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by 효창 응봉 최중원


*

스페인 남쪽 어딘가의 도시는, 가로수가 전부 오렌지 나무래. 생각해 봐.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 여름의 뜨거운 햇살에 붉게 익어버린 사람들, 전날의 즐거움에 취한 채 돌계단에 드러누워 아직 깨어나지 못한 취객과, 서울과 똑같이 생겼지만 왠지 좀 더 몸가짐이 여유로운 비둘기들이 있는 풍경을. 도로를 따라 양 쪽에 줄지어 서있는 초록빛 잎이 무성한 나무에 주먹만 한 오렌지가 무심하게 달려있는 모습을.


그 말을 하던 훈의 눈빛이 반짝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

내가 기억하는 훈의 모습은 언제나 비슷하다. 머리는 항상 반삭이었고, 푹푹 찌는 한여름이든 코끝이 시려오는 겨울이든 언제나 청바지에 긴팔 맨투맨을 입었다. 물론 나는 사복 차림보다 광택이 도는 남색 폴리에스테르 재질에, 끝단에는 주황색 테이핑이 들어간 프랜차이즈 버거집의 유니폼을 입은 훈을 훨씬 더 많이 봤다. 우리는 그곳에서 반년 가량 함께 일했다.


야간 알바는 고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클럽에 들어가기 전에 배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그다음에는 계획에 없던 야근을 마치고 뒤늦은 저녁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그다음엔 3교대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는 클럽에서 나와서 방전된 에너지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제각기 저마다의 이유로 조금씩의 예민함을 장착한 채 카운터 앞으로 몰려왔다. 나는 보통 주문 담당이었다. 손님들의 짜증이나 피로를 애써 모르는 채 하며 그들이 주문하는 치즈버거니 치킨버거니 밀크셰이크니 치킨너겟이니 하는 것들을 쉴 새 없이 포스기에 입력하고, 얼음이 담긴 종이컵에 콜라를 따르고, 막 완성되어 따끈따끈한 버거나 갓 튀겨진 감자튀김을 트레이에 올린 다음, 손님을 호출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리고 훈은 주방에서 햄버거 패티를 구웠다.


새벽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왔다가 카운터에서 나와 마주친 대학 동기가 다른 친구들에게 “걔 휴학한 다음에 뭐 하나 했더니 무슨 재벌집 자제가 서민 체험 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나는 화가 났지만, 동시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아르바이트 없이도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 비교적 풍족한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었으니까.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심한 이유 역시 내가 생각해도 한심해서, 나는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훈에게 아르바이트는 생계 수단이었다. 많지 않은 월급으로 서울의 반대편에 있는 작은 방의 월세를 내고, 식비와 데이터 사용 용량이 제한적인 통신사 요금, 인터넷 요금을 납부하고, 그 외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 필요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항목의 지출을 해야 한다고 훈은 말했다.

“이거도 사실 헤어숍 갈 돈을 아끼기 위한 겁니다. 바리깡만 사면 되거든요.” 훈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균일한 길이로 솟아올라 있는 머리카락들이 훈의 손바닥이 지나갈 때마다 눌려 접혔다 펴지며 사악-소리를 냈다. 오빠도 남동생도 없는 나는 반삭 한 머리를 만져본 적이 없었다. 그 뒤로 종종-예를 들면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 나보다 조금 앞서 가고 있는 훈을 발견했을 때- 나는 훈의 머리를 쓰다듬는 상상을 했다.


훈은 패티를 잘 구웠다. 모두가 훈이 구운 패티의 맛을 인정했다. 그 얇고 볼품없는, 냉동 상태로 배를 타고 몇 개월 동안 한국까지 여행해 오는 바람에 진이 다 빠져버린 패티도 훈이 구우면 새 삶을 찾았다. 육즙은 넘쳐나고, 감칠맛은 폭발한다. 분명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같이 카운터에서 일하는 유민은 훈이 사람들 몰래 MSG를 뿌리는 것이 분명하다고 여러 번 내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주었다. 근데 그거 불법 아니에요? 불법일까? 딱히 해로운 것도 아니잖아. 그치만 중국에서는 자기 식당에 자주 오라고 음식에 마약을 넣었다가 걸리는 일이 종종 있대요. MSG는 마약이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근데 언니, MSG 왠지 마약 이름 같지 않아요? 왜 그 LSD도 있고, 그러고 보면 하얀 가루인 것도 똑같고… 왜 유튜브에서 중국집 주방 찍은 영상 보면, 기름이랑 향신료 옆에 하얀 가루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통이 있어서, 주방장이 요리하면서 자꾸 그 가루를 퍼다 넣던데… 알고 봤더니 그거 다 MSG가 아니라 마약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 그래서 내가 요즘 자꾸 짬뽕이 생각났던 걸까? 그런데요 언니…


야간 알바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 그 이상함이 사람들을 끌어당겨 이 시간 이곳으로 모으는 것만 같다. 유민의 이상함은 바로 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하기 능력에 있었다. 포스 기를 조작하고 콜라와 버거를 담고 손님을 호출하는 일을 계속하면서도 어떻게 생각의 흐름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것 일가. 유민의 끝도 없는 말들에 적당히 리액션을 하면서도, 나는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고자 노력한다. 뜨거운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패티가 내는 치이익- 하는 소리. 곧이어 뒤집개를 사용해서 패티를 뒤집는 소리. 그다음엔 좀 더 넓적한 긁개를 사용해서 철판에 들러붙은 조각들을 긁어내는 소리. 그다음엔 새로운 패티 3개가 철판 위에 올라가고, 제일 큰 치이익 소리가 난다. 오래도록 하나의 일을 해서 마침내 완벽하게 손에 익힌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간결한 리듬이 놀랍게도, 그 모든 부산스러움을 뚫고 내 귀에 또렷하게 도달한다.


