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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존더스 Nov 06. 2021

둘째도 아팠다.




나에게 있어 아픈 손가락은 ‘다운증후군' 셋째라 생각했다. 셋째는 내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건강히 자라나고 있다.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아 자존감도 높다. 어느 곳에서나 당당하다. 문제는 둘째였다. 첫애를 낳고 5년 만에 태어난 둘째는 사랑을 독차지했다. 뒤집어지며 생떼를 부려도 예쁘고 엎어져 울어도 예뻤다. 호기심 많은 둘째는 위험하게 매달리거나 높은 곳에 올라가 노는 걸 좋아했다. 다치는 일도 허다했다. 위험하게 노는 둘째에게 나무라기보다 눈을 마주 보며 왜 위험한지 설명을 해주면 곧 잘 알아 들었다.


낯가림도 심하지 않아 가끔은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종종 외출도 했었다. 첫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외출이었다. 외삼촌을 좋아해서 아빠만큼이나 따랐다. 사회성이 좋고 활달한 아이였다. 유치원 적응도 삼 남매 중 가장 빨랐다. 산책길에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먼저 ‘할로!’라며 인사했다. 놀이터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넉살도 좋아 이웃집 할머니네 가서 과자도 얻어먹었다. 둘째는 애교가 많고, 애살스러워 눈웃음이 예뻤다.


셋째를 막 낳았을 때 둘째는 만 두 살이었다. 아직 어린 아가임에도 자기보다 더 작은 동생을 예뻐했다. 그런 둘째의 마음이 힘들어지기 시작한 건 ‘다운증후군' 셋째가 병원을 들락날락하면서부터다. 사실 셋째를 돌보느라 둘째에게 예전처럼 관심을 가져주지 못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병원을 자주 다녀 시간에 쫓겼다. 셋째를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할 때면 느린 둘째를 다그치며 데리고 다녔다. 급한 마음이 앞서 느긋한 둘째를 기다려 주지 못했다.


둘째는 바쁜 엄마를 졸졸 쫓아다니며 이야기했다. 난 조잘거리는 둘째 말에 하나하나 반응해 주지 못했다. 둘째는 호기심이 왕성해 궁금한 것도 많았다. 질문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일일이 답해 주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정성을 다해 대답해 주지 못했다. 둘째에게 늘 미안했다.


둘째는 가을에 입학한다. 입학 전에 schulamt (슐암트) 교육청에서 검사를 받는다. 시력 검사, 청력 검사, 언어 검사, 사회성 등.  둘째의 검사 결과 언어치료가 필요하다고 나왔다. 그 순간 내가 둘째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못했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아이의 말에 잘 반응해 줬더라면.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둘째의 조잘거림은 “엄마 나 좀 봐주세요.”라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 작은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둘째에게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사랑해” 가 아닌 “기다려, 엄마 지금 바빠”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 많은 기다림이 쌓이고 쌓여 얼마나 슬펐을지. 이제야 둘째의 진심과 마주하게 되었다. 셋째가 언제 다시 아파질지 몰라 늘 긴장하며 살아온 내 모습을 후회했다. 그 시간 둘째 또한 아팠다.


그 이후로 둘째의 조잘거림에 즉각적으로 반응해 준다. 숨쉬기 힘들 정도로 꼭 끌어안아준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모습에 둘째는 어리둥절하다. 눈을 마주 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둘째도 '엄마 사랑해' 라며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들어 준다. 그 모습에 울컥한다. 좋은 엄마는 아니었는데 둘째는 여전히 날 사랑해 주고 있었다. 요즘 둘째 표정이 좋다. 점점 밝아지고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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