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를 가장한 1년 전 나의 마음 얘기
출국 전에 우리는 셩완에 위치한 이비스 호텔을 10박 예약해두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신랑이 출근하기 전에 집을 구해서 트렁크 4개의 세간 살이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것 이었으나, 어차피 집값이나 호텔값이 비등비등하여 며칠을 추가로 호텔에 묵게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홍콩에 도착한지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입술이 간질간질하고 이튿날에는 몸살에 걸린 것 처럼 몸이 아프더니 이내 입술을 뺑 둘러서 수포가 가득 올라와서 입을 벌리는 것이 고역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바닥은 카펫에다 창문도 열리지 않는 호텔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환기가 되는 집같은 집에 살고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홍콩은 대부분이 전세가 아닌 월세로 집 렌트가 이루어지는 덕분에 기다리지 않고 집들을 하루에 여러 곳 볼 수 있었고 또 계약을 결정하면 실제 계약 시작일에서 일주일 정도는 미리 입주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라 우리는 호텔에서 처음 예정했던 10박만 머물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여러모로 안정적이던 서울생활을 갑자기 우리 손으로 끊어내고 완전히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기로 결정을 한 후로 나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신랑이 해외의 회사들에 지원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일 년 전 부터 였고 인터뷰의 진행 상황도 옆에서 지켜보면서 응원해왔지만 뭐랄까, 현실적으로 내 생각으로는 너무 불가능한 도전이라 정말로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 뭐 그런 날이 올거란걸 알았어도 도전을 말리거나 내 마음의 준비를 더 잘 했을것 같지도 않지만 말이다. 출국 전까지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아서 기존의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해야할 일이 한가득이었는데 되돌아보면 나는 거의 패닉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항상 마음만 다급했다. 결국엔 짐도 신랑이 다 쌌다. 아주 많은 것을 두고 왔지만 우리가 싼 2개의 큰 트렁크, 2개의 기내용 트렁크, 그리고 3개의 EMS박스, 그 중에서도 도착하자마자 쓸 것으로 분류된 트렁크 한 켠에는 원두와 핸드밀을 비롯한 드리퍼 세트가 포함되어 있었다.
호텔에 있으면서 아직 어딘지 모를 우리의 집에 가서 어서 커피를 내려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출국 전날 우리의 멋진 어른 친구가 먼거리를 찾아와서 맛있는 원두와 커피용품을 따뜻한 마음과 함께 선물했다. 호텔에 있는 열흘 동안 원두가 그사이 산화되어서 맛을 다 느끼지 못할까봐 걱정이 됐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낯선 곳에서 매 끼니를 사먹고 커피도 사마셔야하는 이 이상한 상황을 벗어나서 원래대로 아침이면 힘들다,하면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원두를 갈고 끼니때면 귀찮다,하면서도 냉장고를 열어 식사준비를 하는 일상적인 생활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비록 난생 처음보는 덥고 습한 기후와 하늘을 보기 힘들만큼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인 곳에 있지만 집에서 내려마시는 커피같은 평범한 일상적인 것들이 이 불안하고 낯선 마음을 달래줄 테니까.
사실 일년이 지난 지금, 집에서 처음 내려먹었던 커피 맛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선명한 것은 호텔에서 빨리 집을 구하고 이사를 가서 커피를 내려마셔야지 다짐했던 그 마음이다. 그때 그 마음으로 우리는 호텔도 지나오고 너무 좁았던 첫번째 집도 지나와서 이제는 차분하게 지난 일년을 돌아볼 수도 있을 만큼의 적응을 했다. 그리고 우리 입에 맞는 적당한 가격의 원두를 어디서 살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각자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카페도 생긴지 조금 되었다.
원두는 센트럴의 바리스타 잼 또는 코즈웨이베이의 아리스타 파르페토에서 구매한다. 아리스타 파르페토의 원두를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곳은 원두를 처음에 사면 틴케이스까지 포함해서 250g에 140달러, 두 번째부터는 틴케이스를 가져가서 리필로 100달러에 살 수 있다. 원두도 fruity와 nutty, 두 종류 중 고를 수 있다. 우리는 산미 가득한 fruity 원두를 기본적으로 선호하는 fruity 파인데 시험삼아 선택해본 nutty 원두가 너무 너무 맛있었어서 이번에는 어떤 원두를 골라야 하나 선택이 어려울 정도다.
신랑의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1년 정도 홍콩에 카페 붐이 일어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새로운 카페들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도 몇몇 소식빠른 홍콩의 카페 인스타그래머를 팔로우하면서 그중 일부의 카페들을 틈이 날 때마다 가보고 있긴하지만 막상 각자가 좋아하는 카페는 신상 카페는 아니다. 신랑은 우리의 원두를 책임지는 아리스타 파르페토를, 나는 삼수이포에 있는 카페 소살리토를 최고의 카페로 꼽는다. 카페 소살리토는 당연히 엄~~~청나게 맛있는 커피와 좁은 내부에 어두침침하고 왠지 아마추어스럽지만 느낌있는 멋진 그림들이 걸려있는 것이 매력이었는데 최근에 왠일인지 내부를 리모델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변에 새로운 카페들이 너무 많이 생겨서인걸까? 새로 바뀐 인테리어는 세련되었겠지만 전의 편안한 멋짐을 잃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다시 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