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고
김호연 작가는 『김호연의 작업실』에서 자기 소설의 지향점을 대중 상업 소설이라 했다. 문학 작가라는 측면에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의 정체성을 대중과 상업이라는 이름표를 스스로 부여한 것이 마치 커밍아웃하는 것과 같아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자기 작품의 지향점으로 대중적 혹은 상업적이라는 것이 그의 작품을 낮잡아 생각하지 않는 오히려 자기 정체에 소신 있는 작가로서의 자신감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자기 작품이 문학성 보다는 가독성을, 독자에게 소설이라는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게 하고 작품을 읽고 나서 독자에게 자신만의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글을 쓰는데 노력한다는 작가의 말이 그의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김호연 작가의『나의 돈키호테』 역시 그가 지향하는 바와 같이 대중 상업 소설이다.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 중심의 전개는 재밌고 빠르다. 가독성을 위해 작품을 쓴다는 작가의 말을 증명하듯 책장을 넘기는 속도감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사건 전개의 완결성 또한 작가가 추구하는 빠른 이야기 전개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작가의 경험을 엿볼 수 있는 묘사들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나의 돈키호테』는 화자 진솔이 중학교 시절인 15년 전 돈키호테비디오 가게를 운영하던 일명 ‘돈 아저씨’(장영수)를 유튜브를 통해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돈’아저씨인 것은 당시 자신을 돈키호테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책 제목에서도 ‘돈키호테’라고 되어 있는 만큼 작가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서 묘사된‘돈키호테’의 상징적 의미를 돈 아저씨에게 투영하여 담아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 ‘돈 아저씨’는 운동권 출신에 강남 학원가의 일타 강사였고 출판계와 영화계에 몸담았던 이력의 소유자로 이를 화자 진솔이 차근차근 추적한다. 그의 별명이 돈키호테인 것도 그의 다양한 이력에서 보인 이상주의적인 행동파였기 때문이다. 실현 가능하지 않은 이상을 실현해 보겠다고 도전하는 무모함 혹은 광기, 하지만 현실에 묶여 이상도 없고 꿈도 없어 행동하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삶의 존재 가치를 상실한 패배자가 되는 것이라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작가는『나의 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의 이상 실현을 위한 무모한 도전 외에서 삶의 원동력으로 ‘꿈’을 강조한다. 돈 아저씨를 찾는 과정 중에 스페인에서 돈 아저씨가 보내준 항공권이 5매인데, 15년 전 라만차 클럽 회원들과 같이 가려 했지만, 각자의 형편으로 함께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솔은 4명과 동행하게 되는데 돈 아저씨의 아들 한빈, 라만차 클럽 회원으로 부산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대준, 돈 아저씨와 이전에 함께 일했던 민 피디, 그리고 라만차 클럽 2기 상은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부분은 이들이 스페인으로 갈 때 각자의 목적이 발현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진솔 일행에게 돈키호테 같은 돈 아저씨를 찾아가는 과정이 각자에게 꿈이 발현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행동하는 도전의 일보를 내딛는 계기가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의 무모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여 돌진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두고 필연적 실패라고 해석한다. 거인을 상대하는 것도 무모한데, 풍차를 거인으로 오인하였으니 그의 도전은 필연적 실패가 분명하다. 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실패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실패의 미학처럼 『나의 돈키호테』에서도 돈 아저씨의 삶의 여정에서 실패를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과 화자 진솔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삶의 여정이 이미 실패를 경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포기하지 말 것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작가는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에서 돈키호테가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도전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면서 위로와 같은 용기로 읽은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공정에 관한 표현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흙수저. 금수저, 심지어 무수저라는 말이 있다. 개인의 삶의 출발 지점이 차별되고 차등 되어 있다는 표현이다.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평등에 대한 표현이 자칫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포기의 정당한 핑계(?)가 되어 있지는 않은가 싶다. 극복해야 할 사회적 과제가 주어진 조건이 열악한 탓에, 실패할 것 같아서라고 하며 도전 보다는 포기를 정당화하는 구호처럼 들린다. 작가가『나의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회적 여건을 열악하게 설정한 것은 실패할 확률이 높아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차고 넘치는 사회적 분위기에 눈높이를 맞춘 것으로 보인다. 독자에게 소설의 내용에 몰입하게 하는 작가의 의도이면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실패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일련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 개인에게 필요한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행동해야 할 것을 질문으로 던지고 있다.
김호연 작가의『나의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가 남긴 문학적 의미가 재생산된 소설이다. 아마도 작가는『나의 돈키호테』도 독자에게 또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어떤 형태로든 재생산될 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까? 책 제목이 ‘나의 돈키호테’라고 한 것은 우선 작가 자신에게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작품이 전해준 의미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독자 자신에게 ‘나’를 투영하여 각자의 ‘돈키호테’를 가질 것을 권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가 스스로 나의 돈키호테는 이런데, 너의 돈키호테는 누구야? 라고 하며 독자에게 각자 나의 돈키호테를 가져 볼 것을 소설을 통해 권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돈키호테는 누구신가요? 라는 질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