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함부르크의 최중원 Mar 01. 2021

코로나 시대의 독일 대학원 수업

전세계를 휩쓴 Covid-19때문에 모든게 바뀌었다. 다른 서유럽 나라들보다는 코로나에 잘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에서도 두 달이 넘게 락다운이 진행되고 있다. 강화된 수칙을 지켜야 하는 것은 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저번 봄학기에 이어 이번 겨울학기도 모든 수업이 거의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팀 등을 사용한 온라인 수업은 분명히 대면수업에 비해서 아쉬운 점들이 있다.  집중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고,  학생들과 친밀감을 쌓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들키지 않고 딴짓을 하기에는 매우 쉬운데 이것은 장점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그래픽 디자인과에서 석사 수업을 듣고 있지만, 우리 학교는 응용과학대학이고,  컴공과가 있어서 그런지  온라인 수업으로의 급격한 변화에도 잘 대처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제 온라인으로 열렸던 그래픽 디자인과의 석사 전시가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래서 타지에서 학생으로 겪는 이 이상하고 일시적인(일시적이길 바라는) 순간들을 기록해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P의 수업


P는 인터랙션 디자인 교수다.  타이포그래피나 편집디자인 교수님보다는 확실히 디지털 매체에 친숙하고 거부감이 없다. 이미 수업때 슬랙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판데미 때문에 대면 수업이 전부 금지된 상황에서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수업 장소를 온라인으로 이동시켰다. 슬랙을 통해서는 수업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아카이빙하고, 온라인 마인드맵핑 서비스인 마이로를 사용해서는 각자의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올려놓고 피드백을 주고받게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팀을 통해서는 비디오 컨퍼런스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했다.  


P에게는 크리스마스 시즌의 전통이 있는데, 크리스마스 방학 전에 작은 파티를 하는 것이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함께 캐롤을 부르고, P가 준비한 작은 선물 : 와인, 초콜렛, 그리고 귤 을 먹고 마신다. 판데미가 시작되기 전 오프라인 수업이 가능했을 때 나도 한번 참여했었던 적이 있었다.  만나서 하는 파티가 불가능해지자 피터는 바로 파티를 온라인으로 하겠다고 공지했다. 출력한 악보와 귤, 초콜렛, 글뤼바인을 미리 종이봉투에 넣어서 패키지로 마련해 놓은 다음에 파티가 열리기 일주일 전부터 학교에 가져다 놓고, 시간이 될때 학교에 들려서 받아가라고 했다. 


귀여운 선물 패키지


파티 전까지 우리가 해야할 일들도 있었다. P가 출력해놓은 악보를 보고 캐롤을 미리 한번 불러보기. 그리고 마이로의 한 편에 내 크리스마스 파티 공간을 꾸미고,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영상을 미리 링크해놓기. 


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팀에 모였다. P는 가발과 선글라스를 쓰고 등장해서 우리를 모두 폭소하게 했다. 시치미를 뚝 떼고 그는 이 방을 "하이재킹" 한 것 처럼 능청스럽게 연기하다가 조금 후에 가발과 선글라스를 벗고 등장해서는 물었다.

" 내가 좀 늦었는데, 그 사이에 방에 누구 이상한 사람 들어오지 않았니?"

학생들은 모두 시치미를 떼고 그런 일은 없었다고 답했다.


교수님이십니다...


파티는 흥겹게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미로위에 자신의 공간을 각자만의 방법으로 꾸몄다. 크리스마스트리나 산타할아버지나 예쁘게 포장된 선물 이미지를 올려놓았다. 자신의 사진을 한장 이상 올리는 것도 필수였다. 미로 위에서 각기 다른 색의 마우스 포인터로 현현된 우리는 함께 이 사람 저 사람의 코너에 방문해서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었다. 순서대로  작년 크리스마스때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코로나가 잠잠해졌을 내년 크리스마스때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이야기했다. 

온라인 미팅의 차가움은 크리스마스라는 특별한 시즌의 분위기와 P가 준비해온 프로그램, 떨어져있지만 함께 마시는 따듯한 글뤼바인에 따듯하게 데워졌다. 독일어도 아직 능숙하지 못하고,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도 하나 없는 나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소망을 들으면서 재미있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S의 수업 


S는 편집디자인 교수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는 마스터 학생들이 첫 학기 때 모두 함께 공통으로 진행해야 하는 프로그램을 책임지고 진행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3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은 그 특성상 매우 소모적이고 피곤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첫 학기 때 그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었는데 너무나도 괴로웠다. 우리는 함께 또 따로 "마찰"이라는 주제로 잡지를 만들었다. 내 몫의 완성된 잡지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어쩌다 보니 받지 못했다.


올 겨울학기에는 말하자면 내 석사 "후배" 가 생긴 샘인데, 그들이 첫 한학기동안 S의 수업에서 진행한 내용을 온라인으로 전시한다고 했다. 궁금해진 나는 시간에 맞춰서 공유된 링크를 통해 줌에 들어갔다.


S의 간단한 인사말 뒤에, 몇몇 절차적인 순서들이 오갔다. 그리곤 줌에서는 재즈밴드가 공연을 시작하고,  앞에서 언급된 온라인 마인드맵핑 서비스 마이로의 링크가 공유되었다. 



마이로 보드 위에는 전시가 펼쳐져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는데 필요한 정보들, 행사가 적힌 타임테이블이 가운데에 크게,  그리고 전시 컨텐츠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모든 것을 엄청 작게(줌아웃), 또 엄청 크게(줌인) 볼 수 있는 마이로 보드의 특성을 이용해서, 투시점이 여럿인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의 스케일 감에 맞게 전시 이미지/영상을 크기 조절하여 배치했다. 나는 마우스 스크롤만으로 이 전시공간 저 전시공간을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색색깔의 마우스 포인터로 표현되는 다른 관람객들의 존재 또한 묘하게 전시를 함께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마이로를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니!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시 그래픽과 마이로를 사용하여 공간을 표현한 방식이 너무 강렬해서, 각각의 작품들을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Spatialchat이라는 다른 서비스를 통해 행사의 2부가 시작되었다. 이전엔 알지 못했던 서비스였는데, 가상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인 모양이었다. 나를 나타내는 원형 창을 마우스로 드래그해서 옮길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의 원형 창에 가까이 다가가면 그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식이다. 카메라를 킨다면 내 캠에서 찍히는 화면이 그 원형 창에 표시된다. 말하자면 다자간 화상채팅 시스템에 공간적 메타포를 사용한 플랫폼이다. 한쪽에는  DJ 부스가 있어서 그쪽으로 다가가면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른 쪽에는 흡연실, 다른 쪽에는 말걸지 말기 존, 어느 한편에는 바도 마련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이곳은 전시 오프닝이 끝난 후 이어지는 파티인 셈이였다.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보니, 갑자기 배경이 바뀌며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었다. 다음 프로젝트의 소개가 이어지는 것이었다.



 




분명히 비대면 행사/ 수업은 제약이 많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될 때도 이런 저런 서비스와 플랫폼을 활용하면, 그리고 충분한 준비와 계획이 동반된다면, 이렇게 멋진 행사를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일반적인 비대면 행사에서 제일 아쉬운 "함께 있다는 느낌"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하고, 디지털이어서 가능한 장점들을 어떻게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건 그렇고 이제 졸업하고 싶다. 다음에 보는 전시에는 나의 졸업 작품도 당당히 놓여져 있을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금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