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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Jun 05. 2020

아이들이 일제히 '양철북'을
두드린다면?

멀기만 한 학교 안의 민주주의와 청소년 인권

 “아빠, 중학생이 되면 왜 머리를 못 길러?”


 며칠 전, 배정 받은 중학교에 임시 소집이 있어 갔다 온 첫째 딸 주희가 이렇게 내게 물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온 추궁성 질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나는 딱 부러지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녀석은 초등학교 6년 내내 긴 머리를 하고 다녔다.    

 “양말도 색깔 있는 건 안 된다 하고, 머리핀도 마음대로 못하고. 열라 왕 짜증나.” 


 딸애가 학교에서 받아왔다며 ‘학생생활 수칙’을 내게 내밀었지만 나는 읽어볼 생각이 없었다. 보나마나 뻔했다. ‘속 좁은 시어미’ 같은 생활 수칙, 선도 규정 따위가 앞날 창창하니 자유를 구가하고픈 예비 숙녀 눈에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불만이 없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하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그런 게 모두 자율인 학교도 있는 모양이더라만 니네 학교가 안 그러는 건 학생들이 겉모양에 너무 신경 쓰면 공부에 방해된다고 생각해서겠지, 뭐.” 어정쩡하게 한 마디 했다. 두발 자유 반대론자들의 논리가 언제나 이런 식으로 귀결되곤 한다는 걸 상기하면서 말이다. 


그러자 “그런 게 어디 있어? 공부하고 머리 기르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거야?” 정곡을 찌르는 반문이 바로 날아왔다. 나로선 당연 할 말이 없었다. 정말이지 공부하는 것하고 두발 길이하고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학교에서 말하는 ‘불량한 용모’라는 것도 그렇다. 양호와 불량 사이의 경계를 누가, 어떤 잣대로 정했는가도 문제지만 그 잣대조차 학교마다 천차만별인 것이다. 예컨대 여학생 머리카락 길이 허용 기준이 귀밑 3센티인 학교도 있고 귀밑 20센티인 학교도 있다. 귀밑 20센티로도 아무 탈이 없던 학교의 학생이 귀밑3센티인 학교로 전학을 가면 당장 규정 위반자 내지 불량학생이 될 운명에 처하고 만다. (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그랬는데 뭐가 문제? 하지만 이 같은 강변은 그저 우격다짐일 뿐 교육도 아니고 ‘선도’는 더더구나 아니다.)


 교육 개혁의 과제나 향방을 놓고 다들 머리를 싸안곤 하지만 중․고등학생들이 제 머리카락 길이나 양말, 장신구, 신발 하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현실이야말로 개혁되어 마땅한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교육 이민을 결행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필경, 아이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인권과 자유와 민주주의가 학교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부터 부정되기 십상인 조국이 싫었음에 틀림없다. 두발 문제 하나조차 학생 인권 차원에서의 사회적 합의를 못해내고 있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일제 식민지 교육의 잔재와 군사문화의 망령이 아직도 학교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부끄러운 현실은 일단 접어두자. 문제는 가까운 곳에 있다. 많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천부 인권’을 무시하거나 망각하기를 좋아한다. ‘천부인권’ 보다 더 시급한 게 있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라는 절체 절명의 당면과제! 그리고 이것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그러니까 하늘이 부여한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조차 사소하고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과연, 학벌 사회의 폐해와 안과 밖을 이루는 대학 입시 경쟁만큼 우리 사회에 힘이 센 건 달리 없다. 그런 만큼 인권이나 두발 자유에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비주류, 소외된 소수자의 외로운 외침으로 끝이 나기 마련일 터. 이래저래 나는 궁지에 몰린 셈이 되었다. 내가 말했다. 


 “주희야, 어쩌면 좋겠냐? 당장 이민을 갈 수도 없고.”

 “뭐, 할 수 있나? 3년 동안 죽어 사는 거지.” 

 

때로 현실 감각은 아이들이 더 탁월하다. 나는 영화 ‘양철북’을 떠올렸다. 어른들의 위선에 충격을 받은 오스카는 세 살 나이에서 성장을 멈출 결심을 하고 양철북과 고함 소리로 세상에 대항한다. 특히 오스카의 외침 소리가 학교와 교회의 창문 따위를 산산이 부숴 버리는 기이한 장면들은 섬뜩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래. 만약, 만약에, 어느 날 수많은 ‘주희들’이 오스카처럼 양철북을 두드리며 외치기 시작한다면? 그리하여 그 서슬에, 자유가 바로 아이들의 존재 근거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숨 막히는 어른들의 머리카락이, 태풍에 숲이 송두리째 뽑혀나가듯 우수수 빠져 날아가 버린다면…?  년 초부터 답답한 마음에 한번 떠올려본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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