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중간고사인데 마음은 집중을 못하고 흩어집니다. 아마 은빛 억새랑 노란 미역취 그리고 삼색의 코스모스 때문인가 봅니다. 어김없이 가을은 찾아왔고 제 마음은 억새처럼 코스모스처럼 흔들리고 맙니다.
섬마을 길가의 억새
마을을 모으고 싶어 필사를 합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속엔 가슴에 담아놓을 문장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심만이 쌓입니다. 손에 쥔 펜을 가만히 놓아버립니다.
광양 서천의 코스모스
아직도 스스로는 길가의 은빛억새처럼 느껴집니다. 이리저리 흔들리고 곧장 어디라도 떠날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 곳으로도 갈 수 없는 뿌리 박힌 식물처럼 말입니다.
섬마을 우리동네 억새
좀 더 계절이 깊어지면 억새의 찰랑찰랑하던 머릿결이 한없이 부스스 부풀고 은빛은 하얗게 되겠죠. 가벼운 이삭이 되는 날 흙 속 깊이 박힌 뿌리와 이삭을 꽉 잡고 있던 줄기와 이별하는 날이 오겠죠.
지난가을 동네 억새
무게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가벼운 억새의 이삭이 흩어지고 빈 줄기만 남겠죠. 그러고 나면 하늘에선 똑같이 하얗고 무게를 느낄 수 없는 흰 눈이 내리는 날이 오겠죠. 그럼 저는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엔 무게가 있겠죠? 다만 내가 느끼지 못하는 것뿐.
가볍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 마당에 내린 눈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맥을 못 추는 걸까?
왜 이렇게 힘이 들고 축 처지는 걸까?' 하고 말이죠.
해마다 오는 가을 탓도 탓이려니와 최근 읽은 책 때문이라는 결론을 냈습니다.
한강 작가의 책들
바로 한강작가의 책들
채식주의자 속 단편 세 편, 희랍어 시간, 흰 등을 읽으며 며칠을 보냈는데
그녀의 책을 읽기 전엔
노벨상이라니 기쁘다.(실제로 제가 밴드에 수상소식을 처음으로 올렸죠)
축하한다.
부럽다.
나도 잘 쓰고 싶다.
였다면 읽는 중과 읽은 후엔 잘 모르겠다.
어렵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진짜 다 이해하고 좋아요라는 댓글을 다는 걸까?
아, 나는 갈길이 멀었나 보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작품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 나는 문학적 소양이 크게 부족하구나 하는 자괴감)
그리고 우울하다였습니다.
George Digalakis의 작품
아는 작가님 말씀 들었더니 이렇게 말 씀 하시더군요.
"아니야. 자기 탓이 아니야. 주변에 한강책 읽은 사람들이 거의 그렇게 말해. 읽기 힘들고 우울하다고. 이젠 읽지 말고 다른 거 읽어"
라고요.
조금 위로가 되었습니다.
깊은 어둠의 성질이 인간의 본성 중에 하나이듯 저는 또 다른 본성인 밝고 반짝이는 것을 곁에 두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어둡고 피가 낭자하고 욕설이 난무하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강작가의 글 속엔 피ᆞ고통ᆞ불통ᆞ먹먹함ᆞ자책ᆞ고집등이 가득했습니다.
문학 역시 취향이기에
저는 잠시 한강작가의 글을 멀리하려 합니다.
그리고 밝아지고 싶습니다.
오래 전 불갑사에서
ps. 혹 요즘 갑자기 우울해졌다면 혹시 저랑 같은 이유가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中
ㅡ내 것인 줄 알았으나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
ㅡ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ㅡ늙으면 한 방울 이상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네. 노인은 점점 가벼워져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없어. 눈물도 한 방울이고 분노도 성냥불 휙 긋듯 한 번이야. 그게 늙은이의 슬픔이고 늙은이의 분노야. 엉엉 소리 내 울고 피눈물 흘리는 것도 행복이라네. 늙은이는 기막힌 비극 앞에서도 딱 눈문 한 방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