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매그놀리아>(1999)을 보고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충격적으로 기억되는 장면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하 PTA)감독의 <매그놀리아>에서 하늘에서 내리는 ‘개구리 비’ 장면이다. 영화 상영 시간이 무려 188분으로 3시간이 넘는 긴 상영 시간 중 영화가 끝나갈 무렵 하늘에서 개구리 비가 쏟아지는 장면을 마주하게 되는데, 차량 앞유리창에 성인 손보다 큰 개구리가 ‘쿵’하고 부딪히는 장면(영화에서 갑작스럽게 ‘쿵’하는 효과음으로 시각보다 청각으로 놀람을 더한다)은 관객에게 놀람과 기괴함에 잊을 수 없는 영상으로 기억되게 한다. 하늘에서 웬 개구리가 떨어지느냐에 대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비처럼 쏟아지는 개구리는 가히 공격적이며 공포스럽기도 하고 재앙 그 자체다. 이런 개구리 비 장면을 예고하듯 암시해둔 숫자가 있는데 ‘82’다. 영화 중간에 날씨에 대한 표현에서 비 올 확률을 82%라고 한다든지, 옥상 벽에 82라는 숫자가 써있다든지, 나래이션으로 82번이라는 대사가 있다든지 등으로 82라는 숫자를 곳곳에 암시하고 있다, 이 숫자가 개구리와 관련되어 있는 것은 성경에서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이 출애굽기 8장 2절이다. 성경에 기록된 개구리 재앙은 애굽(이집트)에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한 신이 내린 애굽을 향한 재앙 중 하나다. 그래서 개구리 비는 공격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는 당시의 개구리 재앙은 단지 재앙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이 포로로 있는 애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시작이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감독 PTA는 출애굽 당시의 개구리 재앙을 재앙으로 본 것보다는 구원에 방점을 찍은 듯하다.
영화 <매그놀리아>의 이야기 구조는 다중 플롯으로 여러 이야기가 파편화 되어 구성된 영화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 구조를 또 다른 표현으로 일명 모자이크 내러티브라고도 한다. 하나의 영화 안에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구성하고 있어 주연급으로 출연하는 배우가 9명이나 되어 주연과 조연을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영화 초반에는 각각의 인물들에게는 서로 다른 이야기가 표현되는 것 같으면서도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각각의 다른 이야기들이 하나의 의미로 귀결되는 느낌을 준다. 영화 <매그놀리아>에 대한 일반적으로 후회, 상처, 화해라는 키워드로 정리하곤 한다. 우선 후회는 아버지가 자녀에 대한 과거의 잘못에 대한 후회다. 여기에서 잘못은 윤리적이면서 법적이기도 하다. 한 아버지는 과거에 병든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떠나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나서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지난 자신의 잘못_아내와 아들을 버린 것_을 평생의 후회라 했다. 또 다른 아버지는 과거에 딸에게 성폭력을 가한 것에 대한 후회다. 이 아버지 역시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딸을 찾아가지만 딸의 강경한 거부로 딸과의 어떤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후회에 이어 감독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상처인데, 아버지에 의한 윤리적이든 법적이든 가해를 받은 아들과 딸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버림받은 아들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강한 남성성(아버지의 버림을 받은 아들이 오히려 강한 남성성을 드러내는 아이러니함을 보여 줌)을 드러내며 남성을 대상으로 성공과 정복(오로지 여성을 향한 노골적인 성적표현을 사용하는)을 강연하는 세미나 강사다. 이와는 다르게 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마약 중독과 성적 문란한 생활을 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같으면서 다른 두 개의 설정을 다른 사건과 같이 교차하여 편집하여 풀어가다가 하나로 귀결하는데, 두 아버지의 과거 잘못과 현재의 후회와 아들과 딸이 겪은 과거의 상처와 그로 인한 현재의 일탈에 대해 감독은 화해라는 결과로 끌어내고 있다, 다만 과거의 잘못과 후회, 그리고 상처까지 모두 일방적인 것과 같이 화해 역시 일방적이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앞에서 그를 용서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오열하는 아들이라는 점이 그렇고 성폭행당해 마약 중독자로 살아가는 딸과의 화해는 아버지가 아닌 딸의 일탈의 원인을 몰랐던 어머니이다. 감독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절묘한 화해를 표현하기보다 그 화해의 순간조차 어긋나 있는 삶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한 듯하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영화는 다수의 인물이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여러 이야기가 난잡하게 흩어져 있다기보다 같으면서도 다르게 설정이 되어 이야기의 다양성을 하나의 의미로 흐트러짐 없이 풀어가고 있다. 