하루는 남자친구에게 무심코 훈의 이야기를 했다. 요 전에 몇 번 이야기했던, 패티를 기가 막히게 잘 굽는 분 있잖아. 그런데 그 사람이 오렌지를 먹지 못한대. 예전에 일하던 곳은 작은 개인 카페였는데 여름에는 오렌지 착즙기를 가져다 놓고 바로 오렌지를 잘라 넣고 주스를 만들어 팔아야 했다나 봐. 근데 오렌지 냄새를 맡는 것도 힘들었다는 거야. 그래서 -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우리는 강남이었나 압구정 어딘가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고 있었다. 아마도 샐러드 위에 올려진 오렌지를 보고 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다. 남자친구는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오렌지를 왜 먹지 못한대?” “그건 나도 모르겠네. 오늘 밤에 물어봐야겠다.” “그래, 나한테도 알려줘. 그 훈이라는 분이 왜 오렌지를 먹지 못하게 되었는지” 남자친구는 언제나처럼 퇴근길의 정체를 뚫고 한강을 건너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버거집 근처까지 데려다주었지만,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말수가 적고 잘 웃지 않았다. 앞으로는 남자친구에게 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좀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나는 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생겼을 때 - 예를 들어 오렌지를 싫어하면서도 왜 스페인에 가서 오렌지나무를 보고 싶어 하는지 등등- 남자친구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날 밤 매장은 바쁘고 정신없었다. 근처의 라이브 클럽들이 함께 기획하는 행사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에 손님도 끊이지 않았다. 사건도 있었다. 취한 손님들이 콜라며 버거가 올려진 쟁반을 엎는 일이야 하루에 두세 번씩 있는 일이었지만, 자기가 쏟은 콜라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경찰과 구급차가 왔다 갔고, 우리는 바닥에 쏟아진 피가 섞인 콜라를 닦아낸 다음 다시 주문을 받았다. 카운터와 음료 디스펜서 사이의 좁은 공간을 오가며 매번 서로 부딪히는 것에 익숙해진지 한참이었는 데도, 유민도 나도 조금 날카로워져서 티격태격하기까지 했다. 주문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인지 주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도 제 리듬을 잃은 것 같았다.


해가 뜨고, 주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유니폼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자마자 뒤늦은 피곤이 몰려왔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 집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택시를 타면 30분이면 침대 위에 몸을 눕힐 수 있다.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에 웬만하면 택시는 안 타려 했지만, 이날은 너무나 힘들었다. 길 맞은편으로 건너간 다음 택시를 호출하려 앱을 켰는데, 매장에서 걸어 나오는 훈이 보였다. 청바지에 남색 긴팔 맨투맨 티셔츠를 입고, 크로스백을 맨 익숙한 차림이었다.


왜일까, 갑자기 몰래 훈을 따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은 다음, 넓지 않은 차도를 사이에 두고 훈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지난밤의 흥분이 잔해처럼 흩어져 있었다. 밤새 놀았던 사람들이 피곤한 낯빛으로 두세 명씩 모여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훈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모퉁이를 돌았다. 편의점에 들러서 콜라 한 캔을 들고 나온 훈은 그것을 걸어가면서 다 마시고는, 빈 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곤 곧바로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내가 있는 쪽의 길에도 지하철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었다. 내려가 보니 훈은 이미 개찰구 안쪽을 통과해서, 지하철 플랫폼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막 발을 내딛고 있었다. 훈의 반삭 머리가 한 걸음씩 계단 아래로 내려가더니 더는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이 도착하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열차가 다시 출발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채 잠이 깨지 않은 얼굴들이 계단을 걸어 올라온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지상으로 올라왔고,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버거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나는 목표로 했던 돈을 모았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근무날을 마치고 나는 매니저님, 유민, 훈, 그리고 다른 몇몇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워낙 사람들이 자주 그만두고 자주 새로 들어와서 그런지 모두가 담담했고, 나도 그랬다. 하지만 밖으로 나와서 추운 날씨에도 얇게 입고 밤을 지새운 사람들이 인생을 이르게 다 살아버린 듯한 표정으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이제 이곳에 올 일이 없다는 것이 실감 났다. 매장 건너편 길가에 서서 호출한 택시가 오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훈이 나오면 택시를 취소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훈보다 먼저 택시가 도착했다. 한강을 건너갈 때쯤 나는 훈에게 문자를 보내 오렌지를 싫어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답문에서 훈은,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대신 오히려 내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언제 우리가 서로 말을 놓게 되었을까. 언제 훈이 내게 오렌지를 싫어한다고 말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유가 좀 부끄러워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언제 내가 훈에게 말했을까.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는 자취를 하기 위해서다. 모은 돈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면, 부모님이 거기에 돈을 보태서 내년 1학기 복학에 맞춰 대학 근처에 오피스텔을 얻어주실 것이다. 겨우 6개월 일한 금액으로는 풀 옵션 복층 오피스텔의 보증금을 반은커녕 1/10도 채울 수 없다. 이건 아빠의 아이디어인 듯했는데, 아마도 고생해서 돈을 번 사람만이 돈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같은 말을 내게 전달하고 싶다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다른 이들에게, 특히 훈에게 할 수 없었다. 훈이 오렌지를 싫어하게 된 이유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훈이 보낸 메시지에 뭐라고 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나는 그 대신,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로 있다는 스페인 남부의 도시를 찾아보았다. 세비아, 발렌시아, 그 외 몇몇 작은 도시들. 정말 강렬한 주황색 오랜지들이, 가로수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그 사진들을 넘겨보다 보니, 왠지 모르게 내가 훈이 보낸 메시지에 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 대리와 가위바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