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짓기는 2025년 7월 마무리됐다. 1년 3개월, 오래도 걸렸다. 10년 살던 집을 완전히 비우던 날 벽 곳곳에 삼 남매의 흔적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 깊숙한 곳이 저려왔다. 특별했던 다운천사가 태어나 자랐던 집. 아기 시절의 추억을 묻어두고 나오는 것만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월셋집이라 훌훌 털고 후련한 마음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식재료를 나눔 해주던 이웃, 외출해서 제시간에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날 문밖에서 울고 있던 둘째를 따뜻이 보듬어 주던 이웃, 삼 남매가 뛰노는 소리를 이해해 주던 밑에 집 할아버지, 할머니. 부활절, 크리스마스 때면 대문 앞에 삼 남매 선물을 놓아주며 따뜻한 추억을 안겨 주었던 윗집 할머니.
모두에게 고마웠고 사랑하고 축복한다는 인사를 남겼다. 삼 남매가 시끄럽게 놀던 소리가 끊기고 적막이 흐르는 상상만으로도 슬프다는 밑에 집 할아버지, 할머니의 문자에 울컥했다. 최근에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져 마음이 쓰였다. 삼 남매 크는 걸 함께 지켜봐 준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언제나 건강하라는 흔한 말로 마지막 인사가 될까? 대문을 조용히 닫고 나오는데 윗집 할머니와 마주쳤다. “내 사랑 어딜 가든지 건강하고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라며 꼭 연락해”라며 나를 꼭 끌어안아 주었다. 글썽이는 눈으로 할머니 모습을 담았다. 윗집 할머니 덕분에 독일생활 중 10년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독일 할머니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항상 건강하세요."라며 애써 발길을 돌렸다.
정든 이웃들과 헤어지며 익숙했던 곳을 떠나는 마음은 낯설었다. 외국인으로 인종차별받으며 지은 집에 들어서려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왔다. 억울하고, 속상했던 날들. ’언제나 들어갈 수 있을까? 과연 완공은 될까?‘ 라며 매일 같이 들여다보던 집에 살러 왔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바닥 곳곳에 비닐이 깔려있지만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더 이상 두 집을 왔다 갔다 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안도감을 주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공사는 차후 해결될 일. 새 부엌에서의 첫 요리는 계란프라이였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첫째 듬직이는 정리되지 않은 방이지만 자신만의 공간이 생겨 좋아했다. 둘째 테디베어와 다운천사는 밑에 집을 신경 쓰지 않고 뛸 수 있어 신났다. 남편은 마무리되지 않은 집에서 그나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짐 박스를 이리저리 옮기느라 바빴다. 우여곡절 끝에 살게 된 보금자리에서의 시작이었다. 독일에서 더 이상 월셋집이 아닌 온전한 우리 집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