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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Dec 26. 2020

10일간의 사랑

​ ​ㅡ 짧은 인연, 긴 여운 ㅡ


휴일 늦은 아침에 벨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나간 아내가 방문객을 현관에 세워둔 채로 한참 대화가 이어지는가 싶더니 종이 상자와 둥그런 플라스틱 통 등을 거실로 옮겨 온다. 소파에 앉아 TV를 시청하고 있던 나는 아내의 손에 들려있는 물건들을 넌지시 바라보다가 상자 안에 들어있는 하얀 고양이를 발견하고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며 눈으로 물음을 던졌다.
길냥이들을 거두어 기르는 곳이 있는데 아들이 좋아해서 데려왔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애완동물은 물론이고 베란다에 놓인 화분에 물 한번 주기는커녕 불편하다고 치우라고 압력을 가하던 식구들­인지라 상상하지 못한 일이 예고편도 없이 벌어진 것이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동물들과 많이 소원해졌지만, 어린 시절 농촌에서 생활할 때에는 개를 비롯하여 소나 돼지, 닭, 오리, 토끼 등이 마당과 집 둘레의 산자락이 동물 농장이 되어 왁자지껄할 정도로 한데 어울려 살았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십여 마리 토끼들에게 먹일 풀을 베어오거나 들풀이 무성한 곳으로 소를 몰고 나가는 게 나의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풀을 뜯어먹는 소걸음에 맞추어 고삐를 잡고 따라다니며 책을 읽는 것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요즘 애완견이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지만, 우리 집은 어항에 열대어를 기른다거나 화초를 가꾸는 것조차 모녀가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보니 종국에는 모두 정리한 상태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고양이라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더구나 기본적으로 동물들을 좋아하지만 고양이만큼은 친해져 본 적이 없고 묘한 거부감마저 지니고 있던 나에게 허락도 없이 입양이라니. 요상스런 눈동자도 불편하고 날카로운 발톱, 고고한 성격에 개들처럼 살랑거리며 다가오지 않아 그러한 생각이 드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고양이와 친해져 보려고 시도조차 해본 적이 없다.

만사 귀찮다는 표정으로 부르는 소리에 끔쩍도 안함


​ ​종이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열자마자 겁먹은 고양이는 잽싸게 소파 밑으로 줄행랑을 치듯이 숨어 들어갔다. 생후 6개월 정도 되었다는데 고개를 숙여 가만히 들여다보니 잔뜩 긴장한 상태로 불안한 표정이 역력하다. 우리 집으로 오기 전부터 사용했던 골판지로 만든 흰냥이 집은 천으로 된 매트를 넣어 거실 한편에 놓아주고 모래가 들어있는 배변 통은 베란다에 자리를 잡았다. 흰냥이와 함께 가지고 온 타원형 골판지 상자 내부 바­닥과 벽에는 발톱으로 긁힌 자국이 많았다. 그 안에는 막대 끝에 끈으로 매달아 놓은 생쥐 모양의 노리개, 어린아이 주먹 크기 고무공, 사료와 간식거리, 발톱깎이, 빗 따위가 들어있었다. 상자 안의 물건들을 모두 꺼내놓고 상자만 흰냥이집 옆에 놓아주었다. 발톱으로 북북 긁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소파 등 가구를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어째 말 한마디도 안 하고 성가신 녀석을 데려왔어?’ 하는 말이 목젖을 간지럽히는 걸 꿀꺽 삼키며 아들과 아내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첫날은 아들이 자기 방으로 흰냥이를 데리고 들어가 그런가 보다 했다.

저 사람들과 친해져도 될까


이튿날 퇴근하여 흰냥이가 어디에 있나 궁금하여 슬며시 소파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표정으로 소파 가장 안쪽에서 경계하는 모습이다. 처음 들어온 날은 먹이 가까이에 다가가지도 않고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 지켜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생명이 나의 공간에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지라 이따금 쳐다보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으로 무언의 침묵을 지킬 따름이었다. 3일쯤 지난 후 들여다보니 얼마간 안정을 찾아가는 눈치였다. 낯이 조금 익었다고 생각하는지 벌러덩 드러누워서 눈을 맞춰주기는 하지만 여전히 소파 밖으로 나올 생각까지는 없는 듯 안전거리를 유지하였다. 부득이 먹이를 먹을 때나 배변 활­동을 위해서 안보는 척하면서 슬금슬금 나와서 볼일이 끝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소파 아래로 달음박질을 한다.


