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에게 영국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다

by 베존더스

1층에 사시는 영국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10년을 이웃으로 지냈다. 첫째가 5살 둘째가 1살에 만났다.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김밥을 가져다 드린 적이 있다. 한사코 차 한 잔 하고 가라는 할머니의 말에 끌려 들어갔다. 두 분이서 사는 집은 고요하다 못해 정적이 흘렀다.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천장이 울릴 정도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가 무너져 내릴 듯한 천둥 같은 소리에 놀라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해맑게 웃으며 놀고 있는 두 아들을 세워두고 엄하게 꾸짖었다. 그 이후로는 아이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라나는 아이들이니 너무 혼내지 말라고 했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다. 내 생일 때면 카드와 함께 영국 티를 선물로 주셨다. 크리스마스에는 친필로 쓴 카드를 나누며 기쁨을 함께 했다. 파킨슨병을 가지고 계신 할머니는 코로나 이후에 건강이 악화됐다.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는 더 이상 너그러이 넘길 수 없는 할머니를 지치게 하는 날카로운 자극이 되었다. 할머니의 건강 악화로 평범했던 일상이 멈췄다. 병원 입원과 퇴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셨다. 두 아들이 커가며 막내딸까지 태어나 자라는 과정을 함께 했고, 막내딸이 안겨만 있다가 한 발 한발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는 모습에 손뼉 쳐주셨다. 뛰기 시작할 때는 기특하다며 안아주셨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는 날에는 감동하셨다. 떠나는 우리에게 “아이들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는 볼 수 없어서 슬프네.”라며 안아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자식이 없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가 자식이며 아이들은 손자, 손녀였다. 둘째 테디베어는 한 학년이 남아 있었다. 학교 가려면 지나가는 길이니 자주 들리겠다고 했다. 이삿짐 정리에 끝나지 않은 공사 마무리를 신경 쓰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지 못했다. 학교를 오고 가는 길에 보이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눈에 밟혔다. 금요일 수업을 마지막으로 삼 남매의 부활절 방학이 시작됐다. 방학 전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고사리 같은 막내딸의 손을 잡고 할머니 집 초인종을 눌렀다. 8개월 만나는 거라 설레는 마음에 콩닥콩닥 뛰었다. 문이 열리고 우리를 본 할머니는 놀란 토끼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셨다. “어쩐 일이야? 잘 지냈어? 건강하고? 별일 없지?”라며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면서 딸의 손을 잡아 이끌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할아버지는 정원에서 꽃을 심고 있다며 정원 쪽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할아버지 역시 놀라며 들고 있던 모종삽을 던지고는 우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셨다. 딸은 흙이 묻은 할아버지를 꼭 끌어안았다. 할아버지는 더럽다며 걱정하면서도 딸을 더욱 끌어안아 주셨다.


“잘 지내셨어요? 우리들은 잘 지내고 있어요. 둘째를 데리러 오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건강은 괜찮으세요?”라는 내 질문에 괜찮다며 연신 고개만 끄덕이셨다. 예전에 살던 집을 기억한 딸은 정원 뒤쪽에 아름 드림이 큰 나무에 걸려있는 그네를 찾았다. 딸의 발돋움으로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서서히 움직였다. 딸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주 좀 놀러 와”라며 속삭이셨다. 시골 할머니 댁에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있듯 딸에게도 이곳이 그러했다.


8개월 만에 만남은 20분도 채 되지 못했다. 둘째를 데리러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애써 웃으며 인사했다. “다음에는 이사한 집에 초대할게요. 건강하세요.”라는 내 인사에 할머니는 미소로 화답했다.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고리를 잡고 서 계셨다. 할머니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죄송한 마음이 스르륵 밀려들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자주 찾아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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