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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부르크의 최중원 Mar 20. 2021

Rentner / 은퇴한 사람


근 삼 년째 매주 일요일, 나는 아침 일찍 집 앞의 키오스크에 간다.

가판대에서 나는 짜이트를 한부 집는다. 짜이트는 일주일에 한 번 발행되는 주간 신문이다. 그에 걸맞게 크고 두툼하다.


짜이트 옆에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짜이퉁이 놓여 있다. 이 신문은 원래 일간지인데, 일요일마다 발행되는 존탁스짜이퉁은 형식이나 판형이 짜이트와 비슷하다. 프랑크프루트 사람들은 주식이나 사고팔라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의 애독자들로 판명난 사람들 중에 어느 하나도 내게 거슬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그와는 달리 짜이트를 읽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짜이트가 함부르크에서 발행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옛날부터 종종 시간이 될 때면 혼자서 훌쩍 버스를 타고 함부르크에 다녀오곤 했다. 다 옛 일이다. 연금을 받고 사는 나이가 된 지금은 좁은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내려 들고는 빨간 볼펜 하나도 챙긴 다음, 발코니로 나가서 신문을 펼친다. 녹색 에너지는 과연 녹색인가?  국제화되는 네오 나치, 어두운 아프리카의 이면. 미국의 새 행정부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나는 크고 굵게 쓰인 헤드라인들을 읽고는, 사진과 삽화 그리고 도표들을 훑어본다. 독일인들은, 물론 나도 독일인이지만, 세상에 관심이 너무 많단 말이야.  열혈 짜이트 독자라면 세계의 어느 나라에 떨어져도 곧바로  그 나라의 논객과 그 나라의 문제에 대해 토론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통역사가 있어야겠지만.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건대(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인데, 언제나 솔직한 것이 최선이다) 나는 이른바 "세계 시민"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매주 짜이트를 꼬박꼬박 사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짜이트 신문을 사면, 짜이트 마가진이라는 이름의 작은 잡지가 딸려 온다. 신문보다 조금 더 지엽적인 이야기를 담는 잡지이다. 맨 마지막 장에서 두 페이지 앞으로 가면, "케넨 레아넨" 이라는 코너가 있다. 서로 알아가기. 말하자면 외로운 영혼이 상대를 찾는 코너. 나는 근 삼 년째 이 한 펼침면만을 위해서 매주 짜이트를 산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신문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커피잔으로 눌러 놓은 뒤, 짜이트 매거진을 집어 들고 맨 마지막 장에서 두 페이지 앞을 펼친다. 나는 남자고 이성애자다. 그렇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그녀가 그를 찾습니다. " 항목이 나의 유일한 탐구 대상이다.





1

금발. 날씬하고, 건강하고, 고전 음악과 고전 문학을 좋아하는 59살, 이혼함.  3년간의 솔로 생활 이후에 내 삶을 더 다채롭게 해 줄 당신을 찾습니다. 


금발에 고전을 좋아하는 돌싱이라. 너무 전형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 글자 수에 따라 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에 단어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골라서 올려야 하는 신문 광고에  금발을 제일 첫 번째로 언급하다니, 그저 머리카락 색깔일 뿐인데. 물론 나는 금발을 가진 여자를 좋아하지만, 자신의 머리카락에 너무 과도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사양이다. 아마 지금까지 한 번도 염색을 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고전 음악과 고전 문학 관련해서는, 어디까지를 고전이라고 칭하는지에 따라 나의 평가가 달라질 여지가 있고, 이혼한 것이야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나도 이미 한번 이혼해봤으니 말이다. 잠깐 득실을 따져 본 나는 빨간 볼펜을 들어 이 글이 적힌 박스 옆에 세모를 그린다.




2

나와 함께 완벽한 한 쌍이 될 사람을 찾습니다. (41살, 170cm) 평범한 여자 (모델같은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 하지만 날씬하고, 호기심이 많고, 인생에서 즐거움을 찾아내는데 능숙합니다 (내 장점을 설명하는데 자질이 없는 것이 분명함) 당신 : 덩치가 크지만 뻐기지 않는 사람. 새로운 생각을 즐기고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책임감이 있고, 자연을 사랑하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 큰 거미가 나타났을 때 나 대신 잡아줄 수 있는 영웅.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각자의 모서리들로 완벽한 상을 하나 만들 수 있을지 시도해볼래요? 당신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41살이면 케넨 레아넨 코너에서는 거의 갓난 아기나 다름없는 나이다. 나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계산을 해본다. 1981년 생.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겨우 여덟 살.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20살 정도의 나이 차이는 상관없을까? 하지만 나의 큰딸과의 나이 차이가 다섯 살 밖에 나지 않는다는 것을 떠올리고 나니 영 마뜩잖다. 게다가 거미라니. 41살을 먹도록 거미도 혼자 잡지 못한다니. 게다가 거미는 익충이라고. 자연을 사랑하는 남자를 원하면서 그 남자가 자신을 위해 거미를 잡아주기를 원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나는 빨간 볼펜을 들어 엑스를 친다.




