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일정 수준 이하의 예술은 예술로 쳐주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특정한 금액의 돈을 내면 그에 상응하는 유무형의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 뒤, 돈을 받고, 원했던 것 대신 세상이 그리 만만하지만은 않다는 교훈만 남겨놓고 떠나는 행위 자체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예술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남은 시간은 35분. 오늘은 선글라스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직업적 도구로서의 선글라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또는 진실을 말하는지를 보려면 눈을 살피라는 이야기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거친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눈동자의 움직임을, 또는 흔들림을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업계에서 전설로 통하는 청진동의 김 씨는 큰 일을 앞두고 하는 말이 모두 거짓말뿐인 사람을 네 계절에 걸쳐 연기했다. 그의 눈동자를 통해 거짓말을 읽어내는 것을 일 년 동안 매번 성공했던 대상은, 제일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흔들리지 않고,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눈동자의 움직임을 보며 이번에는 김 씨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결과로 대상은 회사를 잃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불필요한 연민을 느끼지 말라고 부연해 보자면, 단란한 3인 가족의 구성원이었던 이들은 지금 각각 런던, 취리히, 뉴욕에 있다. 부자는 사기를 당해도 3대는 가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눈동자의 움직임을 계속 신경 쓴다는 것은 꽤나 성가신 일이긴 하다. 손짓, 몸짓, 목소리의 톤과 말투 등 그 모든 비언어적인 발화행위 중에서 제일 통제하기 어렵고, 따라서 현장에서 제일 큰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우리 전문가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작업할 만큼 큰일이 아닐 때는 마음 편하게 선글라스를 집어 들고 집을 나선다. 물론 상대방은, 우리가 선글라스를 썼다 해도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도 미세한 흔들림이나 약간이나마 커진 동공 같은 작은 변화들은 선글라스의 어두운 렌즈에 묻혀 버린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는 진한 고동색 렌즈의 도움으로, 마음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주기율표를 외우거나 좋아하는 시구를 읊거나, 또는 오늘 저녁에 만들 애플파이의 레시피 같은 것을 되뇌어보면서 천연덕스럽게 앞에 앉아있는 대상과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선글라스
어떤 일이든, 일정 정도로 통달하게 되면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깨달음을 얻게 마련이다. 그 깨달음 덕택에 나와 같은 업계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요리를 잘하고,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쉽게 얻으며(직업윤리와, 쉽게 가려고 하는 게으른 마음이 서로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충돌하는 지점이다. 매력적인 이야깃거리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도록 하자), 자신의 신체나 신체에서 발산하는 분위기를 어떤 것들로 포장에 두어야 제일 흥미로워 보이는지를 별 다른 노력 없이도 알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확립해 둔 것은 물론, 자신만의 선글라스 취향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사복 차림을 볼 일이 업다. 일 할 때 우리는, 철저히 계산된 방식으로 입을 옷과 걸칠 모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콧등 위에 가볍게 걸쳐 쓸 선글라스까지 고르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속옷까지! 고리타분하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놀라운 통찰을 주어 우리들 사이에서 교과서로 통하는 책의 이름 역시 “손톱, 새치 그리고 속옷-성공적인 작업을 위한 디테일의 중요성“이다)
선글라스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보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선글라스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름철 바닷가에 나가보기만 해도 바로 알 수 있다. 열에 아홉은 얼굴의 크기, 얼굴형, 인상, 덩치, 옷차림, 들고 다니는 가방과 액세서리 등등과 영 조화롭지 못한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유행에 휩쓸려 산 것일까?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 연인이 선물해 준 것일까? 빨리 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아주 가끔, 나는 그 사람을 절묘하게 완성시켜 주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직업적 영감의 순간이다.
아까도 말했던 이유로, 우리는 보통 일할 때 선글라스를 쓰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선글라스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과 종종 충돌하기도 한다. 우리는 일 할 때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그 사람은 특정한 형태나 브랜드의 선글라스와 무척 어울리는 치일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선글라스와도 맞지 않는 치일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어떤 종류의 선글라스와도 맞지 않으면서도 그중 하나를 쓰고 있는 사람을 봤을 때 그 불일치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는 잠재적인 위험을 매우 빠르게 인지해 낸다. 잘 모르겠지만 여기 자연스럽지 않은 뭔가가 있어! 이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는데?
그 어떤 선글라스와도 맞지 않는 사람 이야기는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일을 나갈 때 선글라스를 고르는 것은 정말이지 무척이나 까다로운 일이다. 이건 단순히 나에게, 또는 내가 연기할 사람에게 이 선글라스가 맞는지 맞지 않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또 너무 어울려버리는 것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자연스러움도 도가 지나치면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늘 내가 고른 선글라스가 아주 마음에 든다. 완벽한 선택이다.
선글라스로서의 선글라스
한 여름 주말 오전, 시내 업무지구의 이면도로에 위치한 그리 높지 않은 빌딩 1층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는 손님들을 모두 땡볕 아래로 쫓아내기라도 하고 싶은 듯 에어컨을 최대치로 틀어놓고 있다. 오래된 원두를 오래 볶아서 쓴 맛밖에 추출되지 않은 에스프레소로 만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정말이지 한 모금도 더 마시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인 나는 지금 매소드 연기 중이다. 나는 돈을 쓰고 아끼는 데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강남에 빌딩 세 채를 가진 부자가 된 사람이다. 커피에도 취향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으며, 돈으로 경험을 사면 금방 일류 바리스타와 워시드와 내추럴 가공방식의 차이나 남미나 아프리카 원두의 차이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단지 아직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뿐이다.
