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를 이어 생명으로

조해진 작가의 『빛과 멜로디』를 읽고

by 송동섭

조해진 작가는 21년도에 자신의 창작 지향점에 대한 물음에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과 알아가고자 하는 애씀이 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이라 했다.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한다고 믿어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 인터뷰 이후 24년도에 발표한 『빛과 멜로디』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반복하여 강조했다. 이전의 인터뷰가 타인과의 소통을 위한 수고가 빛의 순간이고 삶의 이유이면서 원동력이라고 말한 것이라면, 『빛과 멜로디』에서는 좀 더 근원적인 상태인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사람을 살리는 일-을 말하고 있다. 『빛과 멜로디』에서 강조한 사람을 살리는 일 역시 ‘빛’으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전의 인터뷰에서 말한 타인과의 소통과 소통을 위한 수고를 빛이라고 한 것과 사람을 살리는 일을 빛이라 한 것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빛의 심도와 범위가 깊어지고 넓어진 것을 의미한다.


작가는 『빛과 멜로디』에서 자신이 골몰한 ‘빛’의 의미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작가는 빛에 대한 생각을 타인과의 소통 혹은 소통을 위한 애씀이라 했다. 작품『빛과 멜로디』에서도 여러 관계 중에서 타인과의 소통으로 부부 사이인 승준과 민영과의 소통이 주목된다. 돌이 안된 딸 지유를 돌보면서 부부간 생각의 차이는 옳고 그름을 가름할 수 없는 소통의 수고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점이 작가가 이전에 갖고있는 빛에 대한 의미로서의 소통에 관한 표현이라고 한다면 『빛과 멜로디』에서 빛의 의미를 생명으로 확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빛과 멜로디』에서 반복해서 표현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은 표현 그대로 생명과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소설에서 생명의 기초적인 의미로 생물학적인 사건으로의 임신과 출산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기자인 승준의 인터뷰이 우크라이나인 나스챠가 임신 중인 것과 나스챠의 남편 약사 료사가 나스챠와 함께 젊은 부부의 출산을 어쩔 수 없이 도와주게 되는 장면은 작가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 생물학적인 사건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외에 분쟁 지역을 피해 레스보스섬에서 난민으로 살고 있는 살마에게 삶의 의미를 갖게 하는 것과 소설에서는 사건으로 묘사되지 않았지만, 소설 끝에서 총성이 울리는 도시 한 가운데 병원에서 절망하는 이와 그들의 상처를 봉합하고 소독하는 손길-사람을 살리는 일-을 작가는 빛이라 말하고 있다.


『빛과 멜로디』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에 해당하는 소재는 스노볼과 카메라다. 소설 속 권은은 12살이 되었을 때 이유를 알 수 없이 집을 떠난 엄마에게 스노볼을 선물로 받는다. 열악한 환경에 학교에 출석하지 않던 권은에게 삶을 지탱해 준 것은 스노볼이다. 학교에 가지 않고 온종일 태엽을 감고 반복해서 주시하며 들었던 것이 스노볼 속의 점등된 세상과 멜로디다. 권은의 생명을 유지해준 ‘빛과 멜로디’의 상징이 스노볼인 것이다. 이후 권은은 같은 반 반장 승준에게 필름 카메라를 받게 되고 카메라를 촬영하면서 흥미를 갖게 되고 학교에도 출석하게 된다. 추후 권은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성장하는데 승준에게 받은 카메라가 그녀의 두 번째 삶의 의미를 갖게 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 사용된 스노볼과 카메라는 모두 ‘빛’과 관련되어 있다. 태엽을 감으면 빛이 나면서 눈꽃송이를 날리는 것이 스노볼이라면 필름 카메라는 순간 조리개를 열어 대상이 반사하는 빛을 필름에 투사하여 기록한 것으로, 둘 다 권은의 삶과 긴밀하게 연관된 도구이다. 스노볼이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소극적인 울타리 같은 도구라면 카메라는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생명을 살리려는 적극적인 의지의 도구로 활용된다.


카메라는 빛의 순간을 포착하는 도구다. 작가는 빛을 생명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 하였지만, 영원에 비해 빛의 순간을 찰나와 같다고 생각한 듯하다. 소설 끝부분에서 무너진 건물과 묘비 없는 무덤, 임시 병원에서 아픔의 고통에 절망하는 울음, 그 상처를 치료하는 손길,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의 악센 손가락을 빛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각각의 빛의 순간이며 찰나일 수 있으나 작가는 그 순간들이 음이 연속되어 흐르는 멜로디와 함께 모여든다고 말하고 있다. 빛은 순간이고 찰나일 수 있으나 그 빛이 멜로디로 이어지고 연장되며 확장될 것을 기원하는 의미이다. 승준이 권은에게 카메라를 건네준 것으로 권은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어 난민들의 고충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설정은 현실 속에서의 빛의 이음이 멜로디처럼 끊이지 않고 흐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멜로디에 관한 표현은 알마 마이어와 장 베른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벨기에 태생 알마는 유대인으로 브뤼셀 필하모닉에 바이올리니스트로 입단하지만 1940년, 벨기에에 유대인 등록령이 내려지면서 오케스트라에서 해고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같은 오케스트라 호른 연주자이면서 그녀의 연인 장 베른이 그녀를 사촌 형의 식료품점 지하 창고에 숨겨 은신처를 마련해주었다. 낮에도 어둑했던 창고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연인 장 베른이 부족하지만 먹을 것과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창고에 넣어 주었고 그녀는 소리 나지 않게 바이올린을 연주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알마는 그 악보를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준 빛’이라 했다. 악보는 멜로디이고 빛이고 생명이었음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에서 사람은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에 왜 맹목적으로 붙들려 있는지, 죽고 죽이는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미친 전쟁에서 승리자와 패배자, 가해국과 피해국과 어떻게 구분되는지, 사람은 대체 어디까지 비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인류의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은 질문의 거대함에 대해 사람을 살리는 것, 그것을 끊이지 않도록 잇고 모아야 한다는 작가의 답은 소박해 보일런지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아이의 움켜쥔 악센 손가락에서 살겠다고 하는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빛으로 각인한 것처럼 인류를 향한 가능과 소망을 열어 두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빛의 찰나를 멜로디처럼 이어 모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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