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ernard Street Mar 21. 2024

Pay it forward?


이번에 내가 일하는 곳에 스물 한 살짜리 "아주 용감한" 미국 여학생이 인턴으로 들어왔다.


정말 한국말이라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밖엔 모르는 수준이니, 식당을 찾아 적당한 메뉴를 주문하고 세탁물을 맡기는 등의 아주 기본적인 일상조차 쉽지 않은 듯 했다. 방학 때 두 달만 있다가 돌아갈 예정이니 굳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울 이유도 없긴 하겠지... 


저녁을 사주며 잠깐 대화를 해보니, 이 친구는 웨이트가 취미인데 근처에 적당한 헬스장을 찾을 수가 없는 게 가장 큰 불편이라고 한다. 우선 당분간은 내가 사는 곳의 헬스장 시설을 이용하라고 가지고 있던 스페어 카드키를 그 친구한테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5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 연고도 없이, 미국 남부의 한 공항에 내팽개쳐지듯 떨어진 기억. 


이민용 캐리어를 두 개나 끌고 38도에 육박하는 더위 속에서 내가 들어갈 아파트를 찾아 헤매던 기억. 

자동차도 없던 때라 백불짜리 중고 자전거를 타고 식료품을 사러 40분이나 걸려 월마트에 갔던 기억.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하필 재수 없게 레인스톰을 만나 쫄딱 젖었던 기억. 


그리고, 그 때의 나에게 크고 작은 친절을 베풀어 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기억.




첫 학기 때 티에이를 맡았던 어느 할머니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불러서, 학교 통학은 어떻게 하는지, 학교 셔틀버스 타는 법은 알고 있는지, 수업은 따라 갈만한지 등등을 물어봐 주셨다. 아직 영어가 어렵다면 구글 번역기를 쓰면 된다고 내 앞에서 손수 작동법을 설명해주시기도 했다.


'네, 교수님 사실은 저도 이미 알고 있어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가면서 겨우 겨우 버티고 있는 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진 못했었다. 


자긴 절대로 외국에서 대학원 공부를 할 엄두도 못 냈을 거라는 교수님의 말은 -설령 빈 말이었을지라도- 당시의 나에게 참 큰 위로가 됐었다. 




가끔, 살면서 나에게 크고 작은 친절을 베풀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어쩌면 괜찮은 삶이란 그러한 기억의 선물 보따리를 두둑이 쌓아 놓는 것, 그리고 그러한 선물 보따리를 때때로 친절과 다정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건네는 삶이 아닐까 한다. 


사는 건 원래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때로는 지루하고,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버겁다.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볼 때면, 우리는 그 안에서 도움이 필요한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타인에 대한 작은 친절들로 채워 나가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삶의 일회성과 다양성에 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