패션은 좀 다르다. 나는 패션에 꽤 많은 돈을 날리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뒤 이제 자신에게 맞는 옷을 어느 정도는 갖춰 입을 수 있게 되었다. 버건디 색의 폴로셔츠에 다림질선이 날렵하게 살아있는 베이지색 치노 팬츠, 태슬이 달린 밤색 로퍼. (당연히 양말은 신지 않는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옷 못 입는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거다.
하지만 선글라스는 아직까지 좀 어렵다. 나는 지금 크리스천 디올의 무테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네모난 진한 파란색 렌즈가 두 개. 두꺼운 다리 바깥쪽마다 박혀있는 “CD” 이니셜이 부담스럽게 금색으로 빛난다. 막 생긴 애인이 “자기는 다 좋은데, 선글라스만 바꾸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겠어”라고 말할 것 만 같다. 앗 이런… 방금 한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달라. 매소드 연기 중인 나는, 지금의 나에게 이 선글라스가 완벽히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다. 이제 7분 남았다. 오늘은 근 한 달간 공을 들였던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 중요한 날이다. 하지만 준비는 다 되어 있다. 단 한 가지의 변수가 있다면, 갑자기 오늘 대상이 컨설턴트 일을 하는 먼 친척 한 명을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는 것이지만, 별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이미 우리는 함께 사무실이며 공장을 돌아보았다. 부사징과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물론 내 사무실도 아니고, 내 공장도 아니고, 부사장도 아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지 말아라. 영업 비밀이다) 오늘은 차용증을 확인하고, 서로 인감을 찍고, 서로 덕담을 나누는 형식적인 자리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경을 바짝 차려야 한다. 태도가 흐트러지면 뭔가가 삐죽 튀어나오게 되고,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귀신같이 알아채기 마련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되뇌어보았다. 내 이름, 직업, 나의 개인사 같은 것은 너무 완벽히 익어서 술술 나올 정도다. 패스. 내가 꾸려나가고 있는 회사의 사무실 소재지, 공장의 위치, 직원들, 오래도록 함께 일했고, 최근에 부사장이 된 친구이자 직원 등등 회사에 대한 일반 사항들. 패스. 내가 최근에 관심 있는 신사업 분야. 왜 바로 지금 당장 그 사업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지. 왜 은행을 통한 일반적인 대출이 아니라, 개인들끼리의 거래로 자금을 융통해야 하는지. 패스. 좋아, 완벽해.
예술로서의 선글라스
카페의 문이 열리고, 대상이 들어온다. 나는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하러 일어섰다가, 대상을 따라 들어오는 웬 멀쑥하게 생기고 멀쑥하게 차려입은 청년과 눈을 마주친다. 나이는 40대 초반. 미용실을 다녀온 지 2주는 되었을까, 단정했을 헤어스타일이 흐트러져 있다. 남색 폴리에스테르 소재로 된 통기성이 좋은 여름 정장에, 유니클로의 피케셔츠를 입고, 한 손에는 기능성 원단으로 만들어진 샘소나이트의 검은색 서류 가방을 들고 있다. 넓은 어깨는 운동부 활동을 열심히 했던 대학생 시절을 기억하고 있지만, 오래도록 앉은 자세로 바쁘게 일을 하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배가 조금 나왔다. 이런 사람이 선글라스를 쓴다면, 어떤 선글라스를 쓸 것인가? 클래식한 뿔테 모양을 가진 레이밴의 웨이페어러. 정확히 그 선글라스가, 그것도 검은색 뿔테로 된 모델이 그 청년의 콧잔등에 살며시 걸쳐져 있다.
완벽해. 완벽하게 자연스럽다. 옷차림, 걸음걸이, 헤어스타일, 그리고 선글라스까지. 모든 것들이 정확히 10년 차의 적당히 유능하고 적당히 자신감 있는 컨설턴트를 조형해내고 있다. 이상한 구석, 혼자 튀는 부분, 사연이 궁금해지는 요소라곤 전혀 없다. 광대 근처에 나있는 주근깨며, 햇볕에 탄 손등.. 재킷 밖으로도 두드러지는, 왼팔보다 조금 더 두꺼운 오른팔로 추측하건대, 이 사람은 테니스에 시간을 많이 쏟는다. 그리고 컨설턴트들이 테니스를 즐겨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모든 게 허점이 없어서 이상할 정도다.
나는 당혹스럽다. 이 사람은 진짜 컨설턴트일까? 아니면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인 것일까? 만약 동종 업계 사람이라면, 원래 테니스가 취미인 것일까? 아니면, 이번 일을 위해 몇 개월에 거쳐 테니스를 친 것일까? 후자라면, 이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야심 있는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불문율에 따르자면, 일에 착수했다가 같은 대상을 향해 작업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났을 경우, 그 사람이 펼쳐놓은 판이 나보다 크다면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인사하세요, 현우 씨. 이쪽은 제가 말했던, 컨설턴트를 하고 있는 친척, 김서훈입니다”
대상이 나에게 컨설턴트를 소개한다. 김서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컨설턴트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처음 뵙겠습니다. 김서훈입니다.”
나는 악수를 하며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본다.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얻어내고자 노력한다. 내 선글라스의 파란색 렌즈와 그가 쓴 선글라스의 진갈색 렌즈 너머로 상대방의 눈동자가 보이지만, 알아낼 수 있는 유의미한 정보는 거의 없다. 아- 난 정말이지 예술이 싫다. 모든 것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결국에 남는 것은 속고 속이는 기싸움뿐이다. 네 개의 눈동자가 두 겹의 색유리를 사이에 두고 깜빡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