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주인공 고아리의 부모는 빨치산 혁명가였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 또한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와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주인공 아리는 어릴 적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최고로 여길 만큼 아버지와의 관계가 친밀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는 지속되지 못했다. 아버지가 감옥에 가 있는 6년 동안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소원한 상태로 회복되지 못한 채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소설은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소설가 정지아는 1990년 『빨치산의 딸』이라는 장편소설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으나 당시 그녀의 소설은 금서가 되고 출판사 대표는 국가보안법으로 옥고를 치르게 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과 같이 작가 정지아의 이름 또한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를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소설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의 부모 역시 빨치산이었다. 작가는 그녀가 자신의 부모로부터 들었을 과거와 함께 경험한 체험을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 대표적으로 『빨치산의 딸』과 『아버지의 해방일지』이다. 하나는 금서가 되었고 (2005년에 복간이 되어 재출간됨) 하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빨치산을 몸소 체험하고 시류의 상처를 직간접으로 경험한 작가 부모의 개인사는 소설가인 작가에게는 소중한 이야기의 자산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왜곡된 사회적 시선으로 작가가 감내해야 했던 시간 또한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치를 최대한 활용하여 『빨치산의 딸』을 썼고 약 30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세상에 내놓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표현된 사회주의자, 혁명가, 빨치산 등의 몇몇 이데올로기적인 표현들은 예전과 같은 중량의 무게는 실감 되지 않는다. 90년대 이후 소멸하기 시작한 공산주의 국가로 인해 그들로 상징되는 용어조차 적지 않게 휘발된 느낌이다. 이런 시대적인 분위기를 간파한 것일까? 작가 정지아는 부모와 자신이 경험한 지난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관계의 문제로 무게의 중심을 전환하는 전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빨치산 혁명가였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이전에 몰랐거나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의 이면을 주인공이 알아가며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는 전개된다. 조문객으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들을 통해 아버지와 얽힌 지난 과거의 사연들을 농익은 전라도 사투리로 유쾌하게 한 단락 한 단락 풀어내고 있다. 소설 속에서 장례가 진행되는 동안 주인공은 아버지를 안다고 할 수 없는 지점에서 때로는 자신과 결이 같은 아버지와 동일시 하는 지점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빨치산 아버지가 아닌 인간 아버지를 발견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작가는 차가워진 유골이 따뜻해졌다는 표현으로 인식의 변화 감정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아버지의 해방이 아닌 익히 알고 있다고 판단한 아버지에 대한 닫혀있는 인식의 한계적 틀로부터의 해방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기라고 한다. 커다란 이야기로 묶여 그것으로 가치 기준 삼았던 시대에서 다른 어떤 시대라고 명명할 수 없는 그 전의 담론이 사라진 시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시기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한 것도 30여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작가 정지아는 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그녀에게 남겨졌던 부모와 자신 또는 친인척이 겪은 시대적 불편함(이렇게 쉽게 이야기해도 되는지 모르지만)을 접고 관계에 초점을 두고 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에서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빨치산의 딸의 경험을 단지 이야기의 소재일 뿐 주제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빨치산이라는 우리의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의 깊이를 기대하였다면 실망일 것이나 누군가와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으로 힘겨워하는 이가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힘겨워하는 당신에게 소설은 타자에 대한 이해와 용서로 해방의 따뜻한 정화를 선사해 줄 것이다. 그 누군가가 가족 혹은 아버지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