아버지의 과거 잘못이 같으면서도 그에 대한 상처를 받은 대상을 아들과 딸로 구분하고 상처의 내용과 결과를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게다가 두 명의 아버지는 어린이가 출연하는 퀴즈쇼의 제작자와 진행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모두 자기 자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준 사람이라는 점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퀴즈쇼의 제목이 ‘What do kids know? (애들이 뭘 아나?)로 아이들의 천재성을 부각하여 상금을 주는 프로그램이나 그 퀴즈쇼의 이면에는 퀴즈쇼를 통한 성인들의 욕망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TV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서 오로지 아이들은 도구로만 사용되는 장면(소변이 마려운 아이에게 쇼가 진행되니 참으라는 것)이라든지, 출연하는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들 통해 상금에만 관심이 있는 것을 표현하는 점에서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모순되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 퀴즈쇼와 관련된 다양한 표현으로 30년 전에 퀴즈쇼에서 유명해진 아이가 성인이 된 현재에는 사회 부적응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자신의 사회부적응의 원인으로 당시 퀴즈쇼에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부모가 속여 뺏었고 부모에 의해서 자기 삶이 좌지우지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현재 퀴즈쇼에서 천재성을 보여주고 있는 아이는 퀴즈쇼 도중에 생리적 현상을 참지 못하고 바지에 오줌을 싸는 실수를 하지만 어쩌면 그 실수가 자신의 생리적 현상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의 발동으로 퀴즈쇼 도중에 자리를 이탈하여 자기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같으면서도 다른 표현들이 퀴즈쇼와 관련된 인물들에게도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매그놀리아>는 3개의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모두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우연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 3번째 에피소드의 경우가 개구리 비와 버금가는 충격적인 우연인데, 한 소년이 9층 높이의 빌딩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가 죽고자 한 것은 부모의 지나친 부부싸움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하루가 멀다 싸우면서 끝내는 총을 겨누고 싸우게 되는데 매번 그 총은 총알이 장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년은 그의 부모의 부부싸움을 끝내고자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 총에 탄알을 장전해 둔다. 소년이 빌딩에서 자살을 시도할 때 마침 6층에서 부모의 다툼은 진행되고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이 그의 어머니는 총을 아버지에게 겨누고 발사 시늉하였지만, 그날은 장전된 총알이 발사되어 9층에서 떨어지고 있던 소년은 그의 어머니가 발사한 총알이 소년의 배에 적중하여 사망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소년이 자살을 시도하여 떨어지던 때 빌딩 청소부들이 안전그물을 쳐 놓았기 때문에 소년은 투신했지만, 그물에 걸려서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감독은 삶에 있어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모든 일상의 순간이 우리에게 늘 있다는 것을 영화 초반의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밑자락을 깔고 있다. 영화는 우연처럼 보이는 필연을 시작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펼쳐 보이듯이 나열하고 각각의 에피소드를 잇고 연결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모은다. 모든 삶의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고, 알 수 없음에 대한 일종의 고백과 같은 영화다.
다시 개구리 비에 대해 말하자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누구에게는 재앙이고 누구에게는 구원의 징조인 것이다. 설명할 수 없고 일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 우리의 삶 속에는 일어난다. 누구에게는 일어나고 누구에게는 일어나지 않는 일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한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각각의 우주를 담아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 삶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아마도 단 한 명의 삶이라도 형언할 수 없는 색으로 표현되지 않을까? 그 삶이 표현한 색의 무게는 우주의 무게와 다르지 않으며 가볍거나 단순하지 않으며 판단되거나 정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나와 다른 또 다른 우주를 만나는 것이면서 내 우주를 소개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매그놀리아는 우리말로 하면 목련으로 그 꽃말이 고귀함이라고 하는데, 감독은 <매그놀리아>라는 영화를 통해 ’당신은 고귀한 존재야‘라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위로를 건네고 있다. 과거의 잘못을 후회하는 존재든, 상처 받아 일그러진 존재든, 용서해야만 하고 화해해야 하는 존재든, 무능하든 유능하든 우리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