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기적에 기적을 더해

by 봄날의 고양이

무너진 건물 틈에서 처음으로 빛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임시보호가 가능하다고 연락이 온 사람은 서울에 살고 있었고 아이 둘이 있는 젊은 남성 분이었다. 아이의 아픈 상태를 설명하자 아내 분이 집에 계셔서 낮 동안 케어도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대화만 하고 녀석을 맡기기에는 조금 불안해서 직접 데려다주면서 집을 방문해도 될지 물어봤다. 그래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불편할 수도 있는 요청이었을 텐데 임보자 분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고 바로 그날 저녁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분의 직장은 남양주라고 했다. 남양주에 사는 선생님이 직장 앞까지 나를 태워다 주기로 했고 그분을 만나 차를 타고 같이 집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차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이다. 대화 상으로는 좋은 분이었지만 세상에 하도 무서운 일들이 많다 보니 여자인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 긴장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IMG_8266.JPG 임보처가 구해지고 사무실을 나가기 전까지도 우리에게 꼭 붙어있던 녀석. 누군가의 온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일단 오늘 저녁 이 녀석이 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나고 어느새 퇴근시간이 되어 녀석이 든 케이지와 짐을 양손에 바리바리 들고 차에 올랐다. 남양주로 향하는 중에도 여러 생각과 근심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좋은 분이어야 할 텐데. 만약에라도 녀석이 그 집에 갔다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고양이를 학대해서 신고당한 사람들의 뉴스 기사를 접했던 요즘이라 괜히 더 걱정이 됐다. 그런 걱정을 하다 보니 차는 어느새 남양주에 도착했고 그분의 직장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곳까지 데려다준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회사로 들어갔다.


처음 만난 임보자 분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선한 눈매와 인상에 일단 마음이 놓였다. 아직 퇴근 시간 전이라고 해서 잠시 손님용 자리에 앉아 기다리다가 곧 퇴근 시간이 되어 함께 회사를 나와 차를 탔다. 짐이 많아 정신이 없어서 차 번호판을 미처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제 모든 건 하늘에 맡기고 부디 좋은 분들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녀석을 구조하게 된 사연과 우리 집에 있는 열매 이야기까지 하게 됐다. 다행히 이야기를 할수록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고 어느새 아파트 단지에 들어선 차는 주차장에 멈춰 섰다. 그리고 드디어 집 앞이었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문을 열자마자 바닥 여기저기 놓인 아이들 장난감과 아이들 의자, 널어놓은 빨래들이 보였다. 그리고 온몸을 감싸는 따뜻한 온기까지. 그제야 온몸을 지탱하던 긴장과 걱정들이 한꺼번에 탁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내 분과 아이들은 이미 아기 고양이가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궁금한 표정으로 녀석을 내려놓기도 전에 케이지 안쪽을 살펴봤다. 꼬물거리며 케이지를 나오는 아기 고양이를 본 아이들의 얼굴에 금방 웃음꽃이 피었다. 눈에 안약을 넣는 시범을 보여주면서 약 급여와 안약 투여 방법 등을 설명해 주고, 집에서 가져온 케이지와 약을 먹일 수 있는 스포이트, 다이소에서 산 용품들을 전해주었다.


설명을 다 하고 일어서자 녀석은 이미 집 여기저기를 탐색하며 돌아다니고 있었고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녀석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아내 분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하고 급히 집을 나왔다. 임보자 분은 나를 근처 역까지 태워다 주셨고 나는 다시 한번 녀석을 잘 부탁드린다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차에서 내려 문을 탁 닫고 돌아서자마자 집에서부터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있는 감정들이 가슴속에서 한 번에 휘몰아쳤다. 어제 녀석을 구조했을 때 느꼈던 당혹감, 당장 갈 곳이 없어 모텔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느꼈던 절망과 불안함, 막막함. 그리고 오늘 내내 가졌던 긴장과 걱정까지. 이틀 동안 나를 덮쳐왔던 수많은 감정들이 한순간에 쓸려 내려가면서 느껴지는 안도감과 감사함에 감정이 북받쳤다.


생각해 보면 아무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었던 녀석을 구조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지만, 하루 만에 이렇게 좋은 임보처를 찾은 것 역시 기적이었다. 기적에 기적을 더해 살아남은 아이였다.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있는 힘껏 울부짖은 녀석은 결국 스스로를 살렸고 오늘 녀석이 임보되기까지 도움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또 한 번 아이를 살렸다. 단 하루 만에 죽음에서 삶으로, 절망에서 기적으로 바뀐 아이의 운명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지하철을 타고서도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아 한순간에 금요일 밤에 사연 있는 여자가 되어 버리긴 했지만 온몸이 떨릴 만큼 뜨겁게 올라오는 감정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틀 동안 한 시간밖에 자지 못한 피로감 때문인지 집으로 가는 길은 유난히 멀고 힘들었지만, 마음만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만큼이나 뜨거웠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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