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악의 현상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를 보고

by 송동섭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은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주의 감독 중 한 명이다. 그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해피 아워>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4명의 주인공이 모두 최우수여우상을 수상하면서다. 이 영화는 무려 상영 시간이 317분으로 5시간이 넘는다. 이후 2018년에 <아사코>에 이어 2021년 <우연과 상상>으로 베를린 은곰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에 <드라이브 마이 카>로 칸영화제 각본상과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2024년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작품이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아, 세계 3대 영화제와 아카데미 수상까지 일명 영화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그가 작가주의 영화로 주목받는 것은 발표된 영화 속에 담긴 예술성과 각각의 영화들이 서로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에 다루고자 하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그의 이전의 작품과 확연하게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간단하게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해피 아워>의 상영시간이 5시간이 넘는 초장편이고, <드라이브 마이 카> 역시 179분으로 3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의 영화다. 감독은 초기 자신의 작품에서도 초장편을 연출한 바 있어 영화에 있어서는 긴호흡으로 이야기를 이끄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하지만 이번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전의 작품에 비하면 106분으로 짧다. 상영시간이 짧은 것은 아마도 감독은 이번 영화는 서사 보다는 서정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의 영화가 문학에 비하면 장편소설과 같다면 이번의 영화는 시적 분위기를 녹여낸 것 처럼 보인다. 일명 한강의 소설이 시적 산문이듯이 하마구치 감독의 이번 영화는 시적 영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시적 영상이라고 할 만큼 영화가 보여 주고 있는 서사는 단순하다. 한 마을이 있는데 자연과 더불어 사는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이다. 마을 사람들은 자연이 주는 환경에 맞춰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도시에 연예기획사에서 글램핑장을 지으려고 마을 사람들과 공청회를 하게 되고 이에 마을 주민들은 그들의 기획에 환경 훼손을 우려하며 반대한다. 이에 업체는 글램핑장 개장 시기를 미룰 수 없다며 다시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려 한다. 그때 마을의 여자 아이(하나)가 실종 되고 마을 전체가 여아를 찾아 나서게 되고, 아이 아빠(타쿠미)와 글램핑 기획 업체 직원(타카하시)이 함께 동행한다. 마을 인근 숲을 지나 여아를 발견하게 되는데 아이 곁에는 총에 맞은 새끼 사슴과 어미 사슴이 있다. 사슴은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어설프게 총에 맞는 경우와 새끼 사슴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미 사슴이 공격적이 된다는 대사를 이 사건 이전에 복선으로 깔고 있다. 영화에는 표현하고 있지 않지만 하나는 사슴의 공격으로 쓰러지고 이 영화의 가장 난해한 장면인 타쿠미가 업체 직원 타카하시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연출된다. 영화는 타쿠미가 하나를 안고 숲을 향해 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단순한 서사에 감독이 영화에 불어 넣은 것은 롱테이크를 통한 정적인 영상미다. 영화 초반에 마치 숲을 지면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화면이 길게 지속되는데, 이 장면에 하나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하나의 시선으로 숲속에서 하늘을 보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 역시 시간 차이_처음 장면이 낮이라면 마지막 장면은 저녁 무렵_만 있고 타쿠미가 하나를 안고 가는 장면에 이어 길게 영화 첫 장면과 같이 지면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이 길게 묘사된다. 마치 타쿠미가 하나를 안고 갈 때 하나가 바라보는 숲속의 하늘 장면으로 예상되는 장면이다. 여기에 타쿠미는 마을에서 심부름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이웃 가게에서 소바를 만들 때 필요한 물을 떠 주기도 하는데 물을 떠서 차에 싣는 장면이라든지, 타쿠미가 장작을 패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촬영하여 표현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이 자연과 동화된 삶을 보여 주면서 자연의 또 다른 일부분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 시적 영상이라고 한 것은 영상미와 더불어 이야기 속에 숨겨져 있는 상징성 때문이다. 영화에서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건망증과 총소리이다. 이 영화에서 건망증과 총소리는 동일하게 두 번 재현된다. 두 번 재현되는 건망증과 총소리는 처음은 복선으로 두 번째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주인공 타쿠미는 자신의 딸 하나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에 방문해야 하는데 그는 그 시간을 놓쳐 하나가 숲길로 집으로 오게 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설정은 단순한 기억의 망각을 표현하기 보다 타쿠미가 기억하는 시간과 학교 종료 시간의 불일치에 대한 표현으로 보여진다. 