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나 작가의 『내일의 엔딩』을 읽고
김유나 작가는 『내일의 엔딩』작가의 말에서 작품을 쓰는 중에 많이 걸었던 이유를 언덕 너머의 짧은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그 터널을 통과하며 지금은 곁에 없는 다른 차원의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했고,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직선으로 향하지 않음을 느꼈다고도 했다. 작가는 터널을 지나는 시간을 통해 용기를 내는 엔딩의 방향으로 소설 속 주인공 자경을 밀어 넣었다고도 덧붙였다.
힘겨운 시기를 지날 때를 흔히들 하는 비유로 ‘터널을 지난다’라고 한다. 작가의 말에서 작품을 쓰는 중에 ‘터널’에 골몰했던 것으로 보아 소설 속 인물의 삶을 터널과 연결 지어 보려 한 것으로 보인다. 터널은 지난한 시기의 ‘끝’(엔딩)이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여 단지 힘겨운 시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설 제목이 ‘내일의 엔딩’인 것은 힘겨운 시기에 대한 끝으로 터널 끝에 임박해 있음을 의미하며, ‘내일’이라고 한 것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오늘’이라는 시간이 어두 컴컴한 터널 안에 있지만 ‘내일’은 소중한 빛이 보이는 터널의 끝, 즉 삶의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내일의 엔딩』의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여성 자경이다. 그녀가 태어날 때 어머니는 과다 출혈로 죽게 되어 아버지와 단둘이 살게 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따로 살게 된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자경은 아버지의 간호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6년이라는 긴 터널에 갇힌 처지가 된다. 끝내 아버지가 죽고 장례를 마무리하면서 간병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듯하지만, 장례를 치르는 동안 동료 부하직원들이 집단 사표를 내면서 배신의 감정에 힘겨워한다. 기나긴 간병의 수고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끝날 것 같았지만 그녀에게 터널은 쉽게 끝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오래된 시골집뿐이다. 이마저도 부동산 중개인을 통해 정리하기로 하여 얼마 되지 않는 처분은 빚을 정산하는 것으로 남김없이 소진된다. 간병의 긴 터널을 지나 장례를 마쳤지만 자경에게 남겨진 것은 다시 원점에서 되돌아온 느낌이다. 앞서 작가가 터널을 지나면서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는 작가의 말은 자경이 마치 터널에 매몰된 처지를 표현한 듯하다.
소설은 그녀가 시골집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유품 중 자신이 감독했던 영화 소설(小雪) CD를 발견하고 자신의 영화를 감상하는 것을 연상하게 하면서 소설의 후반부는 영화 제작 당시의 이야기로 이어간다. 자경이 영화 만드는 것을 목표로 좋은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국문과를 입학하였고 학과 보다는 연영과 수업과 영화 제작 동아리 활동에 열심이었다. 결국 단편 영화 지원금을 받아 영화를 만들게 되지만 시나리오에 맞게 제작하기에는 지원금이 부족한데다가 촬영 환경이 허락되지 않아 촬영은 중간에 중단을 결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자경은 미흡하지만, 촬영본을 가지고 편집을 거쳐 미완의 완성본 CD를 만들게 된다. 이를 두고 소설에서는 완전히 망해버린 최종본이라고 표현하였다.
소설의 전반부는 자경의 긴 간병의 수고와 직장 생활에서의 관계의 삐걱거림을 다루고 있다면 후반부는 대학 졸업 후 영화를 제작하는 과정과 그 실패를 이야기하고 있다. 전, 후반부에서 진행되는 사건의 결과와 자경을 둘러싼 환경은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전반부에 간병의 노고와 인간관계의 피곤함이 묻어 있다면 후반부에는 영화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반복적인 실패가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소설 전반부의 이야기가 어둡고 무겁다면 후반부는 밝고 가볍다. 인생의 지난한 삶의 여정을 긴 터널이라고 할 때 아마도 작가는 삶의 빛은 터널 끝에 도달해야 맞이하는 물리적인 조건으로의 수동적 조우보다는 어둑한 터널과 같은 우리의 삶 속에서 빛을 능동적으로 발견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경의 아버지가 자신의 일기장에 인간이 기어이 살아가게 하는 삶의 소중한 빛은 언제나 멀고 희미한 곳에 있으며, 이것이 통찰이라고 했고 인생의 선물이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것이다. 단편 영화를 제작하면서 실패의 반복이라는 어두운 터널 속에 있을지라도 그곳에 매몰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무모해 보이는 도전과 열의가 그녀에게는 멀고 희미하지만 빛이었던 것이다.
소설 속 주인공 자경과 작가의 실제 나이와 그리 차이가 없어 보인다. 작가는 자경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세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로 풀어가고 싶어 하는 듯하다. 삶의 무게가 가중되는 30대의 삶과 각자의 형편으로 힘겨워 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그 삶 속에서 흐릿하게 남아 있는 빛을 찾을 것을 권하고 있으며 그 빛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전하고 있다. 마치 지난 시간 속에서 그 빛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멀리서 보면 모두 거기에 있었다고, 그래서 당신의 삶 속에 있었던 혹은 있는 빛으로, 시련의 고단함은 내일이면 끝날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