매형, IA와 ID는 조카들이다.

조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기 위해서 GW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장소가 있는 교외의 식당엘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독일에서도 차를 한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나는 교외에 나가서 놀다오는 삶을 모른다. 어떤 키워드로 찾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GW에게 정해달라고 그랬다.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타고 한강 상류쪽으로 좀 가다, 서울을 벗어나서 이렇게 저렇게 달렸다. 운전은 HS이 했다. KH는 무릎이 좋지 않아 운전대를 놓은 지 몇 년은 되었다. 교외의 풍경이  펼쳐진다 싶더니, 네비게이션이 갑자기 낙성대 역 언저리처럼 5층 정도 높이의 오피스텔들이 모여있는 골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좁은 길을 따라 좌회전 우회전 좌회전을 하니 갑자기 길 너머로 한강이 보였다. 우리는 차를 맡기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사실은 레스토랑이라기 보단 식사 메뉴를 파는 카페에 더 가까운 곳이었다. 예약을 했던 우리는 룸으로 안내되었다. GW가 연락해서, IA의 야구수업이 늦게 끝나서 이제야 출발한다고 말했다. 우리 먹을 음식도 먼저 시키고 아이들 먹을 수 있게 맵지 않은 리조또를, 간을 아주 약하게 해서 시켜달라고 했다. 메뉴판을 보고 고민한 뒤에 주문을 하러 갔더니 선불이었다. 일단 조용히 내 카드로 결제했다.


GW네 가족들은 우리가 한참 밥을 먹고 있을 때쯤 도착했다. 피자, 파스타, 샐러드등 모든 요리가 적당히 맛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 삼년을 살다 들어온 내 입장에서는 수준에 비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내가 함부르크 집에서 해먹는 거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이 여럿 모이면 덕담 이상의 이야기는 잘 오가지 않게 된다. 다들 관심사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공통적인 화제로는 서로의 건강과 성공을 빌어주는, 일종의 기복신앙 비슷한 것만 남는다. 그런데 사실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를 포함해서 내 주변의 사람들이 여럿 아파봤다. 오랜만에 카톡으로 대화하는 친구들과도 대화의 말미에는 건강하자는 인사를 주고받는다. 다만 아침시간의 티비에 등장하는 그 수많은 의사들의 말들과, 유튜브에서 홍수처럼 범람하는 건강정보 컨텐츠들을 너무 믿지 말자. 멀리서 열리는 재래시장까지 가서 몸에 좋다는 무엇인가를 구해온 뒤 달여 먹고 그러지도 말자.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 신경써야 하는 것에 있어서 나는 HS, GH와 의견이 달랐다. 



다섯째날 저녁

JH, SH, SW1, JS, BS, HY, SK, SW2, MK, MJ, 양갈비와 양꼬치, 


이들은 나와 함께 졸전을 같이한 사람들이다. 과방의 냄새나는 쇼파에 포개어져서 함께 쪽잠을 여러번 자본 우리는 일종의 전우애로 뭉친 관계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이 만날 때마다 예전의 전투에 대해서 회상하듯이 우리도 만날 때마다 졸전시절에 있었던 일화들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이번 만남때는 조금 달랐다. MK에게는 5년 사귄 남친이 있었다. 그 남친도 같은 대학 같은 과이다. 우리는 모두 그를 잘 안다. 그런데 그가 강의를 하며 가르쳤던 학생과 6개월째 바람을 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MK는 얼마 전에 우연히 발견했고, 엄청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 모임에서 모두와 함께 술을 진탕 먹을거라고 다짐했던 MK는, 모임 하루 전에 위경련이 와서 술은 커녕 양고기 한 조각도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보온통에 흰 죽을 싸오는 투혼을 발휘하며 모임에 나와 경악스러운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었다.


그가 그런 사람이었던가? 친구로서의 누군가와, 연인으로서의 누군가는 같은 사람일지라도 완전 다른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세삼스럽게 다시 느꼈다. MK는 그를 차단하고 번호도 바꿨다. 곧 미국으로 유학도 간다고 했다.


매월 들어오는 월급에 익숙해진 지 몇년째인 이 사람들은 가격을 신경쓰지 않고 양갈비를 척척 시켜댔다. JH는 파인애플 향이 나는 중국술도 시켰다. 그들중 몇몇은 이미 결혼을 했고, 하지만 아직 아무도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국문과를 나오고 디자인을 복수전공한 SH과 나는 월천작가(월에 천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작가)가 수두룩하다는 웹소설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가 들어본 바에 따르면, 나 이런 웹소설을 써, 하고 자신있게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는 작가는 성공하지 못한다. 웹소설로 성공하려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파렴치하게 써야 한다고 했다. 같은 이유로 내가 혹시 웹소설을 쓰게 되더라도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섯째날 점심 카페 1

JW 


JW는 UDK에서 미디어 아트를 공부하는 친구다. 나와는 백뻘게라는 베를린 글쓰기 모임에서 알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 수업도 전부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었고, 그는 일찌감치 이 바이러스를 피해서 한국으로 들어왔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서 우리는 오전에 짧게 커피라도 마시기로 했다.


