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점심 도시락을 싼 직장인의 이야기
점심 도시락을 챙겨서 회사를 다니고 있다. 입사 후 3주차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3개월 하고 열흘 정도, 즉 100일 정도가 지났다. 도시락을 먹는다 하면 회사 분들은 ’도대체 뭘 먹어요? 밥 잘 챙겨먹긴 하는건가’’하고 걱정하시기도 한다. 그리고 회사 밖의 친구나 지인들은 ‘점심을 맨날맨날 챙겨 다녀요? 와 00씨진짜 대단한 사람이네요’ 하며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이었는지 놀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시락을 싸는 것은 부지런함과는 큰 상관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일이 아닌 일상에서는 부지런, 바지런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고 주로 게으름, 귀찮음과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도시락을 싸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적어본다.
- 집에 도착하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계속 누워있다가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하고 나서는, 집에 가자마자 씻고 바로 도시락을 싸게 된다. 조금이라도 게으르게 있으면 도시락을 싸는 것이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의욕적으로 도시락을 싸고 나면, 몸을 움직이게 되고 작은 성취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남은 저녁 시간에 무엇이든 계획하고 실행하게 된다, 운동이든, 드라마를 보든, 공부를 하든, 글을 쓰든!
- 책 <하루 2시간 몰입의 힘>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계속해서 몰입하여 업무를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뇌를 최대한 사용하여 몰입하는 시간과 뇌를 쉬도록 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거나, 단순한 일을 하는 시간을 구분해야 하고, 두 시간을 철저하게 계획하여 병행해야 한다.
도시락을 먹는 점심시간은 뇌를 쉬는 시간이다. 더군다나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미리 계획되어 있고 업무시간과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더 몰입하면서도 오히려 덜 피곤한 오후 근무가 가능하다.
- 소화가 정말 잘된다. 처음 출근하고나서, 모든 환경이 새로운데다가 자극적인 바깥 음식을 점심때마다 먹다 보니 살은 찌는데 소화는 잘 안되어서 많이 힘들었다. 도시락은 주로 먹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을 챙기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그에 맞춰서 챙기기 때문에 속이 편안하다. 하루동안 먹는 음식의 양과 영양소를 균형있게 맞출 수 있다는 것도 당연히!
- 식비보다 우선순위가 높은 여러 가지에 여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 재료를 사느라 밥값이 아예 절약되지는 않지만, 유의미한 수준의 n만원이 절약된다.
+ 오늘 도시락을 먹으면서, 옆 테이블의 동료가 '도시락 싸다니면 진짜 살이랑 지갑사정 두가지는 훨 나아진다니까'라고 말씀하시는걸 들었다. 내가 다 뿌듯했다.
100일을 겪으며 세운 딱 한 가지 도시락 원칙이 있는데,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것이다. 우리 회사에는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휴게실/라운지에 식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이 내 도시락을 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보기좋게 싸야해! 근데 내 도시락은 너무 보기 좋지 않다..’ 하는 걱정을 했다. 나는 데코레이션에 전혀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요리하고 먹는 것이 즐겁고, 영양소를 골고루 먹고, 그러면서 시간과 돈을 절약하려고 도시락을 싸는 것이다. 본연의 목적을 잘 달성한다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타인의 시선에 신경쓸 필요가 하나도 없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도시락을 통해서도 배운다. 사실 점심을 사먹는 사람들은 ‘도시락으로 뭘 싸와?’하면서 궁금해하지만, 정작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은 남의 도시락에 관심이 없다, 내가 그렇듯이.
일주일 내내 도시락을 먹어도 5끼이고, 점심약속이나 사내 모임 등 도시락을 먹지 않는 날이 분명히 생기기 때문에 끼니 수는 훨씬 줄어든다. 그래서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부담이 줄어든다. 무엇보다, 퇴근 후 활기를 주고, 다양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한번 시작해볼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일주일에 하루로 시작하고 조금씩 늘려가면 어렵지 않다.
도시락을 언제 싸? 아침엔 출근하기도 바쁜데..
긴 통근시간으로 아침에 싸는 것은 포기했다. 전날 밤에 챙긴 후, 다음날 점심에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먹는다. 보온성이 있으며 원형으로 된 도시락 통은 무겁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 통을 애용한다.
도시락을 어떻게 매일매일 싸? 시간이 돼?
우선, 가족과 함께 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하루 계획을 세울때 집에 도착하면 도시락을 싸는 시간을 30분~1시간 정도 배정해 둔다. 그러다 보니 도시락을 싸는 것이 가능하다. 정해진 시간 동안은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하며 어떠한 제한도 없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활력소가 되기 때문에 도시락 싸는 것이 전혀 귀찮지 않고,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그리고 퇴근 후의 시간을 규칙적이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시간이 절약된다.
주로 뭘 먹어? 반찬을 매일 바꾸기 힘들지 않나?
좋아하는게 최고다. 좋아하는걸 싸야 점심시간이 기대되고, 도시락 싸는 것에 대한 의욕이 생기고, 지속할 수 있다.
나는 중국음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마파두부를 정말 자주 한다. 두부, 고기, 파, 고추장만 있으면 되고, 한그릇 음식이라 도시락에 담거나 먹기에도 간편하다.
반찬으로는 나또가 유용하다. 마트에 가면 1인분 용으로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아 여러개를 묶어서 파는 제품이 아주 많이 있다. 개당 5~600원 꼴이고, 건강에도 좋고, 양념도 함께 들어있기 때문에 맛도 좋다.
계란말이, 계란후라이, 고기 등 단백질과, 시금치, 버섯구이, 양파볶음 같은 야채를 골고루 담으려고 노력한다. 편리함과 영양을 둘 다 잡으려면, 브로콜리 삶은 것이 유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