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지 않아 뜨겁지 못한

션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을 보고

by 송동섭

션 베이커 감독의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와 관련해서는 잊지 못할 두 가지 추억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씨네21이라는 영화 주간지에서 독자들에게 상영 중이거나 상영되었던 영화에 대해 20자 영화평을 독자들에게 응모를 받아 5명의 평을 선정하여 잡지에 실어 주는 기획이다. 당시에 션 베이커 감독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대해 ‘찬란한 동화가 현실의 무게에 무지개처럼 아름답고 짧다’라는 평으로 잡지 뒤편에 여러 소식과 함께 실렸던 기억이 있다. 그것이 2018년 3월 즈음이다.

그리고 이듬해 3월, 현재 근무하고 있는 회사 바이어가 공급받은 제품에 대해 점검을 요청하여 바이어가 있는 플로리다를 방문했을 때다. 당시에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이어서 지칠 정도의 긴 비행으로 시차가 적응되지 않는 상황에서 호텔에서 바이어 사무실로 이동 중에 아주 낯익은 모텔이 눈에 띄었다. 3층 높이에 보라색의 모텔 외관은 한 눈으로 봐도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보았던 모텔이 분명했다. 더욱 확신했던 것은 이동하면서 모텔 주변에 상점의 외관이 버섯모양이라는 것에서 그곳이 영화 촬영지임을 확신했다. 생각지도 않게 먼 타국에서 영화 촬영지를 지나게 되니 흥분되었고 동행했던 직원에게 여기가 영화 촬영지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출장 첫날은 바이어의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어서 다음 날 바이어의 사무실에 가는 도중에 잠시 촬영지인 모텔을 둘러보기로 했다. 우선 매직 모텔이라는 커다란 간판 밑에서 사진을 찍고 영화에서 몇 차례 나온 사무실, 야외풀장, 주차장을 감상하듯 거닐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프런트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영화에서 나온 대로 실내 구조는 그대로였고 여기가 영화 촬영지였다라는 것을 증명하듯 영화 포스터가 벽에 걸려 있었다. 영화에 인물들이 등장했던 장소에 마치 함께 있는 것처럼 신기했고 생전 처음 가 본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서 영화로 보았던 장소에 있었다는 것이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흥분은 쉬 가라앉지 않았다.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를 거론하면서 항상 따라붙는 명칭은 ‘독립영화’다. 그렇게 별칭과 같이 따라붙는 이유는 그의 영화가 거대 영화사 또는 자본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문화 예술과 달리 영화는 협업예술이면서 종합예술이어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그 특성상 여러 분야에 인력과 그에 따른 자본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독립영화라고 하더라도 타 예술 분야에 비해 자본은 필수적으로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된다. 다만 독립되었다는 것은 그 자본의 출처가 거대 자본을 보유한 제작사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영화감독의 작가적 역량이 보장된다는 점이면서 감독 자신이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제한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션 베이커 영화의 독립영화적인 요소와 기능을 충분히 반영한 영화다. 독립영화로 소자본(200~300만 달러)으로 만든 영화이고 영화의 내용 역시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가 다루지 않거나 그래서 꺼리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플로리다에서 허름한 모델을 주거지로 삼고 있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철없는 소녀의 천진난만한 유년을 순수하게 그려내고 있으면서도 그 소녀의 엄마의 힘겨운 일상을 그려내고 있는데, 소녀의 엄마는 생계를 위해 성매매에 이르는 것을 있는 그대로 현장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션 베이커 감독의 최근작 <아노라>에 대한 평으로 이어가 보자.

