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린다. 나는 이 사실이 좋다. 내가,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달라져서 결국에는 영영 찾을 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말이다. 내게 이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따위의 멜랑꼴리나 애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건조한 하나의 법칙에 가깝다. 그리고 세상에는 법칙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법칙왕
모든 것에서 법칙을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일 년에 두세 개의 법칙을 발표했는데, 그 법칙에는 언뜻 보기에는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두세 가지 요소들의 관계가 그리 복잡하지 않은 수식들로 설명되어 있었다. 모두가 처음에는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논문은 꼼꼼하고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쓰여 있었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보였던 그의 법칙들이 관측결과 실제로 맞아떨어진다는 것이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그렇게 북극에 서식하는 특정한 종류의 펭귄이 그 해에 낳은 알의 총합과 미국과의 국경에 맞닿은 멕시코의 도시 타후이나의 마약 갱들이 목매달아 살해한 시체의 수가, 어느 KPOP 그룹의 멤버 한 명이 버블에서 팬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빈도와 홍콩의 주가 지수 사이의 관계가 밝혀졌다.
언제나 익명으로 학술지에 투고를 했기 때문에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어로 쓰인 그의 논문에서 특정 단어들이 사용되는 경향을 분석한 사람들은 그 사람이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화자는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어휘력과 완벽에 가까운 문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봤을 때 비영어 문화권에서 비교적 일찍 영미권으로 유학온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서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곧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외계인이거나, CIA에 의해 특수한 지적 개조를 받은 초인이거나, 또는 이 세상의 모든 데이터를 모아 훈련된 AI 이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그 사람은 꾸준하게 법칙을 발표했다. 그렇게 새로운 사실들이 - 오래도록 내전 중인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수 증감과 미국 전역에서 치료를 받은 치과 환자 수 사이의 연관성, 중국의 모든 봉제공장에서 하루에 사용되는 하얀색 실타래의 개수와 애플 아이팟의 판매량 사이의 관계가- 밝혀졌다.
에너지 보존의 법칙
모든 정온동물들은 자신의 생명 활동을 문제없이 유지하기 위해 특정 체온을 유지해야 한다. 이 온도의 범위는 꽤 작아서, 사람의 경우에는 36도에서 37.5도 사이다. 이런 내용을 교양수업의 교재에서 읽었을 때 A는 고개를 갸웃했다. B의 손이 너무나도 차가웠기 때문이다. A는 물론 그 사실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A는 B를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다. 역사가 있는 새를 관찰하는 동아리였는데, B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제일 오래된 부원이었다. 당연히 특정 활동들을 완료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새명”도 가지고 있었다. B의 새명은 동고비였는데, 숲에서 비교적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나무를 잘 타는 텃새였다. 그렇게 특징이 있다거나 멋있다거나 하는 새는 아니었던 데다가, 마르고 키가 큰 데다가 말이 별로 없어서 신비한 이미지를 가진 B와는 어울리지 않아서 의아하다고 A는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A 뿐만이 아니었다. 세 명의 선배가 A를 포함한 신입 부원에게 B의 새명에 대해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은 헤어지고 동아리도 탈퇴한 전 여자친구가 B에게 정해준 이름이라든지, B가 신입생이던 시절 첫 탐사를 나갔을 때 한 마리의 동고비가 자꾸 B의 뒤를 따라 날아왔기 때문이라든지, 원래 새명은 “새호리기’였는데, 새명을 건 내기에서 져서 상대방의 새명이었던 동고비를 B가 받게 되었다든지 등.
