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벌리기 대마왕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지금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반드시 적어야 한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었다.
이게 될까, 싶으면서도 "해보자!" 했는데 하루만에 14명이 모였다. 그 중 10명은 서로 시차도 다 다른 외국인이다. (정정한다. 참여자가 추가되어 최종 20명이 모였고 15명이 외국인이었다.) 14명이 함께 버스정류장 광고를 내고 선물을 하는 프로젝트.
난 정말, 일 벌리기 대마왕이다. 마음에 방이 많아서 하고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많다. 프로젝트를 찾아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없나 기웃거리고,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친 추진력으로 바로 시작한다. 작년에 고생하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나의 본능을 제어하지 못했다.
한국어 영어 그 어느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두 카톡방 사이를 오가며 manager + moderator + translator 의 역할을 할 것이 겁난다. 하지만 설렌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걱정되는 마음이 31%라면, 설렘이 36%, 또 어떤 배움을 얻을 수 있을까 기대되는 마음이 33% 정도로, 설렘 > 기대 > 걱정 순이다.
오해가 생겨도, 우선 나를 믿고, 나의 느린 영어를 들어주고 대신 말해줄 조력자가 있다. 그녀를 믿고, 외국인과 교류가 많은 그녀에게 참여할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녀는 적합한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에게 직접 연락했다. 나의 기획의도와 현재 상황을 자세하면서 분명하고 멋있게 잘 전달해 주었다. 그녀를 믿을 수 있으니 그녀가 추천하는 사람들도 믿기로 마음먹길 정말 잘했다. 그리고 현실적인 제약과 예상가능한 여러 상황으로 인한 걱정을 솔직하게 말하길 잘했다. (너무 멋있게 말해줘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1년 9개월 째 온라인으로 많은 사람들과 스쳐지나가면서 가장 고마운건 '신뢰'이다.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정말 큰 일이다. 각종 경영 서적을 읽거나 회사에 있으면 신뢰를 강조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런데 신뢰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 것일까.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나눠야 하지만, 동시에 솔직한 마음과 삶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도 얻기 어렵다. 이 흉흉한 세상에 나도 타인에 대한 신뢰를 쉽사리 갖지 못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온라인에서 스쳐 지나간, 언어도 다른 나를, 얼굴도 알지 못하면서 늘 신뢰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가장 신뢰한다며 메시지를 보낸다. 각자 상황이 다르지만 나름대로 노력하여 마련한 돈을 잘 써달라면서 기부한다. 단순히 언어의 문제는 아니다. 언어가 같은 사람들과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종종 나누긴 하지만 자주 만난것은 아닌데, 신뢰하고 서로 고민을 나눈다. 어떤 상황이 생겼을 때, 그 상황을 판단하기보다 우선 내 이야기에 귀기울여준다.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누군가가 나를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신뢰받을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만들어주고, 나의 자존감이 제대로 세워지는데 큰 힘이 되었다. 그렇다, 나는 신뢰와 조건없는 지지를 받을만한 사람이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그 메시지를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그걸로 일기도 쓰고, 캡쳐해서 친구들한테 자랑도 한다는 사실을. 그 말 한 마디가, 때로는 일상에서 힘들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나도 그런 한마디를 남기는 따뜻한 사람이 되자고 오늘도 또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