타쿠미는 앞에서도 자연의 동화된 삶을 보여 주는 인물로 자연을 대신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학교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라고 볼 때, 하교 시간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인간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타쿠미의 건망증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의한 시간의 불일치를 보여 주는 상징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초반에 보여준 건망증은 다행히 숲에서 하나를 발견하고 함께 무사히 숲을 지나게 되지만 두 번째 발현된 건망증으로 하나의 치명적인 위해 사건의 원인이 된다. 이런 타쿠미의 건망증과 유사한 상징적인 표현이 두 번의 총소리이다. 총소리는 인근 마을에서 사슴을 사냥을 위한 발포 소리이다. 여기서 총소리의 상징적인 부분을 해석해 보면 동물을 사냥하는 총소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자연을 향한 공격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총소리 역시 첫 번째는 복선이고 두 번째는 사건으로 이어지는데, 타쿠미가 하나의 하교 시간을 놓치게 되어 행방불명된 하나를 찾게 된 곳이 새끼 사슴이 총에 맞아 어미 사슴과 같이 있는 장면이다. 두 번째 총소리는 하나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되는 사건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타쿠미의 건망증이 하나를 위험에 빠트린 것과 같이 총소리 역시 하나를 위험에 빠트리는 원인으로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타쿠미는 자연에 동화된 인물로 묘사하면서 총소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자연을 통제하려는 도구로 이 두 개가 하나를 위험에 빠지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제목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하나를 위험에 빠트린 것은 자연(사슴)인지? 자연과 일치한 타쿠미인지? 자연을 공격하는 총(인간)인지?에 대한 ‘악’의 실체적인 존재가 없음에 대한 작가의 물음에 대한 고민 끝에 제시한 답안과 같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인과적 설정이 아닌 복합적 의미의 교차 설정은 이 영화의 가장 난해한 마지막 장면에서도 동일하게 연출된다. 영화 마지막, 하나가 총상을 입은 새끼 사슴과 어미 사슴 곁에 있는 것을 본 타쿠미가 돌연 타카하시의 목을 조르는 장면은 관객에게 큰 충격과 당혹감을 안겨준다. 이 장면에 대해 해석해 보자면, 하나가 사슴으로부터 공격받는 장면이 생략된 것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어미 사슴의 본능적 공격성을 타쿠미에게 투영해 타쿠미가 타카하시에게 공격하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가 어미 사슴으로부터 공격이 예상되는 순간 타쿠미를 ‘어미 사슴’으로, 자연을 훼손하려는 타카하시를 ‘인간 혹은 인간의 기획’에 비유하여 자연의 생태적 반응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마치 타쿠미가 타카하시의 목을 조르는 행위를 자연(위협을 받은 사슴)이 인간에게 가하는 자연 현상으로 동물적 보호본능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자연의 현상 또는 어떤 위해에 대한 자연의 반응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영화에서 타쿠미와 하나는 자연과 일치된 인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실제 자연(사슴)으로부터 위해를 마주하게 된다. 자연이 인간에게 가해지는 현상들에 대해 ‘악’이라고 명명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자연과 일치된 인물인 하나가 사슴(자연)에게 공격을 받은 것처럼 자연에 동화된 인물이지만 본질적인 인간인 타쿠미가 타카하시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사슴이 하나를 공격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여기에 자연의 세계에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명제가 감독이 고민한 물음에 대한 답처럼 보인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영화 제목은 이전에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작품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도발적인 영화 제목이다. 감독이 이번 영화를 기획한 것이 숲과 관련된 영상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시골 마을과 개발 업체간의 주민 설명회를 접하고 나서라고 했다. 영화의 제목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아닌 자신이 알게 된 이야기를 통해 명징한 문장을 뽑아낸 것이다. 하물며 거창하기도 하고 무겁디 무거운 ‘악’과 ‘존재’라는 것을 거론하면서 말이다. 단언인 듯 선언인 듯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닫힌 문장에 감독의 영화는 일목요연하게 닫힌 내용을 설명하거나 친절한 안내서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꼭 다물고 싶고 명료해져야 할 것 같은 제목에 감독이 풀어낸 영상은 그 반대 방향을 향해 한없이 넓고 묘연하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슬쩍 빗겨난 질문으로 ‘악은 없는가?’라고 했을 때 영화는 그에 답으로 ‘존재’라고 했지 ‘없다’고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존재는 고정된 실체와 실존이라면 있다 또는 없다는 현상이라고 본다. 앞에서도 ‘악’의 존재(실체)에 대해 복합적이면서 모호하게 상징화한 것을 보면 악이 고정된 실체의 존재라기 보다 대상과 대상 간의 충돌에 의해 발생하는 불가분의 현상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영화 제목에 부제를 달아 본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은 있다’라고 쓰고 싶다. 불완전한 본능(사슴)으로 불완전한 능력(건망증)으로 불완전한 지혜(기획)가 불완전한 세계 속에 있는 우리에게 ‘악은 현상’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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