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리와 가위바위보

by 효창 응봉 최중원

이 대리는 회의실 창문 너머, 건너편 빌딩의 사무실에서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 그러니까 눈알 굴리기와 손가락으로 키보드 타이핑 하기만으로 - 일하는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본다. 네 시간째 이어지고 있는 회의는 정말 조금의 진전도 없이 공전하고 있었다. 두꺼비 같은 부장과 뱀 같은 팀장, 그리고 토끼 같은 사원은 모두가 자기를 닮은 말만 해 댔다. 다시 말하자면- 일을 굴러가게 하는 데에는 하등 도움 하나 되지 않는 말만 했다는 것이다.


이 대리는 의자를 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한다. 영업 팀 소속으로. 그는 의지가 잘 팔릴 수 있도록 무엇이든, 말 그대로 무엇이든 해야 했다. 판매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 관리를 하고, 새로운 유통처를 뚫는 것 같은 클래식한 일들부터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경쟁 브랜드 영업사원 흉보기, 주말 아침에 천변에 나가서 줌바를 하면서 학생들을 자녀로 둔 아주머니들의 대화에 껴서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의자에 대해 듣기까지. 저번 주말에는 골 때리는 콘텐츠 때문에 인기가 있는 유튜버의 방송에 초대되어 강원도 어딘가의 폐교까지 가야 했다. 회사의 업무용 의자들과 함께. 이 대리는 왜 지금 자신이 이 회사에서 의자를 팔고 있는지를 꽤나 진지하게 여러 번이나 생각해 봤으나, 도저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몇 번의 우연과, 몇 번의 의미 없고 깊게 고민하지 않은 선택들이 자신을 이 자리, 이 사람들과의 회의실에 데려다가 앉혀놓았다. 회의실의 의자는 매우 불편했다. 의자 회사인데 사무실의 의자에 투자하는 것에 인색한 것부터가 문제 아닌가? 후… 의자 좀 그만 생각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의자가 사라져 버려서, 사람들은 서 있던지 누워있던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세상이 와버렸으면. 잠깐…그럼 나 침대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거 아니야?


“이 대리도 가만히 있지 말고 의견을 좀 내 봐요.”

두꺼비 부장의 목소리가 이 대리의 망상을 흐트러트린다. 의견… 의견이라… 언제 뭐 말하면 들어주긴 했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이 대리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오늘의 회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오래 걸릴 거라는 것을 다들 출근길부터 짐작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고려해야 할 게 한 두 개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간단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고려사항이 무엇인지를 정하고, 그 기준에 입각해서 선택을 내리는 것. 그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 고려사항이 뭔지에 대한 합의에 이르러야겠지요.”


부장과 팀장, 사원이 잠깐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서 어떤 것이 제일 중요한 고려사항인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이 시작된다. 좋아, 다시 한 턴 넘겼군- 하고 이 대리는 생각한다. 부장과 팀장, 사원과 번갈아 눈을 마주치면서, 가끔은 고개를 끄떡이고, 가끔은 펴놓은 노트북에 뭔가를 타이핑하기도 하면서 이 대리는 자신과 함께 회의실에 앉아있는 세 명의 사람을 관찰했다. 아- 직장인이란 뭘까. 따지고 보면 본인과는 아무 상관없는 문제에 왜 다들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달려든단 말인가. 이 대리는 손목을 잠깐 기울여 애플워치를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작고 변변치 못한 회사지만 그래도 야근수당을 잘 챙겨주기 때문에, 이 대리는 보통 때라면 회의가 저녁 여섯 시를 넘겨 이어진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저녁 식비도 아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상황이 달랐다. 이 대리는 꼭 정시퇴근을 해야 했다. 늦으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대리는 골 때리는 콘텐츠 때문에 인기 있는 유튜버에게 배운 것이 하나 있었다. 금방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한 여름이지만 빛이 들지 않고 서늘한 폐교의 복도에서 이 대리는 자신의 회사에서 파는 업무용 의자를 타고 경주를 해야 했다. 출발선에는 이 대리의 회사 의자 외에도 다른 세 경쟁사의 업무용 의자가 있었다. 의자 뒤에는 세 경쟁사에서 일하는 세 명의 대리들이, 의자의 등받이를 짚고 서 있었다. 주변에는 조명을, 카메라를, 마이크를, 그 외 이런저런 것들을 들고 있는 유튜버 팀의 스태프들도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육상 경기를 할 때 쓰는 화약이 터지는 총이 격발 되면서 펑 소리를 내고, 이 대리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들은 자신을 고용한 회사가 생산하는 바퀴 달린 업무용 의자의 등받이를 잡고 앞으로 밀며 달려 나가다, 속도가 어느 정도 붙은 다음에는 점프하여 의자 위에, 각자의 자세로 앉는다. 제일 멀리까지 가는 의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어느 브랜드의 의자 바퀴가 더 부드러운지를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다.