2024년 션 베이커 감독은 <아노라>라는 작품으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2025년 오스카에서 작품상 포함해서 5개_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_ 부문에서 수상하였다. 일반적으로 칸 영화제 하면 예술 영화에 대한 가치를 오스카 하면 대중적인 메시지와 재미를 갖춘 영화에 가치를 두었다고 하면 션 베이커는 영화 <아노라>로 예술과 대중의 재미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과연 그럴만한가라는 점은 논의해 볼 사항으로 보인다. 영화 <아노라>는 이야기 전개상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주인공 애니(아노라)와 이반과의 만남과 결혼에 대한 부분이고 두 번째는 애니와 이반의 결혼을 무효화 하기 위한 이반 부모의 하수인들과의 소동이고 마지막으로는 애니와 이반의 결혼 무효를 결정하는 과정과 애니와 하수인 중 한 명인 이고르와의 화해하는 부분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의 특징은 독립영화다. 이번 <아노라> 역시 적은 예산(600만 달러)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제작 환경 역시 거대 제작사의 자본에 기대지 않아 독립영화라는 점은 틀림은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노라>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보여 주었던 현장감이나 현실감보다 기교적이고 작위적이라는데 아쉬움이 있다. 션 베이커는 그의 영화에서 북미 영화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는데, 저소득층이거나 성 노동자, 소외된 계층에 카메라의 시선을 향하는 것이 그의 예술적 소신처럼 보인다. 이번 <아노라> 역시 주인공 애니(아노라)는 성 노동자_스트립댄서_이다. 성 노동자에 대한 감독의 소신은 분명해 보인다. 감독의 한 영화 잡지 인터뷰의 내용을 요약하면 성 노동에도 많은 양상이 다른 것들이 있다고 했고 세상은 그것에 관심이 없다고 느껴 그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의도는 충분히 공감하며 그의 소신 역시 기대하고 응원하는 바이다. 그래서 <아노라>의 초반은 애니가 일하고 있는 클럽의 일면을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새벽이 되어서 퇴근하는 애니의 모습을 마치 고된 노동을 마친 노동차처럼 표현하였다. 애니를 (성)노동자라는 일상의 모습을 강조하는 의도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감독 션 베이커의 소신은 <아노라>에서는 여기까지 담아내고 있을 뿐이다. 애니가 클럽에서 이반이라는 러시아 거부의 아들을 만나게 되면서 영화 전반부는 과감한 성애 장면과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하다. 성 노동자의 현실을 표현하였다기보다 에로틱한 분위기로 멜로적인 장르에 집중하는 듯하다. 애니가 이반을 만나게 되는 것은 단지 그녀가 스트립댄서였기 때문으로 활용될 뿐인지 그 이후 만남과 교제의 과정은 성 노동자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장르적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 이야기 구성을 3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두 번째 부분에서 감독은 코믹한 분위기로 전환하여 이야기의 구성을 의도적으로 달리한 것으로 보인다. 애니가 이반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러시아에 있던 이반의 부모는 미국에 있는 자신의 하수인 3명에게 자초지종을 확인하게 하고 결혼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게 한다. 하수인 중 2명이 먼저 이반과 애니가 거주하고 있는 집을 방문 했을 때 이반은 도주하게 되고 애니와 하수인은 치열한 몸싸움이 일어난다. 그리고 애니와 하수인 3인은 도망간 이반을 찾는 소동이 전개된다. 영화 <아노라>에서 이야기 구성에서 두 번째인 이 이야기를 감독은 앞선 첫 번째 이야기와 다른 분위기로 현실적인 상황에서 벗어나 코믹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종의 장르적인 전환으로 첫 번째 이야기에서 멜로적이라면 두 번째는 코미디에 가깝다. 그 예를 들면 이반의 집에 먼저 도착한 두 명의 건장한 하수인이 애니_보기에도 작고 여린 여성처럼 보이는_를 제압하는 데 안간힘을 쓴다든지 보기에는 우락부락하여 한 손으로 제압할 것 같고 펀치 한 방으로 기절을 시킬 것 같은데 전혀 그렇게 하지 않거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폭력적인 분위기이지만 감독은 현실적이기보다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구성을 3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 부분은 애니가 이반과 결혼 무효가 처리되고 다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시점까지다. 이 부분은 이반의 부모가 등장하고 결혼 무효에 대한 이반의 아무런 저항이 없는 것을 보고 애니는 실망하고 이반을 비난한다. 이후에 애니를 감시하던 하수인 3인 중 1명인 이고르와 대화하는 장면이 연출이 되고 <아노라>의 최고의 장면이라고 하는 마지막 씬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마지막 씬에 대한 극찬에 동참할 생각은 없다. 애니는 깡패같이 생긴 이고르가 이반의 집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데려다준 차 안에서 빼앗겼던 고가의 반지를 이고르가 건네준 것에 대한 답_물론 이것 외에 정서적인 위로에 대한 답도 포함하여_으로 그에게 애무를 하고 그에게 안겨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이고르에게 안겨 애니가 우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만 갑자기 성애를 시도하는 장면은 무엇을 의도하고 어떤 의미를 담아냈는지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성 노동자인 애니가 남성을 향한 하나의 성의이며 선의이고 답례일 수 있다고 하지만 왜 그것이 성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해야 한다는 것인지는 해석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성 노동자는 성애 행위를 스스럼없이 아무 때나 할 수 있다는 감독의 지나칠 정도의 과한 오해이거나 그들에 대한 제한된 이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션 베이커는 오스카 작품상 수상 소감으로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독립영화가 이 세상에서 더 필요하다. 지금 이 결과가 바로 그 증거’라고 했다, 그는 <아노라> 이후에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독립영화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독립영화라는 기치 아래 션 베이커의 카메라는 최소한 <아노라>에서는 냉정하기보다는 기술적이고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작위적인 의미에 치우쳐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성 노동자의 일상의 삶이 일반인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을 내세우기 위해서 영화에서 보여준 장면은 불과 몇 개의 씬에 불과하고 그들의 삶의 현실적 문제를 깊이 있게 관찰했다고 볼 수 있는 장면은 거의 없다. 그래서 이야기 구성상 첫 번째와 두 번째 부분의 장르적 전환이라는 기술적 기교를 활용하였으며 많은 이들이 찬사를 보내는 마지막 장면에서 성 노동자를 이해했다기보다 이야기를 봉합하려는 작위적인 표현으로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의 시선이 현실의 눈높이를 일관되게 고집하는 감독으로 개인적으로는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감독이 떠오른다. 이 감독들이 표현하는 현실은 차갑고 때론 비참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직시하게 하며 그 현실에 우리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게 잡아 이끈다. 그래서 그들의 영화는 불편한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션 베이커의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그랬다면 <아노라>는 그렇다고 동의하기 어렵다. 성 노동자를 단순한 소재로 삼았을 뿐 그들의 고민과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발짝도 다가서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평론가가 <아노라>에 대한 수상을 션 베이커의 이전 작품과 묶어서 준 상이라고 한 점에 동의한다. 션 베이커 감독은 성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누구 못지않은 애정과 관심 갖고있는 감독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감독임은 여러 인터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좀 더 현실에 마주한 그들의 삶을 냉철하게 담아내기를 기대해 본다. 그들의 현실은 주재료가 될지언정 조미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션 베이커 감독의 지금까지 보여준 소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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