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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 Dec 10. 2018

무수한 '나'들의 이야기가 모인 세계의 이야기

김연수 단편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 리뷰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 작가의 말


tvN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에서, 초반부의 감정선을 이끌어가는 말이다. 감정과 감성으로 가득해서 소중한 이 드라마를 최근에 다시 봤고, 자연스럽게 이어서 이 책을 읽었다.


각 소설의 전개는 다 다르지만, 다른 사람 - 주로 인연이 끊어졌던 가족, 연인 - 의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소문하고, 그러다가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의 한 조각을 듣게 되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확장되면서 공감하게 되는 그런 과정. 문학을 읽어야 사람과 삶에 대한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던, 그래서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던 문유석 판사님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이 생각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조그마한 용기를 얻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면서,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용기. 심리학 서적을 읽었을 때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주 확실하고 분명하게 마음에 다가왔다.


위에 적은 '작가의 말'에 이어지는 부분은 이렇다.

하지만 쉽게 위로하지 않으면서 쉽게 절망하지 않는 일이 정말 가능할까?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건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불꽃 때문이다.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피어오른, 하지만 바깥의 불꽃이 없었다면 애당초 타오르지 않았을, 그런 따뜻한 불꽃.




기억에 남는 문장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흔 세 살이란 이런 나이야. 반환점을 돌아서 얼마간 그 동안 그랬듯이 열심히 뛰어가다가 문득 깨닫는 거야. 이 길이 언젠가 한번 와본 길이라는 걸. 지금까지 온 만큼 다시 달려가야 이 모든게 끝나리라는 걸. 그 사람도 그런 게 지겨워서 자살했을 거야.


처음에는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나중에는 감정의 흐름을 지켜봐. 그럴 때면 그들의 인생이란 이야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이야기 사이의 공백에 있는 게 아닐까는 생각마저 들어. 그런데 편집은 목소리 사이의 공백을 없애는 일이잖아.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에서 기침이나 한숨 소리, 침 삼키는 소리 같은 걸 찾아내서 없애는 거야. 그러면 이상하게 되게 외로워져.

그렇게 해서 편집이 다 끝나고 방송이 흘러나올 때면 그녀는 자신이 직접 만나서 들었던 바로 그 인생담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에 번번이 좌절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이야기'란 목소리와 목소리 사이, 기침이나 한숨 소리, 혹은 침 삼키는 소리 같은 데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모두 헛똑똑이들이다.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 대부분은 '우리 쪽에서' 아는 것들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런 처지인데도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 노인이 되어 죽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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