3

박사 학위를 가진 매력적인 여자.(66살) 함부르크에 사는 지적인 남자를 찾습니다.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도전적이고, 나와 함께 세계를 발견하는 여행을 함께 다닐 수 있는 사람. 사진을 함께 보내주세요. 


자신을 „ 박사 학위를 가진“으로, 상대방을 „지적인“으로 묘사한 것이 나의 지적 관심을 끌었다. 자신이 지적이라는 것은 어필하고 싶지만 „지적“이라고 적는 것은 재수 없어 보일 수 있으니 자신의 지성을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학위를 명시한 것이다.  „나와 같거나 높은 학위의 소유자“라고 적는 대신 „지적“인 남자를 찾는다고 적은 이유는, 학위를 따지는 것이 속물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 사람이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  „나는 지적 능력이 있어요.  박사 학위가 바로 그 증명이죠. 그리고 지적 능력이 학위 소유와는 상관없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정도로 열려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고학력자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기만의 메커니즘이다. 


말의 행간을 읽지 못한다고 매번 나를 비난했던 전 와이프에게, 내가 이 짧은 문장에서 이렇게나 많은 정보들을 분석해냈다고, 그러니까 문제는 나의 독해력이 아니라 당신의 표현력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충동이 불쑥 일었다.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해서 지금은 쥣티롤에 살고 있다. 죽을 때까지 이탈리안 파스타나 실컷 먹으라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저주인 건지 축복인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시 케넨 레어넨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평가를 할 차례다. 우선 빌트 대신 한주도 빼놓지 않고 자이트를 사는 남자라면 충분히 지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으로서 이 글에서 드러나는 지식인 특유의 딜레마에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한다. 완벽하네. 단 하나, 사진을 먼저 요구한 것을 제외하면. 오해가 발생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서 먼저 말하자면, 나는 나의 외모에 대해 자신이 있다. 거울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을 정도다. 하지만 외모지상주의에는 단연히 반대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당연히 때가 되면 얼굴을 보여줬을 텐데. 나는 고민 없이 빨간 펜으로 엑스를 그린다.




4

모던한 시골 생활을 즐기는 56살의 매력적인 의사, 62kg 170cm.  청량하게 젊은 마인드. 사랑이 넘치고, 가슴으로 웃을 줄 아는 사람.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열려있음. 이곳의 전원적인 집에서 요리하고 빵을 굽고, 휘게 타임을 갖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을 찾습니다 : 사랑스럽고, 유머가 넘치고, 낙천적이고, 충직한 남자. 말하자면 젠틀맨. 더 많은 정보는 아래 주소로 : 도로시 바딜.(전화번호)


나는 시골이 싫다. 엑스




5

학위를 가진 여자 (49/160)  진지한 관계를 유지할 지적인 남자를 찾습니다. 


정보가 너무 없다.  나이를 밝히지 않는 것에서, 케넨 레아넨 코너에서는 초짜인 티가 팍팍 난다. 엑스




6

자연과 연결된, 영적으로 방랑하는 사람(62). 충만한 시간을 보낼 파트너를 찾습니다.


홀치기염으로 염색된 펑퍼짐한 바지와 아시아 어느 나라의 전통 문양이 들어간 에스닉한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상상된다. 집 앞 정원에는 틀림없이 미니어처 사이즈의 장식용 부처상이 서 있을  것이다. 엑스






마지막 박스까지 다 읽어봤지만, 이번에도 역시 페이지 위에 동그라미는 그려지지 않았다. 

삼 년이 넘도록 동그라미가 그려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너무 까다로운 것일까? 맘에 드는 사람이 생긴다고 해서 바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 어려운 나의 상태가 오히려 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짜이트 매거진이 문제일 수도 있다. 똑같은 케넨 레아넨 코너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메거진에도 있다. 


어쩌면 젠체 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는 짜이트 매거진보다 보수적이긴 해도 숨김없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인의 독자들이 더 내 취향에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내가 예배를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  다되어서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설마 그 짧은 시간 안에 마주칠까 싶기도 했고, 신문 하나를 더 사는 게 그렇게 꿀릴 일인까 싶은 생각에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다시 키오스크로 향했다. 


키오스크 문 앞에서 나는, 막 가게를 나오는 아내를 만났다. 한 손에는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크고 두툼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존탁스짜이퉁을 겨드랑이에 낀 채, 다른 한 손에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매거진을 들고, 케넨 레아넨 페이지를 펼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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