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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저녁노을

노을빛 같던 사무실 사람들의 얼굴

by 다올 Mar 14. 2025

원문장

강 건너 들판 끝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눈을 돌렸다가 다시 바라보면 놀라울 정도로 둥글고 커다란 해가 어느 틈에 아래로 툭 떨어져 있었다. 트럭은 도시 외곽을 지나 강변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다리가 보이는 곳에서부터 멎었다가 다시 나아가기를 되풀이하더니 앞에서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낯익은 세상- 황석영


나의 문장


  평화방송 라디오를 켰다. 기다렸단 듯이  라디오에서 삼종기도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6시다. 서울의 퇴근 시간은 늘 그랬다. 10분 정도의 차이로도 밀리지 않고 갈 수도, 대책 없이 길 위에 정차되기도 했다. 오늘은 평상시보다 30분 정도 늦게 퇴근했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강변도로 위에서 잠시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성호경을 긋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성령으로 잉태하셨나이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 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주님의 종이 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


  느긋하게 삼종기도를 따라 해 본다. 너무 앞서나가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목소리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기도 소리에 맞춰서 나직하게 기도를 한다. 천주교 신자들은 하루 중에서 해야 할 기도들이 여러 가지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잠자기 전 꼭 기도를 했다. 무릎을 꿇고 눈을 꼭 감고 기도를 했다. 이젠 기억나지도 않는 기도들.

그래서일까? 이렇게 뜻하지  않게 기도 시간을 맞닥뜨리면 기꺼이 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소위 나일론 신자가 된 후론 운전 중에 하는 기도가 기도 시간의 전부였다.


“기도합시다.

하느님, 천사의 아룀으로 성자께서 사람이 되심을 알았으니

성자의 수난과 십자가로 부활이 영광에 이르는 은총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짧은 삼종기도는 금방 끝났다. 길지 않은 가을 해는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나 여기로 갔다.”

하고 알려주기라도 하듯 노을이 붉다. 아니 붉다는 한 단어로 표현한다는 것이 미안했다. 붉기도 하고 분홍빛이기도 한 사이사이 하얀 구름도 그리고 미련 남은 푸른 하늘이 보랏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 _everaldo, 출처 Unsplash© _everaldo, 출처 Unsplash


오늘 사무실에서 저 노을 같은 얼굴들들 봤다. 붉으락 푸르락 다 다른 얼굴색을 하고 있었다. 영업팀장을 맡은 K의 실수로 사무실이 한바탕 난리였다. 공장에 발주를 잘 못 넣어서 회사에 큰 손해가 가게 되었다. 영업 상무가 한바탕 사무실에서 소리를 질렀다. 상무의 얼굴과 사무실 직원들의 얼굴빛이 저녁노을빛 같았다.  


'쳇! 가을 하늘 저녁노을이 사무실 사람들 얼굴 같다고 생각하다니, 나도 이젠 감성이라고는 다 사라진 도시 사람이 되었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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