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감독의 <승부>을 보고
‘승부’의 유의어로 ‘승패’가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각 단어 앞 글자인 승(勝 이길)은 이기다의 의미이고 뒤에 붙은 부(負 질)와 패(敗 패할)는 각각 지는 것과 패하는 것을 뜻한다. 두 단어 모두 어떤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하지만 두 단어는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있는데 승부는 경쟁의 과정이라면 승패는 경쟁의 결과를 의미한다. (이것을 국어의 품사로 보면 승부는 행위명사라고 하고 승패는 추상명사라고 하는데 행위명사는 ~하다를 붙여 동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승부하다는 가능하나 승패하다는 불가능하다) 영화 <승부>가 그 제목이 ‘승패’가 아닌 데는 두 인물의 대결과 경쟁이 결과가 아닌 과정임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승부>는 1980년 후반과 90년 중반 정도까지의 바둑계의 두 거물 조훈현과 이창호 간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들의 승부에 관한 일련의 이야기다. 조훈현 역으로 배우 이병헌이 이창호 역으로 배우 유아인이 맡아 실제 있었던 사실을 재연한 두 인물의 승부에 관한 이야기만큼이나 연기 잘하기로 소문난 두 배우의 연기 역시 볼만하다. 바둑에 대해서 문외한인 터라 그들의 명성만큼이나 지난 일을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영화를 보고 온라인에서 관련 영상을 검색해 보니 둘의 승부에 대한 영상은 적지 않았다.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고 국내외 경쟁자가 없다고 생각했던 조훈현에게 자신의 내제자 이창호에게 대국에서 패하는 것과 당시 이창호의 나이가 15세였다는 점은 그 시절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게 하는 일대 사건이었던 건 분명하다.
영화 <승부>에서 바둑계의 두 인물에 대한 사건들을 통해 생각해 볼 점은 수직에서 수평으로의 변화의 가속도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전반부에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제자로 들이고 이름난 대회에서 이창호가 자신의 상대로 올라오는 대진표를 보고 주변 사람이 ‘사제 대결 이거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이러다 창호에게 먹히는 거 아니야’라고 했을 때 조훈현은 느긋한 표정으로 ‘10년은 이르지’라고 답한다. 그 대회에서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패하게 되는데, 스승과 제자라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어느새 이창호는 수평적 대결의 관계로의 전환을 보여준 것이다. 화면 역시 대진표 밑에 적혀 있는 이창호의 이름은 여러 상대를 이기면서 최종 결승전의 상대 이름 칸에 버젓이 조훈현과 마주하여 적혀 있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둘의 관계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면서 그 속도 역시 조훈현이 생각한 10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의 가속도는 단지 조훈현과 이창호만의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훈현은 그의 나이 9세에 일본의 바둑계 거장인 세고에 겐사쿠의 내제자로 들어가 수련하게 된다. 당시 일본의 바둑계에서는 내제자를 두고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제자 양성의 하나의 일반적인 방법이었다고 한다. 조훈현을 내제자로 둔 세고에 겐사쿠의 나이가 76세였으니 내제자와 대국을 겨루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조훈현은 어린 이창호를 만났을 때 자신이 일본인 스승에게 받았던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자신에게 주어졌던 기회에 대한 보답이면서 스승 세고에 겐사쿠에 대한 일종의 부채 의식이었을 것이다. 세고에 겐사쿠가 조훈현을 내제자로 들였을 때 보다 조훈현은 훨씬 일찍 이창호를 만났고 자신이 내제자로 들어갔던 나이와 비슷했던 이창호를 선택했다. 세고에 겐사쿠가 조훈현을 조훈현이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아들였던 속도는 점점 빨랐다. 이러한 내제자를 받아들여 수련하는 방식은 현재에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럿이 모여서 연구회를 통해서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서 한다든지 인터넷을 활용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AI를 통해 바둑을 연구하고 학습한다고 한다.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이 이창호의 성장에 ‘10년은 이르지’라는 말은 단지 그의 말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바둑계의 인재 양성 시스템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곳곳에서의 변화 역시 예상했던 ‘10년’을 뛰어넘는 변화의 가속도를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승부>를 보면서 두 사제 간의 승부의 결과가 과연 그 개인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게 된다. 우선 자신의 선택으로 가르친 제자에게 경쟁과 대결에서 패한 스승의 감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단지 괴롭다, 불편하다라고 단정하기에는 그의 심리는 복잡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조훈현의 심리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예측 가능하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조훈현의 역할을 맡은 이병헌의 내면의 연기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당시 그의 심정에 공감하도록 전달하려는 듯하다. 앞서도 영화의 제목이 승패가 아닌 승부라고 한 것은 여기서 ‘부’의 의미 중에 조훈현의 감정을 대신하는 표현은 아마도 근심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자신의 나이 어린 내제자에게 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고 최고의 자리를 내어 준 것에 대한 근심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이긴 이창호의 심정 역시 그리 편해 보이지는 않는다. 돌부처라는 별칭과 같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 영화에서 역시 그의 감정은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의 불편한 기색을 읽어 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승과의 대결에서 이창호가 승(리)한 것 같지만 그에게도 ‘부’라는 의미는 (짐을) 지는 것이고 (떠)맡은 것을 의미한다. 이겼지만 이긴 것이 그에게는 짐이며 조훈현 이후의 시대에 대한 몫을 떠맡은 것을 의미한다.
바둑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10의 170제곱이라고 한다. 우주의 원자 개수가 10의 80제곱이라고 해서 바둑의 경우의 수가 훨씬 많다고 비교한다. 가로세로 19줄의 바둑판에 백과 흑 돌로 나올 수 있는 경우가 그리 많을 진데 가로 세로줄도 없고 개개인마다 각기 다른 인생의 삶의 경우는 10의 몇 제곱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승패의 결과가 아닌 승부와 같이 과정인 삶에 한두 번 아니 몇 번이고 이기고 지는 승패의 결과로 얼마나 웃고 울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오르고 내리는 롤러코스터를 쉼 없이 경험하고도 아직도 삶의 승부가 끝나지 않은 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은 과정이기 때문은 아닐까? 영화 <승부>에서 조훈현이 어린 내제자에 진 것이 부끄럽고 궁지에 몰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이창호가 스승을 이긴 것이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이 승패의 결과가 아닌 승부의 과정이기에 이긴 자나 진 자 모두 주어진 짐을 지고 묵묵히 지고 가는 것이라며, ‘바둑은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조훈현의 글귀로 영화 <승부>는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