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얼마간 흐른 뒤에 돌이켜 본다면 2019년 7월 4일은 한국 소재부품산업 분야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하여 구조개선이 시작되는 날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7·4 소재ᆞ부품ᆞ장비산업 도약의 날> 쯤으로 명명할 수 있을까?
7월 4일은 또 다른 의미가 내포된 날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1972년 7월 4일은 남·북한이 분단 이후 최초로 <7·4 남북 공동성명>을 발표한 날이기 때문이다. 이 무렵은 냉전 체제 하에서 미국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毛澤東) 주석, 저우언라이(周恩來) 수상을 만나 냉전시대를 종식하고 화해의 길로 들어서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시점이었고,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한반도에도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기본 원칙을 세운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고 잊혀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2019년 7월 4일은 한국의 제조업에 큰 화두가 던져진 날이고,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제조기반인 소재, 부품, 장비산업의 현주소를 들여다보는 날이 되었다. 한국은 일본의 돌발적인 수출 규제 조치에 경악과 우려를 나타내며, 즉각 대응 방안에 몰두하게 되었기에 이날의 충격은 일반인에게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소재부품산업의 토대는 철강과 화학에서 시작된다. 광양제철소와 여수화학단지가 이러한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생산기지이다.
일본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법원이 1930년대 말부터 징용으로 일했던 조선인에 대한 임금 지불 관련 판결에 불복한 일본 기업과 그 일본 기업을 지원하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서 비롯된 무역 보복 조치로갈등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기술 보유 분야인 반도체·디스 플레이 등의 생산에 필수적인 품목 중 고순도 불화수소 (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규제를 통하여 한국 정부를 최대로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려 했고, 또 8월 2일에는 한국을 일본의 백색 국가 명단(화이트리스트ㆍ안보 우호국)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의결하였다.
일본이 1단계 수출규제로 내건 3가지 화학제품은 한국 내 언론매체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한 바와 같이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들이다. 이 소재들을 첫 번째 품목으로 제시한 이유는 한국 대법원 징용 판결에 대하여 빠른 시일 내에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는 데, 쉬운 압박수단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2단계 카드로 일본이 한국에 수출하는 1,100개의 전략 수출품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음에도 한국 정부는 이에 간단히 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강력히 대응하는 수단을 강구한다.
아무튼 일본의 수출규제 3개 품목 중 하나가 불화수소인데, 불화수소는 형석이라는 광물에 황산을 넣어 제조하거나 인산 제조과정의 부산물 등으로 얻어진다.
불화수소(Hydro fluoride) : 불화수소의 고순도를 요하는 제품은 국방, 의약, 식품, 생필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 제고에 필수 소재이고, 이 분야에서 일본은 우수한 초정밀 기술력과 세계시장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의 특성상 불량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고순도(>99.999%)의 플루오린화 수소 가스가 필요하다. 참고 : 네이버 지식백과 등
석유화학제품은 자동차, 건축, 의류, 식품, 가전 등 모든 산업분야에 적용되며 없어서는 안될 필수 소재이다.
2019년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었던 일본의 수출규제 관련 보도를 보면서 나는 2012년 경제자유구역 6개 지구(18개 단지) 중 광양지구 광양항 서측 배후부지에 투자 유치를 추진하던 영국 'M'사의 일이 떠올랐다.
해당 지역은 광양항의 관리주체인 여수광양항만공사가 수출·입 물동량이 많은 외국기업이 입주할 경우 유리한 항만 배후부지에 글로벌 화학업체인 'M'사의 불산공장 설립을 적극 추진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결국 투자가 무산되었는데, 최근 한일 간 수출규제 갈등으로 부각된 이 품목에 대하여 한국 내 투자가 성사되지 못하고 다른 나라(일본)로 투자처를 옮겨간 일이기억난 것이다.
당시 'M'사를 유치하려던 목적은 불산의 원료인 형석을 멕시코에서 들여와 가공함으로써 부가가치의 창출과 가공 제품을 내수 및 해외에 수출함으로써 광양항의 수출·입 물동량 확대를 기여함에 있었다. 'M'사가 3,000억 원 투자하여 13만㎡ 부지에 불산공장을 계획대로 2014년 본격적으로 가동할 경우, 연간 13만 5,000t의 불산을 생산하여 2차 전지, 전기자동차 등 제조 과정에 사용될 불산을 생산할 예정이었는데, 생산량의 80%를 수출함으로써 항만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항만공사는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킨다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었다.
화학산업은 대표적인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장치산업으로 기초원료를 가공하려면 복잡한 혼합, 정제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시민단체 등은 환경오염, 맹독성 화학물질을 생산함으로써 불안한 위험 요소가 상존하는 산업, 기업의 입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였다. 특히 그해 9월 구미의 한 공장에서 불산 유출이라는 악재가 터졌는데, 불행하게도 인명피해로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광양만권주민, 환경단체 등이 발 벗고 나서서 더욱 반대를 하였던 것이다. 당시 구미공장의 사고는 인재였지만, 'M'사는 주민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한국 내 투자를 포기하고, 일본으로 투자처로 변경하였다. 참고로 'M'사는 전 세계 36개국에 130여 개 공장을 가동하며 2만 2,000명 이상을 고용하는 글로벌 화학업체이다.
그런데 염산(HCℓ)과 황산(H2SO4), 질산(HNO3) 등은 산업용으로 널리 사용되는데 비하여 불산(HF)은 특수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소재들은 유독성 물질들로 안전 관리를 통하여 인류에 편의를 제공하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여수화학단지에는 200여 개 석유화학업체 및 연관 업체들이 입주하여 원유를 정제하며 중간과정에서 생성되는 소재에 새로운 물질을 배합하거나 가공하여 다양한 형태의 화학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의 60~70% 정도는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 데, 이러한 생산활동 가운데 위험요소가 존재하며 끊임없는 안전관리가 요구된다.
새로운 기능의 금속 개발에 희유금속의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세상에는 기존 산업기술을 활용한 생산 활동은 물론, 일반인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꾸준히 새로운 물질들이 개발되고 실생활에서 밀접하게 적용되고 있는 데, 그렇다면 이러한 신물질의 개발과 제조활동이 어디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해답은 물류비 절감을 위하여 원료를 조달하는 지역이거나 소비자가 많은 공간이 될 것이다. 앞서 불산공장을 하나의 사례로 들었지만, 사람들은 무해하면서 고용창출이 높은 미래 성장산업을 선호하고, 대신 위험 요소, 환경오염 요인이 많거나 이미지가 안 좋은 기업은 배척한다. 이러한 님비현상은 나라와 지역을 막론하고 존재한다.
수많은 환경 보호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산업적 필요성과 안전에 대한 요구가 병존하는 가운데, 인류는 보다 편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자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욕구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발과 보호의 상반된 개념을 충족시키는 방법도 영원한 숙제로 남는다.
아무튼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복병을 만나서 이미 잊고 지내던 5년 전의 기억을 새삼스럽게 소환해냈다. 정리하자면, 광양항 배후부지에 입주를 희망하던 'M'사가 지역주민들의 입주 반대에 부딪쳐 투자를 포기했고, 그로 인해 200명 정도의 일자리는물 건너갔다. 이 결과가 이해 관계자들 모두에게 최선의선택이었는지에 대하여 문득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