JW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사진도 잘 찍고, 직접 작곡한 곡을 기타 연주와 함께 부르기도 한다. 공연도 두어번 해봤다. 그의 글은 점잖은 것 같으면서도 도발적인 구석이 있다. 하지만 도발에 진심인 편인 것은 아니고, 나 이렇게도 할 수 있거든? 하는 식의 귀여운 제스쳐로서의 도발이라고 말해두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우리는 신촌의 힙한 카페, 옛날 빌딩을 활용하고, 노출 콘크리트를 강조하고, 자리는 불편하며 커피는 비싸고, 한쪽켠에서는 전시를 하는 그런 힙한 카페에서 만나서 플랫화이트를 마시면서 근황토크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모두를 힘들게 하지만, 특히 유학생들에게 더 괴롭다. 대화를 하면서 나는 타지에서 생활을 하면서 노골적인(혹은 은근한) 인종차별과, 외국인이라는 불확실한 신분, 맛없는 음식들에 괴로워하고 있을 지인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섯째날 점심 카페 2

SK


2006년때 미술학원에서 가르쳤던 SK는 지금은 신촌에서 비건 베이커리 카페를 운영한다. 브랜딩도, 메뉴 개발도 전부 혼자 했다. 신촌에 나온 김에 살짝 들려서 얼굴을 보고 갈겸 발을 옮겼다. SK는 아주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바글바글했다. 아주 짧은 근황 토크를 하고, 나는 자리에 앉아서 레드벨벳 케이크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다.(레드벨벳 케이크를 시킨 이유가 혹시라도 궁금하다면 이전의 일기를 읽어보시라.) 케이크는 이게 어떻게 비건의 맛이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름지게 맛있었다. 아마도 코코넛 오일의 힘일 것이다.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여유는 계속 없을 것처럼 보였고, 나는 케이크와 커피를 맛있게 비우고는 다음에 보자는 인사를 한 다음에 가게를 나왔다.



여섯째날 저녁 양꼬치

JM, RK, JY, IS, HJ, SH


나에게는 유서가 깊은 게임 모임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2의 유즈맵중 하나인 "시티 오브 히어로즈“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다. 다 대학 후배들이고, 게임을 같이 한지는 적어도 6년은 넘었다. 서로 체력이 넘쳐나고 그렇게 바쁘지 않았을 때에는 피시방에서 밤을 새는 것도 왕왕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들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나이의 앞자릿수도 모두 2에서 3으로 올라간 지라 체력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제는 예전만큼 박력있게 놀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한번씩 만나서 네 다섯시간씩 게임을 하고 헤어지곤 했다.


원래 이 모임은 순수하게 게임만 하는 모임이다. 그래서 밥도 PC방에서 라면으로 때우는게 룰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특별 게스트 SH 덕분에 품격있게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SH도 역시 비슷한 학번의 후배인데, 게임모임에 나오는 사람들과 두루 친했다. 8월 말에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전달하기 위해 게스트로 참여한 것이었다. 


양꼬치를 먹는 자리에서 (이틀 연속 양고기. 하지만 맛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나와 동갑이지만 재수해서 한 학번 아래인 HJ의 소개팅 이야기가 단연 화제였다. 소개팅 이후 애프터가 성사되지 못했지만 HJ는 미련이 있어보였다. 자꾸 저번에 그 사람도 이 식당에 왔었는데, 혹은 그 사람도 고수를 좋아하는데 같은 말을 했다. 보다 못한 우리는 지금 바로 연락을 해보라고 그랬다. 어떤 구실로, 어떤 말투로 연락할지도 우리가 정해줬다. 내가 메세지를 써서 HJ에게 보내고, HJ이 그 메세지를 자신의 말투로 바꿔서 보냈다. 곧 그 사람에게 답이 왔고, 우리 모두가 그 답을 보고 상대방의 심리를 분석한 뒤에 효과가 있을 것 같은 답을 써서 보냈다. 띄엄띄엄 메세지가 몇 번 오갔고, 아쉽게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우리는 위로의 건배를 한 다음에, 아쉽지만 이렇게 정리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그랬으면 미련이 남았을 것이라고 그랬다.


그 다음엔 RK와 JY이 HJ의 스타일을 개조해주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HJ의 안에는 엄청난 매력이, 아직 채굴되지 않은 돌속의 다이아몬드처럼 숨어있다며, 그걸 좀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RK가 그랬다. 우선 헤어스타일은 송태섭 st.로 하고, 안경은 조금 돈이 들더라도 예쁜 것으로 하자. 피부 트러블 관리도 하고, 레그 레이즈로 엉덩이와 뱃살을 잡자. 패션 스타일은 제일 쉽게는 지오다노 매장에 가서 마네킹이 입고 있는 옷을 그대로 벗겨서 입자. 깔끔한 시계도 하나 차자. 까칠함과 공격성을 조금 줄이자. 가방은 프라이탁으로 하자….


우리의 계획은 이렇다. 8월 말에 열릴 SH의 결혼식은 저녁이다. 그날 점심에 소개팅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HJ는 정장을 입고 소개팅 자리에 나가서 상대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옷차림이 좀 부담스러우시다면 죄송합니다. 사실 오늘 저녁에 후배의 결혼식이 있거든요.“ 자신의 몸에 맞는 정장을 차려 입을 수 있는 안목이 있는 사람! 그렇지만 소개팅에서 과하게 차려입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 미리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매너가 있는 사람! 아, 완벽하다. 이건 온전히 나의 아이디어였다.


우리는 사실 이 자리의 주인공인 SH를 제껴두고 HJ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좀 걱정이었다. 하지만 SH는 자신은 화제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싫다고, 지금 이 자리가 너무 재밌다고, 사실 청첩장을 주는 모임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늘 뻔한 것 같다고 그랬다.  앗, TMI 하나를 이야기 하자면, SH의 남편 이름이 이태민이다. 샤이니의 태민과 이름이 같다. 그분 혹시 춤을 잘 추냐고 내가 SH에게 물어봤더니 추긴 추는데 걸그룹 댄스 전문이라고 그랬다.


SH와 헤어진 우리는 여느때처럼 PC방에 들어가서 치열하게 서로를 죽이고 서로에게 죽었다.




다음 편이 한국 다녀온 일기의 마지막이 될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를 뚫고 한국 다녀온 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