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ding D-87 : 남들 다 하는, 그러나 나다운
"결혼식, 그거 남들한테 보여주려고 하는거 아니야? 굳이 돈 들이고 시간 들여서 하는 결혼식 문화는 없어져야해~" 라고 말하던 나였다. 그런데 내가 결혼식을 하고, 결혼 사진을 찍었다.
'뿌린 돈은 거둬야 한다'는 축의금 관련 압박이 전혀 없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건 정말 행운이다. 오히려, 그런 허례허식은 귀찮다면서 하지 말라고 하셨다. '결혼식을 해야할까'라는 고민만 한 달을 했다.
나에겐 결혼한 친구가 딱 2명 있다. 결혼한 친구 1, JY는 이런 말을 남겼다.
"음.. 근데.. 결혼식을 하니까 가정에 책임감이 생기는 것 같아. 그날 축하받았던 기억때문에 남편이랑 싸워도 한번 더 생각하게 되고, 배려하게 되고."
나에게는 마음의 병으로 힘들었던 대학생활, 사회생활동안 함께해준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반려인은 운동부 생활을 하며 동고동락한, 가족보다 더 찐한 사이인 선후배들이 있다.
소중한 친구들, 동료들에게 서로를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더라. 친구들이 준 무한한 지지 덕분에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보여주고, 축하받고 싶었다.
그래서 웨딩홀에서 하는 결혼식을 하기로 했다. 남들 다 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답게.
다음 단계의 고민은 '결혼사진을 찍을 것인가?'였다.
엄마 친구 자녀분들의 모바일 청첩장을 몇 개 받았다. 다 비슷비슷한 배경에서 거기서 거기인것 같은 하얀 드레스 입고, 양복 입고 찍는 사진. 단조로운 모습에 꼭 찍어야할까? 생각했다. 모바일 청첩장에 사진 안넣는다고 결혼식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이 즈음 정보수집을 위해 웨딩카페에 가입했다. 이 스튜디오는 얼마 짜리인지, 이 정도 스튜디오에는 이 정도 드레스는 해야하지 않을지, 헤어변형을 추가해야 하진 않을지 등을 고민하는 예비신부들이 많았다. (헤어변형 : 스튜디오 촬영 동안 머리를 바꾸는걸 말한다. 업체마다 다르나 보통 3시간에 30~40만원이며, 스튜디오 촬영 시간이 5~6시간이기 때문에 1시간당 5~10만원 선에서 추가하곤 한다.) 결혼업계는 한번뿐인 손님들의 불안, 걱정, 비교하는 마음을 자극해서 어떻게든 뽕을 뽑아 먹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스튜디오를 단독으로 계약하는게 아니라 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스드메)로 묶어서 플래너를 통해 계약하는 방식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스튜디오 자체의 가격을 알 수 없고, 플래너가 소개해주는 가격과 업체로만 계약해야 하는거지? 무언가 구매하는데 대략적인 가격만 아는 채로 구매해야 하다니..
결혼한 친구 2, YJ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된건 그 즈음이었다. YJ는 신랑신부, 특히 신부를 통해 수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웨딩업계에서 기왕이면 여성을 지지하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에게 요구(주입)되는 웨딩업계에서, 소비재가 되어 소모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취향에 맞는 사진을 찍는 여성작가님을 선택했다고 한다.
의미없어, 형식적인 거야, 라고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의미있는' 일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구나.
그래서 '사진' 자체에 생각의 초점을 맞췄다. 나는 사진을 남기고 싶은가? 우리에게 이 사진이 필요한가?
코로나 이후 사귀기 시작한 우리는 제대로 된 커플사진 한장 없었다. 차가 없는 뚜벅이, 주말에만 보는 나름 장거리 커플, 세상 그 누구보다 코로나를 조심해서 가족조차 잘 안보는 나이기에 어디 놀러간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인물사진이 취미인 나는 왠만한 셀프사진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서 전문적인 스튜디오에서 결혼사진 겸 커폴사진을 찍기로 했다. 플래너 없이 직접 준비해서.
- 배경 없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옷과 소품을 정할 수 있는 스튜디오
- 옷, 소품 등이 정해져있지 않고 업체와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조율할 수 있는 곳
- 어떤 사람이 가든 똑같은 가격을 받는 정찰제
- 가급적이면 여성 대표가 직접 작가로서 촬영하는 업체
이 조건에 딱 맞는 스튜디오를 선택했고, 찍고 싶은 사진 리스트를 정했다. 그에 맞는 옷과 소품을 하나하나씩 골랐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결혼사진.
이런 우리에게 '결혼사진은 보여주기 위한거고, 결혼식은 허례허식이야'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 다만 누군가 우리를 허례허식에 찌든 요즘 세대라고 평가해도 상관없다. 우리가 하고싶어서, 우리답게 하는거니까.
찍기 전에는 솔직히 몇백 만원짜리, 유명 스튜디오가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막연하게 부럽고 질투나는 마음. 그런데 끝나고 보니, 남들 하는 곳에서 했지만 그럼에도 나다운 사진을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결혼'식'도, 결혼 자체도 나답게 하는 것, 이걸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