생각보다 재미를 살릴 만한 클립을 많이 건지지 못했기 때문에 이 대리를 비롯한 네 명의 레이서들은 도합 여덟 번의 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모든 브랜드의 의자가 똑같이 두 번씩 일등을 차지했다. 촬영을 마친 다음 유튜버가 직원들에게 캔 커피를 돌리면서, 여덟 번의 경기가 편집되어 단 한 번의 경기가 치러진 것처럼 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러분 모두, 여러분 회사의 의자가 1등 하기를, 그걸로 의자의 판매량에 어떤 유의미한 증가가 있기를 바라셨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이상한 경기에 열심히 참여해 주신 거겠죠. 하지만 모두가 동률인 상태로 경기가 끝났고, 저희 스태프들의 계약시간도 이미 초과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경기를 벌이는 것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게임인 이상 승자는 필요하죠. 이럴 때에는 온전히 운에 맡기는 것이 경험상 제일 좋더라고요. 좋은 결과가 있어도 누구의 공이 되지 않고, 나쁜 결과가 있어도 누구의 탓이 되지 않는 거죠. “




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두꺼비 부장과 뱀 팀장, 토끼 사원이 동의할까? 하지만 이 사람들은 여전히 각자의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나면, 누군가가 이게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하면서 근처에서 도시락을 시켜오자고 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다. 그곳의 직화 불백 도시락은 맛이 꽤 좋은 편이었지만, 말했듯이 오늘 이 대리는 늦으면 안 되는 중요한 약속이 있다. 어떻게든 지금 당장 이 회의를 끝내야 한다.


“이 대리 생각은 어때?”

이번에는 뱀 팀장이, 타이밍 좋게 이 대리에게 의견을 구한다.

이 대리는 두꺼비 부장과 뱀 팀장, 토끼 사원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저희 가위바위보로 정하죠.”



가위바위보의 승자는 토끼 사원이었다. 토끼 사원이 최우선 고려 요소로 주장한 것은 (자기를 포함한) 저 연차 직원들의 선호도였다. 연말 회식은 토끼 사원이 제안한 대로 야키토리 집에서 하게 될 것이다. 이 대리는 야키토리 집에 두세 번 정도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열리는 회식이 어떤 모습일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나오는 양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라며 사장은 불만을 표할 테고, 가게가 좁아서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앉아야 하겠지. 안쪽 자리에 앉은 누군가가 화장실을 가려면 다섯 명 열 명이 일어나서 길을 틔워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음식은 맛있고, 젊은 직원들은 대부분 좋아할 것이다. 두꺼비 부장은 돼지갈빗집을, 뱀 부장은 화덕 피자집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두 곳 모두 이 대리에겐 익숙한 곳이었다. 이 대리는 보통 웬만한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다 좋아했고, 후보로 올랐던 세 식당 중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다.



퇴근길에 이 대리는 자신이 출연했던 유튜브 영상이 공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대리는 가위바위보에서 계속 졌고, 결국 경주에서 꼴등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튜브 속의 이 대리는 꽤나 진지하게, 정말 우승을 바라는 것처럼 열심히 의자에 올라타 굴러가고 있었다. 무슨 스포츠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그게 꽤나 웃겼다. 그다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모든 것을 가위바위보로 정하는 게 모두에게 더 이로운 것이 아닐까? 선택을 운에 맡겨버린다면,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떠하든 마음이 더 평온한 것이 아닐까? 지하철의 자리가 하나밖에 남지 않았을 때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 유언을 제대로 작성하지 않고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남은 유산 또는 남은 빛을 형제자매 중 누가 물려받을 것인지, 데이트하러 나가서 저녁을 먹으러 순대볶음집에 갈 것인지 파스타집에 갈 것인지, 또는 삼각관계에 있는 세 당사자가 어떻게든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을 때라던지…

그다음 이 대리에게는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자기가 지금까지 내렸던 모든 선택들이 사실은 가위바위보와 비슷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선택과 자신이 받은 결과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없거나, 있더라도 아주 희미한 것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자신은 온전히 우연의 연속들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앞으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위 바위 보 중 무엇을 낼지 고민하는 것뿐인 게 아닐까.


이 대리는 버스에서 내려서 횡단보도에 섰다. 맞은편 건물의 일층 카페 통유리창 너머로, 단정한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고 있다. 이 대리와 만나기로 약속한 헤드 헌터인 모양이었다. 사무용 의자를 만들어 파는 경쟁사에서 온 오퍼의 자세한 내용을 듣는 자리라고 그랬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며, 이 대리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무엇을 낼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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