그 이야기를 들은 B는 꽤 즐거워하는 듯했다. B가 A에게 말해준 이야기는 정말 싱거웠다. B는 굳이 새명을 가지고 싶지 않았지만, 규칙은 규칙이었다. B는 그때 당시 회장에게 아무 새나 좋으니 대신 정해달라고 했다. 동아리에서 “새명”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훨씬 더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회장은 기분이 상했다. 그는 조류도감을 집어 들고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그 페이지에 나와있는 새를 B의 새명으로 정해 버렸다. 정말 B 같은 이야기라고 A는 생각했다. B는 꽤 많은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부잣집에서 도련님처럼 자란 것일까? B는 사치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써야 할 돈이 있을 때 B에게 쓸 돈이 모자란 경우를 A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신의 용돈이나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A는 종종 B가 부러웠다.
A와 B는 둘의 사이를 떠들고 다니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밀로 하지도 않았다. 동아리는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그러나 부원들끼리 사귀는 것이 금지되어있지도 않았고, 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보통 순하고 작은 즐거움에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곧 A와 B는 동호회의 공식 커플로 사랑받았다. 물론 몰래 B를 좋아하던 두 명의 부원들이 슬픔에 휩싸여 동아리를 떠나는 일은 있었지만.
처음으로 B의 손을 잡았을 때가 언제였는지, 어디였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A는 기억하지 못한다. 대신 A는 B의 손이 차가워서 놀랐다는 사실만을 기억한다. 그 차가움은 다른 것들의 차가움과는 달랐다. 겨울바람은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들고, 얼음은 언젠가는 녹는다. 하지만 B의 손은 언제나 같은 온도였다. 추운 날에도, 더운 날에도.
A가 동아리에 들어갔던 것은 막 새 학기가 시작하던 3월이었고, B와의 관계가 발전된 것은 날이 막 더워지기 시작하던 5월이었다. 온난화 때문인지 추석이 지날 때까지 날씨는 30도를 오르내렸고, A는 B와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B의 손을 잡았다. 이동식 다용도 개인 에어컨이라고, A는 B에게 매번 장난 삼아 말했다. 하지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자 A는 한 겨울에 B의 손을 잡는 것이 곤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위가 시작될 때쯤 B와 만나게 되고, 추위가 시작될 때쯤 B와 헤어지게 된 것이 단순히 우연이었을까? A는 그것이 우연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B가 만약 손이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었다면 A는 겨울쯤 B와 만났다가 여름에 헤어졌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B의 손이 차갑거나 따뜻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A가 아무리 노력해 보아도 B의 손의 온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언가가 전달되지 않은 채 사라지고 있었다.
A는 동아리를 나왔고, 얼마 뒤에 손을 잡고 걸으면 금세 자신의 손과 온도가 비슷해지는 사람을 만났다. 동고비도 새호리기도 그 뒤로 본 적이 없다.
법칙왕 리턴즈
그 사람이 새로운 법칙을 과학지에 투고하지 않은 지 벌써 5년이 넘게 흘렀다. 처음에는 러시아의 특수부대가 잡아갔다더니, AI 프로그램이 오류를 토해내고 뻗었다더니 등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던 사람들은 이제 그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발견해 낸 많은 법칙들은 거의 모두 다 참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 법칙들은 매우 좁은 개별 사례들에서만 적용될 수 있을 뿐, 보편적인 쓰임을 가질 수 있도록 그것들을 확장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사람의 발견들은 그래서 결국 의미 없는 해프닝에 가까웠다는 식으로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밝혀낸 법칙은 다음과 같다: 전 세계의 사람들을 전부 꼽아보았을 때, 다음 세 조건에 각각 부합하는 사람의 수는 언제나 서로 동일하다. 1) 어떤 종류가 되었건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고 있는 사람 2) 지금 이 순간 하품을 하고 있는 사람 3) 지금 이 순간 자위를 하고 있는 사람
법칙들 반칙들
떨어지는 사과와, 행성이 왜 타원형으로 회전하는지와, 녹아버리는 얼음과 이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이 작동하는 원리와 넘어졌을 때의 아픔이, 배고픔과 배부름이, 즐거움과 괴로움이 결국에는 모두 몇 가지 법칙과 원리로 설명될 수 있다니 나는 왠지 모욕을 당한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