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의 수치 속에서 생존한 자들을 위한 위로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읽고

by 송동섭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에서 ‘대온실’은 1909년에 건립된 창경궁의 유리온실이다. 대온실이 건립된 당시에 일제는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분으로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이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명칭을 격하했고 입장료를 내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유원지가 되어 조선 황실의 권위를 약화시켰다. 이 점에서 대온실은 우리의 아프고 수치스러운 역사의 일부다. 1983년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동식물원을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했고 훼손되었던 일부 시설을 복원하면서 원래 명칭인 창경궁을 되찾았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도 ‘대온실’은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의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로 근대건축사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작가는 대온실을 ‘생존자’(p410)라 비유할 수 있다고 작가의 말에 남겼다.


흔히들 하는 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라는 말이 있다. 앞서 작가가 대온실을 두고 ‘생존자’라고 한 것은 강해서 살아남았다기보다 살아남아서 강하다는 의미인 듯하다. 온실의 주된 목적은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을 제어하는 기능이다. 식물은 환경에 민감한 생물이다. 기온과 습도, 일조량이 적절하지 않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어렵다. 동물과 같이 이동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물을 구분하는 데 있어 동물을 종속영양생물이라 하고 식물을 독립영양생물이라고 한다. 영양을 어디로부터 공급받느냐의 구분으로 동물은 영양분에 종속되어 있다면 식물은 독립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환경 면에서는 식물은 환경에 종속되어 있다면 동물은 식물에 비해 독립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작가가 대온실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것도 환경에 종속된 약자인 식물을 보호하기 위한 투명한 유리온실의 안온한 따사로움이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더불어 작가는 대온실 외면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지하의 은밀한 공간을 상상해서 표현하면서 개인의 감춰진 상처에 비유하기도 했다.


앞서도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대온실은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 영두는 대온실을 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여기에서 ‘수리’는 일차적으로 물리적인 시간 속에서 노후된 건물의 수리를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점으로의 수리 즉 관점 전환으로의 수리로 읽어 볼 수 있다. 일련의 대온실을 만들게 되는 과정이나 소설에서 이에 참여한 일본인 후쿠다 노보루에 대한 서사를 작가적 상상임에도 객관화하려는 것에서 그런 의도가 보인다.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조선 황실을 격하하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그 일부를 담당한 후쿠다 노보루가 당시 자신의 나라에서는 무명에 가까웠다(p400)고 표현하고 있는 것과 소설에서 낚시꾼 청년이라는 설화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언제나 흐른다는 이야기(p403)는 일본 제국의 역사의 시간 속에서 또 다른 개인의 시간이 후쿠다 노보루에게 흘렀다는 것으로 읽힌다. 작가는 역사적 시간 속에 공존했던 또 다른 개인의 시간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쓴 역사소설의 모양을 갖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 현재를 사는 개인적 일상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가 초점을 둔 ‘수리’의 무게 중심은 소설 속 인물들의 상처 받은 과거에 대한 치유로서의 수리다. 안문자 할머니와 화자 강영두는 모두 자신의 근원이 되는 지역에서 이식된 환경에 치명적으로 취약한 식물과 같은 존재이며 상처받은 과거를 안고 사는 인물이다. 작가는 대온실의 수리를 ‘개인적인 상처들이 그렇듯이 그렇게 한쪽을 묻어 버리면 허술한 수리를 한 것이 아닐까’(p210) 라고 하며 수리를 개인적인 상처의 치유로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역사는 기록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사실만을 다룬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의 시간 속에서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과거의 사실에 대해 작가는 역사적 시간을 통과한 상상의 인물을 통해 개인적 일상의 시간을 그 역사 속에 끼워 넣고 있다. 보잘것없으면 보잘것없는 대로 상처받아 찢겨진 모습이라면 그 상처 그대로 부끄러웠던 만큼 그대로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역사와 같이 작가는 화자를 통해 지난 과거의 상처에 대한 치유를 객관적인 기록을 위해 ‘보고서’라는 건조함을 가지고 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수치의 시간 속에서 과거의 방에 누군가를 들이는 것을 싫어(p192)하는 투명할 것 같지만 은밀하고 치명적인 상처를 갖고있는 영두에게 과거를 끄집어내는 용기(p340)를 내게 하는 담백한 보고서를 완성한 것이다.


대온실은 우리 역사의 수치의 일부다. 수난의 역사 속에서 남겨진 수치다. 수난은 지나갔지만, 수치는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다. 역사라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수치는 남아있듯이 개인 역시 수치 혹은 상처는 과거의 시간 속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역사도 그렇고 개인의 삶도 그렇고 지난 과거의 사실인 상처와 수치는 수정, 보완될 수 있는 변경 가능한 대상이 아니다. 무겁게 침전된 저 밑바닥의 상처를 드러내는 용기로 상처를 객관화 하는 것이야말로 치유를 위한 극복의 시작일 것이다. 이에 작가는 소설 말미에 화자 영두가 완성이라고 여겼던 보고서를 다시 이어 써야겠다(p404)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극복의 출발을 예고하고 있다. 화자 영두에게 과거 상처의 시공간이었던 낙원하숙을 한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서늘했던 곳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별처럼 느껴지는 집(p404)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과거 자신을 짓눌렀던 상처 대한 반전을 보여준다.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역사적으로 보면 수난의 시간 속에서 생존자처럼 남겨진 대온실을 어쩌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서늘했던 곳이지만 우주의 가장 중요한 별이 된 것처럼 개인의 삶 속에 수난의 수치인 과거의 시간과 장소가 현재를 살아가는 생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별이 될 수 있다는 위로를 여운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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