나쁜 사람들은 아닌 듯하여 경계를 풀기 시작


3~4일쯤 지나자 이전보다는 조금 더 경계를 풀고 막대 끝에 있는 노리개를 흔들면 눈동자가 뚜렷이 커지며 반응하면서 소심한 소리로 "냥~" 하고 조심조심 다가왔다. 아들는 교감이 더 이루어진 덕분인지 발톱을 깎아주고 빗질을 해주니 그르릉거리며 퍼링을 연발하였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아들과의 관계에서 이고 나와 아내가 부름에는 좀처럼 간극을 줄이지 않고 주변을 배회하는 모습을 보이는 정도였다.
한편 아내는 흰냥이의 털로 인해 생긴 불편을 호소하기 시작하였다. 알레르기 때문에 집안에서 키우기 어려울 것 같으니 시골 할머니 집에 데려다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슬슬 드는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대기 환경에 매우 민감한 체질인지라 날이 흐린 날은 공기 중에 떠있는 화학물질의 냄새로 힘들어하고 심한 날에는 맥을 못 추고 드러눕기까지 한다. 처음 냥이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나는 그런 점을 염려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것이 현실화되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냥이는 안전거리를 줄이며 가까워지더니 5일쯤 지나자 내게 이마를 내주었다. 가볍게 머리나 등을 쓰다듬어 주면 골골이송을 부르며 너무 좋아하고 엉덩이와 꼬리를 잔뜩 치켜세웠다. 쓰다듬기를 멈추었더니 더 해달라는 듯 눈을 마주치더니 소리를 높여 야옹거리며 앉아있는 내 곁에 착 달라붙어 비비댔다. 어느새 나는 흰냥이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퇴근하여 귀가하면 흰냥이와 어울려 공놀이를 하거나 막대에 매달린 생쥐놀이를 즐겼다. 고무공을 툭 쳐서 냥이에게 보내면 앞발로 건드려 내게로 패스도 해주었다. 그러나 몇 번 하다가 싫증이 나면 멀뚱멀뚱 쳐다만 보다가 내가 다시 보내달라고 사인을 보내도 시선을 외면하고 드러누워 버린다. 얼척이 없다. 이런 고고한 고양이 같으니라고...


같이 놀아주세요


1주일 정도 지나자 알레르기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아내는 서둘러 지인 중에서 흰냥이를 데려가 키우고 싶다는 사람을 찾아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다른 집으로 보내게 되었지만 여간해서 자신의 마음을 잘 열어주지 않는 흰냥이를 며칠 사이에 다시 내보낼 생각을 하니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꼭 열흘이 지난날 저녁시간에 데리러 온다고 연락이 왔다. 처음에 가지고 온 먹이통, 장난감, 사료들을 종이 상자에 담고 흰냥이를 넣어갈 상자도 테이프로 붙이는 작업을 하는데 슬그머니 다가와서 자신의 물건들을 상자에 담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자꾸 냄새를 맡으며 기웃거렸다. 과연 자신이 이 집을 떠나가야 된다는 것을 느꼈을까? 마지막으로 흰냥이를 상자에 담아야 하는 데 소파 밑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 보아도 꿈쩍을 안 했다. 손을 뻗치면 이리저리 몸을 빼고 반대편으로 달아났다. 소파를 한쪽으로 치우고 간신히 붙잡아 상자에 넣고 뚜껑을 닫으며 마지막으로 냥이를 바라보자니 안쓰럽고 마음이 너무 짠해서 말문이 막혔다. 냥이를 데려가는 사람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란 걸 알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동안 그 집 식구들과 익숙해지기까지 두려움과 긴장된 시간을 또 보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동안 바라보며 말은 잘 통하지 않았어도 좋고 싫음은 알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고양이의 세계를 다소나마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된 흰냥이.  아무쪼록 앞으로는 더이상 이별을 겪지 않고 행복한 묘생(猫生)을 보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잠시 이불 위로 올라와 자리잡은 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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